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서민에 봉사하지 않는 일부 탐욕의 승려들

이법철 | 입력 : 2016/11/22 [13:00]

신불(神佛)을 신앙하고, 신불을 대행하는 종교인들이 모두 고해의 인생들에 희망을 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인생을 산다면 고해라는 이 세상은 낙원으로 변하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냐의 입장에서 보면 사찰에 들어와 부처님의 제자 복색을 한 승려들 가운데는 불교에는 없는 처자가 있는 대처승(帶妻僧)이 있고, 또 처자가 없다고 신도 등에 속이면서 처자를 부양하는 은처승(隱妻僧)이 존재한다. 이들 가운데는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국민들, 특히 서민들을 위해 공헌하는 사람은 있다. 그러나 대부분 처자를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에 속인 뺨치게 매일 돈을 갈구하며 허덕인다.

앞서 언급한 대부분의 승려들은 돈에 대한 탐욕이 지나쳐 진짜 불교는 간판일 뿐 내심에는 속세인 뺨치는 탐욕을 부리다가 결국은 1천 7백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국불교도 망치는 핵심이다. 그들의 인생은 진짜 불교가 아니다. 그들은 소위 말법세상에 등장하는 소위 “가사입은 도적”인데 수행자와 고승역을 하는 연극의 3류 배우들이다.

백 번 듣는 것 보다는 한번 보는 것이 낫다(百聞不如一見)라는 전해오는 말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제현은 시간 나면 조계사 정문 앞을 찾아 보시라. 거의 매주 같이 일단의 시위대중이 조계사를 향해 확성기로 불교정의를 외치고 있다. 시위 대중의 지도교수 같은 주인공은 불심 돈독한 현직 서울대 교수이고, 대중은 대부분 불교를 믿는 행동하는 양심적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조계사 쪽을 향해 서서 확성기를 통해 이렇게 외친다. “쌍둥이 아빠는 물러가라”이다. 그들의 구호가 적힌 프랑카드와 피켓에도 “쌍둥이 아빠 물러가라”이다.

쌍둥이 아빠는 누구인가? 어디 있다는 것인가? 쌍둥이 아빠라는 승려가 독신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에 간부 승려 노릇을 하면서 위세를 부리고 삼보정재(三寶淨財)를 도적질 하는 대도 노릇을 하고 성자인 고승 역할을 고집한다는 것인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염천하이나 수년을 두고 시위하는 대중은 “쌍둥이 아빠 물러가라” 외쳐도 우이독경(牛耳讀經)인 것같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 쌍둥이 아빠를 보호하는 또 다른 동패같은 자들이 보호하는 탓이다. 이러한 지탄의 시위가 “가사입은 도적”을 규탄하는 것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속세에 처자를 부양하기 위해서 무슨 악행을 서슴없이 자행하듯이, 처자있는 승려들도 대부분 처자를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온갖 방편의 술수를 부린다. 손오공의 72가지 변화술을 부리듯 방편을 써대는 것이다. 첫째, 으레 불상을 내세우고, 수행자연(然)한다. 우선은 불경 구절을 조금 들먹이는 데, 결론은 만법귀일(萬法歸一)같이 다다익선(多多益善)의 돈벌이를 위해 선량한 중생들을 기복불교로 유인하여 돈을 받아낸다.

1천원을 내놓고, 1억을 벌 수 있다는 주장으로 현혹하는 것이다. 중생이야 가난으로 죽던 말던 인정사정 두지 않고, 재수대통, 지옥을 면하고 극락가기, 불교와 무관한 산신(山神), 용왕 등과 보지 못하는 귀신까지 팔아 돈을 챙긴다. 무간지옥에 가게 되었다고 통보하고 사시나무 떨듯하는 여인에 우선 만수무강과 극락행을 해주겠다며 1200억원정을 받아낸 모 고승의 이야기는 이제 한국불교사의 신화적 인물이다. 그는 세 치 혀로 지옥과 극락을 이야기하여 도합 3000억을 받았다는 의혹과 돈걱정 없었지만, 염라국의 저승사자는 피할 수 없었다.

세치 혀로 조화를 부리는 예화를 아래에 하나만 적시하겠다.

어느 사찰에는 광고하기를 주승(主僧)이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하는 초인적 능력이 있어 인간의 운명을 바꾸워 소원을 성취하게 해주는 전지전능(全知全能)의 신통력이 있다고 중생에게 광고하는 것이다. 신통력을 보유했다는 승려는 하루에 8명만 문복자(問卜者)같은 중생을 만나주는 데 한 사람당 1십만원정을 먼저 바치면 신통력을 부려 돈을 낸 중생의 삼세(과거,현재, 미래)를 통찰하여 알려 준다는 것이다. 기본으로 하루에 8십만원정을 세 치 혀로 돈을 번다는 말이다.

돈이 어찌 그뿐인가? 문복하는 자의 어리석은 몽롱한 눈을 보고 탐욕을 부추겨 재(齋)를 올리면 운명을 바꾸어 대졸부 되는 것은 물론, 조상을 지옥에서 극락을 가게 하고 역시 일확천금의 대부(大富)는 물론 모든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현혹하여 재를 지내는 돈을 요구한다. 재 지내는 돈은 작게는 3백만원정, 많으면 1천만원정을 받아낸다. 월수입이 세 치 혀로 수천만원을 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진짜 불교가 있을 리가 있겠는가? 모든 지위와 돈과 미인을 버리고 떠나 가난한 수행자가 노릇을 한 부처님이 본다면 어떠한 표정과 말을 하실까?

나는 이들이 세 치혀로 막대한 돈을 부정하게 버는 것에 중지의 호루라기를 불 수는 없다. 호루라기를 분다고 중지하는 인생들이 아니다.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나에게 해코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고언한다. 돈만 보지 말고ㅡ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을 추호라도 가져야 한다는 나의 주장이다. 북의 김씨 왕조에서 그 짓을 하다가는 인민재판에 의해 처형을 받을 것이다.

불교가 국교이던 신라, 고려 때에 학덕을 겸비한 양심적인 고승들이 존재하였었다. 그러나 , 오직 처자를 위해 돈을 추구하는 승려들의 발호를 막지 못하였다. 남녀가 이층을 이루어 음양합덕을 이루고 돈을 숭배하는 승려들에 제동을 걸 수는 없었다. 불교가 아닌 음양교의 교도들이 지배적이었다. 섹스는 하면서 청정한 비구불교를 하자는 사상이요, 주장이다.

고려 말에 와서 의식이 깨어난 사대부와 깨어난 백성들은 중생의 재물을 빼앗기 위해 세상을 기만하는 일부 승려들의 폐단을 지적하고 불교를 없애야 한다는 지탄과 원망이 충천하였다. 급기야 이조에 들어서면서 이조는 백성이 지탄하는 불교의 폐악을 일소하기 위해 배불정책(排佛政策)으로 전환하였다. 태종은 승려를 팔천민(八賤民)의 하나로 전락시켰고, 승려는 서울시에 못 들어오게 하는 법, 즉 “도성출입금지(都城出入禁止)”의 법령을 발표하여 엄히 단속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생을 기만하여 재물을 탐하는 승려들 탓에 여타 승려들까지 도성출입금지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하였다. 한국불교인의 자존심을 짓밟는 그 악법의 법령을 폐지하게 한 사람은 뜻밖에 일본의 일련종(日蓮宗)소속의 고승 “사노 젠레이”였다. 그는 일련종 포교를 위해 조선에 건너왔다가 조선 승려의 부당한 고통을 보고 해방시켜주기 위해 일본제국의 위세를 빌어 당시 총리대신 김홍집을 통해 고종을 알현하여 건의하였고, 고종은 이를 받아 들여 1895년 3월 29일자로 승려의 도성출입금지를 폐지하였다. 이 역사 이야기의 결론은 어느 시대이건 부패하여 백성을 속여 부당한 돈을 갈취하면 인과에 의해 도성출입금지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나 작금이나 한국 불교를 망치는 자들 가운데 주류를 이루는 자들은 부처팔아 오직 처자부양을 하겠다는 자들이다. 그들의 사상은 부처팔아 돈만 벌면 되었지 불교의 흥왕과 대한민국의 수호와 번영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 일부 승려들이 문제였다.

그들의 고약한 심보를 담은 예화를 든다면, 임진란 때,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등이 구국의 승병을 모집할 때 이를 비웃고 반대한 승려들은 부지기수였다. 이조는 배불정책으로 승려들에게 “도성출입금지”로 탄압하였는데 왜 이조를 위해서 승려들이 나서 왜군과 피흘려 전투를 해야 한다는 것인가?“이다.

오직 처자를 위해 돈을 벌려는 일부 못난 승려들은 서산, 사명 등 승병들을 비웃고 반대하였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진실한 불교인이라면 부처님은 왕자의 지위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수도를 통한 깨달음의 길로 나섰다는 것을 절대 망각해서는 안된다. 처자를 부양하기 위해 처자가 없는 듯 위선을 떨고, 가사입은 도적같이 오직 돈의 탐욕을 위해 선량한 중생을 기만하는 인생이 사찰에 많으면 많을 수록 진짜 불교는 망해간다.

이승만 전 대통령 덕에 전국의 명산대찰은 결혼하지 않는 독신승인 소위 비구승이 독차지하게 되었다. 조계종은 신의와 감사를 안다면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의 공덕비를 세우고 해마다 감사의 제를 지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명산대찰은 관광수입으로 오래전에 부자가 되었다. 예전에 만석군이가 전국 본사주지이고 유명 기도터이다. 또 해마다 국민 세금으로 국고지원을 해온다. 이 세상에 이런 낙원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승려 가운데는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에 욕설을 퍼붓고, 김일성을 숭배하는 자는 부지기수이다. 단단히 미친것 아닌가. 이러한 자들을 두고 은혜를 모르는 산도적이라 나는 논평한다. 북의 인민군이 들어오면 종교인이 제일 먼저 죽는다는 것을 일부 돈만 아는 불쌍한 탐욕의 승려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나는 대오각성을 간절히 바란다.

끝으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와 승병들은 선조임금만을 위해서 목숨바쳐 전쟁터에 나선 것이 아니다. 승병의 진의는 왜적의 총칼에서 백성을 수호하기 위해서 승병으로 나선 것이다. 따라서 승병의 사상을 계승하는 오늘의 승려는 국민이 갈구하는 민주사회를 위하고, 또 국민을 기만하여 권력을 이용하여 대도노릇을 하는 자들의 척결을 위해서 국민과 함께해야 하고, 서민들이 신명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앞장 서고 항상 서민을 위해 기여하는 한국불교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승려가 온 국민이 원하는 국가정의는 외면하고, 오직 가사입은 도적같이 호구지책으로 불교를 팔아먹는 자들은 진실로 불쌍한 자들이라 나는 생각한다. ◇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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