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은 3년, 개는 10년을 키우지 말라 했는데…

이법철 | 입력 : 2016/11/15 [09:30]

 

전해오는 우리 속담에 계불삼년(鷄不三年)이요, 견불십년(犬不十年)이라는 말이 있다. 풀이하면 “닭은 삼년이상을 기르지 말고, 개는 10년 이상을 기르지 말라”는 말이다. 왜 그랬을까? 나는 아직까지 의미를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옛말에, 산사는 닭소리, 개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심산(深山)에 있어야 하고, 심산의 적막한 곳에 산사가 불공 기도의 영험이 있고, 승려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라 전해온다. 그러나 산사의 풍경이 환경 따라서 많이 변했다. 즉 산사에는 닭은 없지만, 개들이 일종의 경비원으로 밤에는 적막한 도량에서 활약하고 있다.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불상이라도 훔쳐 팔아먹는 자들은 분명 존재하는 탓이다.

1980년대 초반 나는 무위사(無爲寺=강진군 성전면 죽전리 소재) 주지를 8년간 한 적이 있다. 무위사는 고찰이다. 극락보전과 벽화가 국보 13호로 지정되었고, 국보에 포함된 벽화는 32점이나 사찰이 무위사이다. 그 외에 법당 안에 각종 탱화, 법당안에 북을 등 위에 질머진 목조(木造)의 사자, 기외 명부전의 시왕상(十大王)과 탱화 등도 보물급이었다.

따라서 나는 절도범으로부터 국보와 보물을 주야로 지키기 위해서는 무척 신경을 써야 했다. 나는 공무 등 외출할 때마다 무위사 요사채에 있는 후배 승려에게 국보와 보물을 지키는 데 신경을 써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외출을 해야 했다.

옛말에 “지키는 사람이 열이 있어도 도둑 하나를 못당한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 날 법당의 탱화 하나를 도둑 맞은 사건이 발생했고, 또 법당안 영단에 펼쳐져 있는 난초 묵화로 된 병풍을 나는 눈 뜬 채 기만 당하여 잃어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탱화는 내가 공무로 광주 간 사이에 밤에 후배 승려의 감독감시의 불충분으로 도둑을 맞았다. 병풍은 신심깊에 부처님앞에 과일을 몇 개 놓고, 천원 짜리 석장을 놓고 절을 하고 난 40대 후반의 양장한 미모의 여성이 “저는 읍에 사는 신도인데요. 병풍이 여기 저기 찢어져 보기 흉하군요. 제가 표구사에 가져 가서 손을 보아 갖다 드리겠습니다. 표구비는 제가 내겠어요.” 하면서 명함을 주었다. 그녀는 내가 아는 읍의 신도들을 거명하여 나에게 더욱 믿음을 주었다.

나는 그녀의 명함을 받고 그녀를 믿고 병풍을 내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가용 차에 병풍을 싣고 떠났다. 며칠 후 나는 병풍이 반환되지 않아 반환받기 위해 명함에 적힌 전화로 해보니 전화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명함도 자동차도 모두 가짜였다. 미국 영화 “스팅” 비슷하게 나는 당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경찰서에서 형사로부터 탱화와 병풍을 남몰래 팔아먹은 것 아니냐“는 심문을 받고 극구 부인하는 신세가 되었다. 수개월 후 탱화는 대구시경에서 찾아 주었으나, 병풍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 때 깨달은 것은 국보와 보물 경비원으로 개를 길러야 하겠다고 작심하였다.

이것도 인연인가? 우연히 신도집을 방문하니 어미개가 새끼를 8마리나 낳아서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나는 새끼들을 살피는 데, 새끼 한 마라가 힘이 없어 어미 젖을 먹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숫 강아지였다. 나는 신도에게 사정하여 숫 강아지를 얻었다. 나는 내 방으로 숫강아지를 데려다 놓고 마치 보모처럼 아기 젖병에다 유유를 넣어 젖병의 젖꼭지를 강아지의 입에 물리니 게걸스럽게 빨아 대었다. “어서 커서 무위사 국보와 보물을 지켜다오.” 매번 나는 당부하며 강아지 입에 젖병의 젖꼭지를 물렸다.

나는 강아지의 이름을 “바우”라 명명하여 불렀다. 훗날 바우는 덩치가 엄청나게 커졌고, 국보사찰을 지키는 척 하다가는 춘심(春心)을 못이겨 나 모르게 하산하여 먼 마을로 내려가 짝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나는 개를 찾기 위해 죽전리와 월하리를 잦아야 하였다. 우체부 아저씨가 개가 어느 곳에 있다는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하였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닭이 삼년이 지나면 주인 인간의 마음을 읽는다고 전한다. 주인이 삼계탕을 만드려고 닭을 잡기 위해 모이를 주며 닭을 소리내어 부르면, 초짜 닭들은 오직 모이 생각에 정신없이 달려오는 데 삼년이 지난 닭들은 주인의 의중을 눈치채고 지붕위로 피신하여 주인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주인의 속셈을 간파한 닭은 좀체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옛말에 해묵은 닭은 큰 구렁이로 변화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옛말에 의하면, 젊은 며느리가 논받에서 땀흘려 일하는 신랑의 간식을 위해 뚜겅 덮은 공기밥을 높은 찬장에 놓아두었는 데 매번 찬장을 열어보면 공기밥이 없어지고 빈 그릇만 있었다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줄 공기밥을 며느리가 먹어 버렸다고 노하여 질책하였다는 것이다,

매번 억울하게 질책 당하던 며느리가 숨어서 살피니 10년 넘게 그 집에서 기르는 개가 주위를 살피며 찬장앞에 서다니 인간처럼 서서 앞의 두 발로 닫힌 찬장을 열어 뚜껑 있는 밥공기를 꺼내 정신없이 먹어 대고는 빈 공기에 뚜겅을 닫아 찬장에 넣고 역시 찬장 문을 두 발로 닫아 놓고는 외출을 하더라는 것이다. 신랑에게 주어야 할 공기밥의 절도범은 늙은 개였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고발하듯 하는 데, 개가 고발을 엿듣고는 성이 나 잇빨을 보이며 으르렁 거리더라는 것이다.

다음 날, 며느리가 혼자 되었을 때, 개가 며느리의 치마를 물고 끌어대더니 개가 미리 땅을 파놓고 그곳에 며느리를 매장 하려고 하더라는 전해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바우를 15년 이상 키워보니 개도 늙으면 운신(運身)하지 못하여 일어나지 못하고 자리보전이 일쓰였다. 인간의 백발노옹(白髮老翁)처럼 바우도 허연 수염이 나고, 잇빨도 빠지고 치매가 온듯 때로는 주인인 나조차 못 알아보고 으르렁 거리기도 하였다. 때마다 바우에게 나는 호통을 치며 이렇게 말했다. “나야, 나. 너 사부님을 몰라 보냐?”

나는 내공부를 철저히 하기 위해서 대중을 떠나 혼자가 되려고 서책을 걸망에 가득 담아 산 설고 물 설은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저수지 둑 밑의 외로운 집을 찾았다. 바우는 짝을 떠나는 것에 싫은 눈치지만 나를 따라주었다. 저수지 둑 밑의 집은 원래는 시골교회였다. 목사님은 경북으로 떠나갔다. 나는 교회 간판을 떼내었다. 한동안은 찾아온 교회 신도들은 “새로 오신 목사님이시나요?” 물었다. 나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머리 박박 깎은 목사님도 계시오?”

나는 밤늦게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방문을 열면, 바우는 방문 앞에 앉아 달을 우러르고 있었다. 달의 정기(精氣)를 빨아 들이듯 하는 것인가? 외로운 둑 밑의 낡은 집, 주인은 혼자 서책을 보고, 또 혼자 소리내 송경(誦經)을 하고, 바우는 달을 우러르고 있는 풍경을 상상해보시라. 바우는 나의 말을 알아듣는 눈치더니 어느 날, 숨을 거두었다. 나는 슬퍼하며 또 다른 제행무상을 절감하였다. 나는 그 때부터 개를 키우지 않았다. 나는 가끔씩 꿈에 바우가 찾아오는 꿈을 꾼다. 꿈속에 나는 바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바우야, 인간 몸 받아서 내가 죽기 전에 찾아 오너라.”

왜 인간세에는 “닭은 삼년 이상을 기르지 말고 개는 10년 이상을 기르지 말라” 한 것일까? 진의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같이 깨달음이 오기 전에 닭과 개의 생사를 주관하는 인간이 잡아 먹으라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인간? 왜 인간의 수명은 수백년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조물주의 조화의 진의를 인간이 깨닫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 아닐까? 깨닫기 전에 죽도록 설정된 것은 아닐까.

과거 우매한 인간들은 지구가 온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天動說)을 주장하는 천지창조설을 주장하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것은 환상이었다. 지동설(地動說)이 진짜였다. 이제 인간들은 지구가 태양계를 총알처럼 윤회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우리 태양계같은 태양은 우주에 1천억개가 넘는다고 천체물리학자들은 발표한지 오래이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렇다. 언제 조물주가 정해준 운명대로 죽을 지 모르는 인생들은 서로 사랑하고 원한을 풀고 서로 돕는 세상을 열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끝으로, 작금의 한국에는 경제번영을 했다고 자축하지만, 빈부(貧富)는 차이는 나날히 극심해지고 있다.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은 1년에 3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해법은, 대통령 등 위정자는 서민들이 신명나게 살 수 있는 정치를 해야 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앞장 서 서민복지에 베플어야 한다. 일장춘몽(一場春夢)같은 인생살이에 사랑과 자비는 영원한 진리여야 할 것이다. ◇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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