옥룡자(玉龍子), 도선국사의 이야기

이법철 | 입력 : 2017/04/05 [20:30]

한국의 큰 산에는 불교의 깨달음을 얻은 고승대덕(高僧大德)이 은자(隱者)처럼 숨어 살고 있는가 하면, 백발의 봉두난발(蓬頭亂髮)과 허연 수염을 한 도를 깨달은 도인이 역시 은자처럼 숨어 살고 있다. 선남선녀들은 큰 산에 오르거든 은자들을 찾아 가르침을 구하는 마음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오늘 지리산에서 수도하던 도인들의 이야기를 적어 후세에 전한다.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는 전남 영암군 구림리(鳩林里)에서 모친 김씨의 몸에 태어났다. 그의 출생은 기이하고 신화적이었다. 도선대사는 승려로서 불교학에 출중한 것이 아닌 속세의 풍수지리에 능통한 사람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한국 풍수지라학의 원조(元祖)같은 대우를 받는다.

도선대사의 행적을 적은 것으로는 고려 때의 학자이자 문신인 최유청(1095~1174)이 비문을 지은 전남 광양 옥룡사의 징성혜등탑(澄聖慧燈塔)이 있고,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경석(1595~1671)이 비문을 지은 영암 도갑사의 도선수미비와 『동국여지승람』, 『도선국사실록』 등이 있고, 그밖에도 각지에서 전해지는 구전설화들이 있다. 옥룡사 비문을 제외하면 여타 기록들은 대체로 구전설화의 내용과 비슷하다.

우선 광양 옥룡사에 있던 비의 비문을 보면, 도선은 전남 영암 사람으로 흥덕왕 2년(827)에 나서 효공왕 2년(898)에 죽었다고 적혀 있다.

도선수미비의 비문을 토대로 이루어진 『도선국사실록』에는 도선의 모친은 처녀 적에 연못속에 커다란 오이를 건져 먹은 후, 임신이 되어 도선을 낳았다 한다. 또는 월출산에 올라 갈증을 느껴 계곡물을 손으로 떠먹으려는 데, 큰 오이가 떠 내려와 건져 먹은 후로 도선을 잉태하였다는 전해오는 말이 있다. 월출산의 큰 오이는 남근(男根)을 의미한다. 월출산의 남근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가? 아버지를 밝힐 수 없는 도선의 모친은 남모른 속사정이 있었다. 기독교같으면 성령(聖靈)이 도선의 모친에게 임신을 시켰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도선의 모친은 처녀가 아이를 낳고 보니 남의 이목이 두려웠으므로 고민 끝에 아기를 숲에다 내버렸다. 며칠 후 죄책감에 찾아가보니 놀라운 일이 눈앞에 보였다. 산비둘기 떼가 날개로 아이를 따뜻하게 보살피고 있었다. 아기 엄마는 신기하게 생각하여 아기를 도로 데려다 길렀다. 아이는 아버지가 없었으므로 어머니의 성를 따라 김씨가 되었다.

도선의 모친은 마을 사람들의 조소(嘲笑)와 지탄속에 홀로 도선을 키우다가 도선이 15세가 되는 해에 월출산 문수사(현 도갑사)에 출가위승(出家爲僧)을 시켰다. 도선은 절에서 불경공부를 하였다. 천자(天資) 총명하여 불경에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그 후 도선은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지리산에 있는 암자)에서 20대 중반부터 선학禪學)에 정진하고 있었다.

진달래 꽃이 흐드러지게 피우는 지리산의 계곡에 우연히 젊은 수도승과 백발의 노인이 마주쳤다. 노인은 팔순이 넘어 보였고, 노인이 입은 헤어진 무명 옷은 사지를 가리운 곳 보다는 드러난 곳이 많았다. 노인은 정신없이 흐르는 계곡물에 업드려 물을 마시고 있었다. 노인은 오랫동안 기아선상에서 고생하는 것 같았다. 젊은 수도승은 노인이 한없이 가엾게 생각되었다. 젊은 수도승은 걸망에서 떡과 과일을 꺼내 노인에게 정중하게 바쳤다. 노인은 감사해하며 아귀처럼 음식을 먹었다.

노인은 먹기를 끝내고 난 후 젊은 수도승에게 물었다.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시오?”
“예, 저는 지리산 상무주암에 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무슨 공부를 하시오?”
“성불의 길을 닦습니다.“
노인은 그 말을 듣고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노인은 정색하여 이렇게 말했다.
“스님은 천지의 비밀을 알고 싶지 않소? 인간의 삼생(과거, 현재, 미래)을 통찰하거나, 풍수지리학을 배우고 싶지 않소?”
“저는 성불 외에는 관심없습니다.”

젊은 수도승은 노인의 제안에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였다. 오직 불교의 마음공부를 하여 성불에만 뜻을 둘 뿐 불교 외의 외도(外道) 공부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천명할 뿐이었다. 젊은 수도승은 예의를 갖추어 작별인사를 하였고, 노인은 떠나가는 젊은 수도승을 보고 마냥 이쉬워 하며 총명한 사람이라 내심 극찬했다.

노인은 지리산 어느 동굴에서 홀로 20여 년을 기거하며 천지의 비밀을 무불통지(無不通知)하는 신통력을 얻고자 진력하여 기도하고 있었다. 노인은 소년시절부터 천지의 비밀과 인간의 운명, 풍수지리 등의 학문에 뜻을 두고 스승을 찾아 집을 떠났다. 스승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중국 땅에 건너가 스승을 찾아 배우다가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는 귀국하여 지리산 동굴에 숨어 역(易)과 관련된 모든 서책을 덮고 해와 달, 그리고 광대무변한 우주를 우러르며 기도를 하고 응답받는 신통력을 얻기 위해 진력하였다.

노인에게 운명의 날이 도래하고 있었다.

어느 날 노인은 동굴안에 두 눈을 감고 정좌하여 천지 신명에 기도하고 있을 때, 동굴 밖은 뇌성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이더니 폭우가 갑자기 내렸다. . 지리산 늙은 곰이 괴성을 지르듯 하고, 늑대와 여우의 요기 어린 울음소리가 음산하게 울려왔다. 뇌성이 꽈르르릉!…. 울리고 번갯불이 번쩍였다. 그 때 동굴입구에 뇌성의 굉음과 함께 벼락이 떨어지고 전기에 감전된듯 노인은 쓰러져 의식을 잃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벼락은 하늘의 죄인만을 찾아 때린다는 데…왜 나를!… .”

벼락에 감전되어 의식을 잃은 노인이 의식을 찾았을 때는 놀랍게도 오매불망(寤寐不忘)하며 소원을 이루는 신통력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는 광소(狂笑)를 터뜨리며 자신이 소원대로 신통력을 얻을 것을 기뻐하였다. 혼자 미친듯 환희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는 춤을 추다가 세상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운명을 통찰해보았다. “아아, 이 무슨 변괴인가? 그의 수명은 열흘 밖에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대경실색(大驚失色)했다. 천지신명계는 인간이 자신들의 세계를 알아채는 인간이 나타나면 인간계에 두지 않고 곧장 신명계로 데려가 버리는 것인가.

노인은 환희심에 춤을 추었으나, 잠시후는 그의 수명이 다 된 것을 깨닫고 소리쳐 방성통곡을 하였다. 노인은 울음을 그치고 곰곰 생각했다.
(내가 이대로 죽는다면…? 나의 깨달음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겠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죽음을 기다리나….“
그 때 섬광같이 떠오른 젊은 승려가 떠올랐다. 천성이 자비롭고 총기충만한 그 젊은 승려를 찾아 미친듯이 상무주암으로 달렸다.

젊은 승려는 상무주암의 선방에서 면벽참선하는 무소유의 깨끗한 승려였고, 법명을 도선(道詵)이라 했다. 노인을 보자 도선은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공양을 대접했다. 노인은 도선에게 자신이 일평생 깨달은 비기(秘記)의 학문을 전수하고자 한다는 말을 간곡히 하였다. 도선은 마음공부하여 “부처를 이루는 것” 외에는 배우지 않겠다, 완강히 거부했다. 도선은 냉정하게 말했다.
“부처님의 정법외에는 저는 관심없습니다.”
“아니요. 구세보살(救世普薩)의 원력이 있다면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 팔만세행(八萬細行)의 방편이 필요할게요. 나의 께달음은 세상을 이익되게 하고 불교중흥에 반드시 팔요할 것이오.”
마침내 완강히 수차 거부하던 도선은 노인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노인은 도선을 데리고 지리산에서 발원하는 섬진강이 있는 하동포구(河東浦)의 백사장에서 모래로 산을 만들고 명당이 있는 풍수학을 가르쳤다. 수명이 다된 노인은 짧은 시간에 자신이 깨달은 비기(秘記) 가운데 오직 풍수지리학만을 간신히 전수해줄 수 있었다. 노인은 자신이 저술한 비기를 도선에게 전해주면서 “불교를 중흥하고, 나라를 흥하게 하고, 만백성에 이익되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풍수학에 대해서 “사람이 아니면 이 학문을 전하지 말라(非人不傳)을 당부하며 ”오직 금전의 이익을 위해 혹세무민(惑世誣民)해서는 안된다“ 경계 하였다.

노인은 천지의 이치를 통찰하려면 역학(易學)의 책장만 천착하지 말고 책장을 덮고, “고봉정상에 올라 주야로 해와 달, 별들을 관찰하고 광대무변한 우주를 통찰하여 신명계와 상통해야 무불통지(無不通知)하는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노인은 수명이 다된 것은 “모두 숙명이요, 하늘의 뜻이다“고 말하고 도선이 지켜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노인의 시신은 하동포구에서 화장되어 유언대로 섬진강에 흘려 보냈다. 그러한 인연이 있은 후 훗날 도선은 풍수지리학의 원조(元祖)가 되었다.

그러나 기이한 일이었다. 불교의 법문을 할 때는 도선이라 자칭했으나 풍수지리학을 가르칠 때는 언제나 옥룡자(玉龍子)라는 별호를 썼다. 어쩌면 도선에게 픙수학을 전수해준 노인의 호가 옥룡자인지도 모른다. 그를 기리기 위해서 "옥룡자 왈"로 풍수지리학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도선대사가 세간에 유명해진 것은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었다”다는 전해오는 말이다. 그것은 역사에 맞지 않는 날조된 드라마 용 설화일 뿐이다. 도선은 왕건이 태어나기 전에 활동하다 입적한 승려이다.

다만 도선은 송악(개성)의 성주요 갑부인 왕륭의 집터를 잡아주고 장차 “이곳에서 삼한을 통일할 훌륭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왕건의 출생을 예언한 것이다. 그 예언이 적중하자 왕건을 비롯한 왕건의 후예들인 고려 왕들은 도선을 국사로 추증하여 공경하였고, 만백성에게 도선국사를 자손대대로 공경하도록 왕실이 주도하여 나선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출생을 예언한 덕에 도선은 고려 역대 왕들의 극진한 존경을 받았다. 고려 태조 왕건은 도선대사를 국사로 추중하고 이어 고려 숙종은 도선대사에게 대선사를 추증하고 왕사를 추가했으며, 인종은 선각국사(先覺國師)로 추봉했다. 태조 왕건은 도선대사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스승으로 섬겼다. 태조는 자손들에게 남긴 훈요십조(訓要十條) 가운데 2조에서 “신설한 사원은 도선대사가 산수의 순역(順逆)을 점쳐 놓은 데 따라 세운 것이다. 도선이 말하기를 ”정해 놓지 땅에 함부로 절을 세우면 지덕을 손상 하고 왕업이 깊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함부로 절을 세우지 말라고 유촉까지 했다.

도선국사는 만년에 전라남도 광양 백계산의 옥룡사에 머물렀는데 언제나 수백 명의 제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들은 헌강왕은 그를 궁궐로 초빙하여 법문을 들었다. 도선은 그후 곡성 태안사로 돌아가 72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효공왕은 그에게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도선국사는 풍수지리학에 의하여 전국의 지기(地氣)를 비보하는 사찰 500여 곳을 건립했다. 한국불교가 숫한 강대국의 침략전쟁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대우받고 식량이 풍부한 원인은 도선국사가 전국의 사찰을 천하의 명당으로 정해놓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전해온다.

도선국사의 저서라고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도선비기(道詵秘記), 송악명당기(松嶽明堂記), 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 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등이 있다.

끝으로, 한국의 큰 산을 좋아하는 선남선녀들이시여, 주마간산(走馬看山)같이 산만 보지 말고 큰 산에 은자로 천지이치를 실참실구(實參實求)로 공부하고, 기도하는 지선(地仙)같은 수행자를 찾아 가르침을 구하기를 바란다. 또 역(易)을 통해 천지이치와 인간의 삼생(과거-현재-미래)를 손바닥의 명주(明珠)처럼 통찰하고자 한다면 기초 뿐인 역(易)의 서적은 잠시 덮고 역의 서적이 나온 근원인 해와 달, 항하사(恒河沙) 모래수와 같은 세계-광대무변한 우주를 통찰하고 우주를 향한 기도의 염력을 보내고 받는 마음공부를 하기 바란다. 전국 큰 산의 바위가 있는 곳이 우주의 신령계와 통신, 감응할 수 있는 기도의 명당이라는 것을 차제에 귀뜸해둔다.◇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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