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국보 사찰을 지키는 개들과 수도승

이법철 | 입력 : 2016/12/16 [11:06]

나는 평생에 세 번째 사찰의 주지를 역임하였다. 첫 번째는 대흥사 말사인 무안군 해제면에 소재한 원갑사 주지와 역시 대흥사 말사인 강진군 성전면에 소재한 무위사 주지와 경남 해인사 말사인 함안군 군북면에 소재한 원효암(일명 의상대)의 주지를 역임하였다. 이제 나는 지병이 깊은 노승으로 주지는 하지 않고, 옛 추억에 눈시울을 적시는 신세가 되었다.

원갑사 주지를 하게 된 사연은 당시 대흥사 주지가 나를 보기 싫어 원갑사로 내쫓은 것이었다. 당시 대흥사 주지의 사생활이 속인 뺨치는 문란(紊亂)한 짓을 하기에 몇 번 찾아가 진심으로 시정을 바라는 충고를 해주었더니 격노하여 오히려 나를 원갑사 주지가 공석이니 주지로서 조석예불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대흥사에서 떠나기를 바랐다. 나는 제법 무거운 걸망을 지고 대흥사를 떠날 때, 두 명의 젊은 스님이 “법철스님과 함께 하겠습니다.”하고 역시 걸망을 지고 따라나서 주었다.

원갑사에 당도하니 텅 빈 절이었다. 공양주보실도 없었다. 나는 쌀독을 열어보니 쌀이 없었다. 나는 법당에 들어가 불상을 향해 신고식 같이 향을 피우고 정중히 삼배의 절을 올리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부처님 제가 모시러 왔습니다.” 나는 원갑사 취임날, 오후 투덜대는 젊은 승려들과 인근 마을을 찾아 목탁과 요령을 흔들며 동냥을 해야 했다. 인정많은 마을의 부인들은 쌀을 조금씩 보시하였고, 산사에 돌아와 밥을 지었다. 반찬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밥에 수저를 대기 전 “이것도 부처님 덕이네.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부지런히 이곳에서 정진하세.”

나는 원갑사에서 섬마을에 산다는 여성 신도의 부탁으로 남자 아기에게 나의 생애 최초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날의 아기는 이제 어른이 되었으리라. 나는 그의 행운을 기도한다.

나와 함께 탁발을 해가며 원갑사에서 정진하던 젊은 승려들은 너무도 가난한 원갑사가 싫었던지 어느 날 말없이 내곁을 떠나갔다. 그 후 얼마후 나는 해인사를 찾았다. 해인강원 선배가 해인사 재무를 보고 있어서 나는 그에게 탁발해서 사는 딱한 사정을 말했더니 함안군에 소재한 원효암이 텅 비었다며 주지로 해인사 주지에게 천거해주었다.

나는 부처님의 가호로 생각하고 감사 기도를 하며 원효암 주지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당시 원효암에 주지가 없는 딱한 이유가 있었다. 전 주지가 모 국회의원 부인과 부인의 남편 선거 운동을 하다가 짝을 이루어 부산 쪽으로 달아나 버린 것이다. 내가 원효임에 당도하니 6∼7∼8십대 할머니들 10여 명이 화가 나서 웅성 기리고 있었다. 인사를 하는 나에게 어느 노보살은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큰 일 났구먼 이번에 주지로 온 스님은 전 번 스님보다 젊고 인물이 더 좋구먼. 우리가 감독을 해야 하겠어. 우리들 외에 젊은 보살하고는 말도 나누지 마시오. 알겠소?”

세 번째 주지는 강진군의 무위사 주지였다. 나는 그곳에서 8년간 주지 노릇을 했다. 무위사는 국보 벽화가 32점이나 있었고, 큰 법당인 극락보전이 국보였다. 나는 국보벽화를 지키기 위해 무척 신경을 써야 했다. 어느 날 나는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국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경비견으로 개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불교신도 집에서 세퍼드 잡종 숫 강아지를 얻어왔고, 사냥개 포인터 잡종 숫 강아지와 토종 똥개 숫 강아지를 구해 기르며 법을 줄 때마다 훈시하듯 이렇게 강조했다.

“너희는 커서 국보를 잘 지켜야 한다. 서로 싸우지 말고….”나는 훗날 깨달았다. 개들은 먹이를 두고는 양보하지 않고 싸운다는 것이었다. 개들은 내가 새벽에 목탁을 치며 도량석을 하며 큰법당을 돌면 말없이 강아지들은 내 뒤를 따라 돌았다. 이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분들이여, 새벽 4시 30분에 내가 목탁을 치며 소리내어 경문을 외는 내 뒤를 따르는 세 마리의 강아지들을 상상해보시라.

개들은 성장하자 각기 특색을 보여주었다. 사냥개 잡종은 나만 보이지 않으면 개들을 인솔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사냥놀이의 리더 역할을 했다. 토종 잡종견은 비겁한 겁장이였다. 덩치가 큰 세퍼드는 나만 없으면 사하촌(寺下村) 죽전리에 내려가 암캐들과 어울렸다. 어느 날, 세퍼트가 사고를 쳤다.

무위사의 큰 세퍼트는 마을 암캐를 두고 경쟁이 붙은 마을의 목장 집 애견 검은 숫캐의 한 쪽 눈을 물어 실명하게 만든 것이었다. 목장집에는 내 또래의 숙명여대를 나왔다는 설이 있는 미인형 부인이 있었는데 자신이 소중하던 검은 숫캐가 애꾸가 되어 귀가하자 노발대발하여 마을에 와서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다는 것이다. “개를 보면 주인을 알 수 있지‘ 불량한 주인에게는 불량한 개가 있거던.” 이 말을 전해준 마을의 불교신도인 아낙네는 “목장 여주인이 개를 보면 주인을 알 수 있다고 반복해 외치고 있어요. 어쩌지요?”

나는 목장 집 부인을 찾아가 애꾸가 된 개를 보고 부인에게 진솔히 사과를 하였다. 그 부인은 애꾸눈의 개주인은 통 큰 마음으로 나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드디어 개들이 더 큰 사고를 쳤다. 음력 2월달 어느 날 낮이었다. 무위사 뒷산 쪽에서 초등학생 저학년 같은 소녀의 비명이 들려왔다. “엄마아∼” 비명이 연거푸 들려오고 개짖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방안에서 좌선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아아, 개들이 어린 소녀를 물어 뜯는가?) 나는 방문을 박차듯 하여 개짖는 산속으로 달렸다. 개들이 짖어 대고 물어 뜯는 것은 소녀가 아닌 숫컷 고라니였다. 바겁한 성품의 똥개 잡종은 떨어져 짖어만 대고, 사냥개와 세퍼트는 고라니를 물어 뜯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안돼!” 소리를 지르며 개들을 고라니에서 떼어놓고 보니 고라니는 기진맥진 죽어가고 있었다. 사냥개 잡종은 고라니의 급소인 붕알을 물어 뜯어 내버렸다. “아이고 미안하구나 고라니야 미안해… 어쩌지…” 나는 중얼거리며 고라니를 껴안아 주자 고라니는 젖먹던 힘을 다하듯 뒷다리를 오무렸다가 함껏 나를 발로 차버렸다. 고라니의 발길질이 나의 입에 맞았다면 이빨이 몽땅 빠져버렸을 정도로 강력한 최후의 강타의 발길질이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고라니의 뒷 다리 발길질을 두툼히 누비옷을 입은 나의 가슴을 강타했다. “아이고 어머니”나는 그 때 졸지에 어머니를 찾으며 뒤로 벌렁 자빠졌다. 개들은 나의 꼬락서니를 보고는 더욱 분노하여 고라니를 물어 흔들었다.

나는 연신 개들을 꾸짖으며 고라니를 안아 큰 법당 앞에 놓고 부처님께 참회진언을 외우고 있는 데, 죽전리 사람들이 몰려왔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다. 나는 침통한 얼굴로 마을 주민에게 “고라니를 살릴 수 없겠소?” 물었다. 주민은 웃으며 고라니는 급소인 붕알을 뜯기우고 이미 죽었어요. 스님, 이 고라니를 마을 잔치에 내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잔치 때 막걸리를 사라고 돈을 내주었다.

기뻐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내고 난 후 나는 법당 앞에서 개들을 앉혀 놓고 질타를 하며 따귀를 때린 적이 엊그제 같은 데 무심한 세월은 강물처럼 흘렀다.

나는 그 후 나만 없으면 산속으로 사냥업에 종사하려는 사냥개를 강아지 때의 주인에게 돌려주고, 또… 세퍼트 바우만 데리고 있다가 무위사에 인연이 다하자 나는 헌 지프차에 바우를 싣고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의 외딴 집 시골교회를 인수하여 간판을 떼내고 살기 시작하였다. 나는 좌선과 독서에 매진하고, 바우는 나의 방문 앞에서 달을 우러러 보기를 즐겨하더니 어느 날 홀연히 저승으로 떠났다. 나는 지금도 가끔씩 꿈속에 바우가 찾아온다.

나의 지나온 산사 생활은 깨달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 산 저 산 전국을 헤메었다. 서유기(西遊記)에 72가지 변화숧을 전수해준 수보리 조사같은 스승을 찾아 다녔다. 그러나 깨달았다는 소문이 자자한 수도승을 만나보면 허명이었다. 부처와 같은 깨달음을 얻은 수도승은 찾을 수 없었다. 만나보면 중국 선가의 승려들의 선문답(禪問答)을 앵무새처럼 외워 보일 뿐 자신의 깨달은 목소리가 없었다. 나는 늙고 지병이 깊고서야 수보리조사는 중생을 위로하는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을 절감하였다.

끝으로, 내생이 있다면, 나는 승려가 되지 않고 싶다. 평범한 인간이 되고 싶다. 부모에 효도하고 진실한 사랑을 하고, 신의가 있는 남자 말이다. 나와 인연이 있었던 원갑사, 원효암, 무위사의 무궁한 발전을 바란다. 아아, 광대무변한 우주에 비하면 인간은 우주의 먼지같은 작은 존재일 뿐이다. 지구는 왜 태양계를 총알같이 윤회하고 있는가. 왜 인간은 영원한 수명과 영원한 행복은 없는 것인가? 왜 인간은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받아야 하는가? 나는 앞서의 의문을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외롭게 죽음을 맞이할 것같다. ◇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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