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월산의 생불

法徹 | 입력 : 2004/05/27 [20:08]




백월산의 생불





백월산은 신라 구사군(仇史郡) 북쪽에 있다.
산의 동남쪽으로 삼천보(三千步) 쯤 떨어진 곳에 선천촌(仙川村)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지금으로는 경북 월성군 천북면 화산리에 해당되는 곳이다.

그 마을에 노혜부득(努혜不得)과 항항부득(恒恒朴朴)이란 두 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소년시절부터 죽마고우의 사이었다. 두 소년은 서당에서 함께 세간의 학문을 공부하였으나 마음에 흡족하지가 않았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때가 되면 출세간의 학문, 즉 불교를 배우기로 서로 굳게 맹서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스무살이 되기 전에 큰사찰에 들어가 법적방(法積房)이라는 곳에서 승려수업을 받았다. 요즘같으면 승려가 되기 전의 행자생활을 하면서 불교의 기초를 배운 것이다.

두 사람은 어려운 과정을 인내하여 마침내 목표였든 득도(수계)를 했다. 득도를 마친 날, 두 사람은 장차 어느 곳에서 수행하고 불교를 포교할 것인가에 대해 상의했다. 두 사람은 법적방이 있는 큰 고목 아래의 바위에 앉아 대화를 하였다. 먼저 박박이 말했다.
“나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난행고행의 출세간의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신이 없었어. 허나 시간이 흐를수록 출세간의 공부를 잘 선택했다고 생각하네.모두 전생의 인연이겠지.”
“부득이 동의하듯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부처님께서는 진리를 깨달으시고 난 뒤 49년 중생에게 설법을 하시었지만, 그 설법의 요지는 모든 것은 인연따라 생(諸法從緣生)하고 모든 것은 인연따라 멸(諸法從緣滅)한다는 인연법이지.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모두 인연법이야.”
다시 박박이 부득에게 말했다.
“자, 이제 이곳에서 소정의 공부를 마치었네. 이제 어느 곳에 가서 수행하고 불교를 포교하면 좋을까?”
부득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눈을 빛내며 말했다.
“백월산으로 가세. 그곳에 우리가 머물면서 수행하고 포교를 하세.”
박박이 반문했다.
“왜 백월산인가?”
“천하의 명산이기 때문이야.”
박박은 의아한 얼굴로 부득을 응시했다. 부득은 미소하며 말했다. 
“백월산이 천하의 명산인가를 증언하는 이야기를 하나 해줄터이니 듣겠어?”

당나라 황제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재료를 가지고 큰 대궐을 새로 지었다. 기둥을 옥으로 다듬고, 층계에는 금빛이 찬란했다. 또한 넓은 정원에는 큰 연못을 조성했다. 연못은 낮에 금빛 잉어를 낚는 놀이도 적합하고, 달밤에는 화방(畵舫)을 띄우고 달빛 아래 미녀들과 주연을 베플고 놀기에 적합했다. 연못을 처음 조상하고 난 뒤 만월의 밤이었다. 황제는 비빈(妃嬪)과 후궁들과 함께 앞서의 화방을 띄우고 주연속에 흔쾌히 웃음을 떠뜨리고 있는데 총애하는 비빈들이 손으로 연못을 가르키며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BR>“연못속에 산이 나타났다. 기암괴석 사이에 피어 있는 저 꽃들을 봐, 천상의 산일까?”
황제도 일어나 배위에서 서서 비빈들이 가르키는 쪽의 연못을 바라보았다. 잔잔한 연못의 물은 거울과 같았다. 밤하늘의 만월을 비쳐주면서 한컨으로는 생전처음보는 기암괴석 사이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워있는 명산을 비쳐주고 있었다. 특히 꽃이 만발한 바위는 마치 사자와 같았다. 황제는 놀랍고 신비하고, 감격스러워 비빈들과 함께 밤하늘을 우러렀다. 하늘에는 만월만이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총명한 황비는 옷깃을 정제하고 옥으로 만든 술주전자를 잡고 재빨리 보비위의 인삿말을 올리었다.
“황제폐하, 감축드리옵니다. 명산과 꽃이 만발한 속의 사자바위가 연못에 비추이는 것은, 폐하의 성덕을 의미하여 하늘에서 기적을 보여주시는 것 같사옵니다.”
황비는 황제의 술잔에 술을 그득 따루었다. 악사들이 황제의 성덕을 칭송하는 음악을 일제히 올리었다. 황제는 흔쾌히 웃으며 술잔을 비웠고, 빈(嬪)들도 다투어 황제의 성덕을 칭송하며 황제의 술잔에 예쁘게 술을 부었다. 낭자하게 여인들의 웃음과 음악이 흘러 넘치었다. 그런데,이상한 일이었다.연못속의 명산은 보름달이 기울자 사라져 버렸다.

연못속에 나타나는 산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면 나타날 뿐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일았다.황제는 화공을 불러 연못이 비추이는 산에 대해 그림을 그리게 명하고, 그림이 완성되자 그 그림을 대량 복사하게 했다. 황제는 신하들에게 그 그림을 나눠주어 그림과 같은 산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게 명하였다. 전국을 다니며 그림속의 산을 찾던 신하들은 모두 황제에게 복명했다.
“폐하, 신등이 성심을 다해 전국의 돌아다니며 그림속의 명산을 찾으려 했으나, 칮을 수가 없사옵사옵니다. 신등이 알건대 해동의 신라국에는 명산이 많다는데, 그곳에서 찾아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어 감히 아뢰옵니다.”
황제는 신기한 명산을 찾기 위해 신하들에게 신라국으로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 한 신하가 신라의 곳곳을 다니다가 마침내 그림속의 산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신하는 사자바위 앞에 이르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신하가 연신 감탄사를 토할 때 근처를 지나는 나뭇꾼이 있어 산에 대해 물었다.
“이산의 이름은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꽃이 많이 피운다고 해서 화산(花山)이라고 부릅니더.”
신하는 사자바위에 앉아 탄식하듯 혼자 말했다.
“산과 바위는 똑같으나 수 만리 떨어진 산이 과연 당나라 궁중 연못에 비친 그 산인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그 때 나무꾼은 픽 웃으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걱정 마이소. 방법이 있지예. 신고 있는 당나라 신(唐鞋) 한 짝을 사자바위 끝에 얹어 놓고 돌아가서 궁중의 연못에서 보면 되지 않겄어예?”
고민하든 당나라 신하는 무릎을 치고 기뻐하며 실행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나뭇꾼은 화산을 수호하는 산신령이었다는 설도 있다.

황제는 신하들과 보름달이 뜰 때 연못에 비친 산을 보고, 사자바위를 보았다. 과연 사자바위 끝에는 당혜가 놓여 있었다. 황제는 신비스러움에 놀라워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신라에는 과연 명산이 있구나. 화산이라는 이름도 좋지만, 백월산(白月山)이 더 풍취가 있겠구나. 당황제의 명으로 백월산이라고 부르게 하라. 백월산 같으면, 신선이나 고승같은 유덕한 군자가 반드시 은거해 있을 것이다.”

부득은 박박에게 결론적으로 말했다.
“우리가 그곳에 가서 당황제가 언급한 대로 신선과 고승으로 은거를 하며 수행하고 불교를 포교하세.”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서로의 손을 맞잡고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점두하였다. 이윽고 두 사람은 수년간 정들었든 법적방을 떠났다. 백월산 동북령으로 가서 부득은 대불전(大佛田)의 회진암(懷眞庵)에 머물렀고, 박박은 소불전(小佛田)의 유리광사(琉璃光寺)에 머물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심경에 변화가 왔다. 어느 날, 박박이 부득을 찾아와 말했다.
“천지만물은 음양의 화합과 조화로써 발전을 한다고 생각하네. 수행하고 포교하는 것이 청정비구로써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양화합속에 수행하고 포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부득은 둘도 없는 도반에게 물었다.
“무슨 뜻인가?”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해서도 수행하고 불교를 포교할 수 있지 않은가? 아름답고 착한 아내와 함께 수행하고 포교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부득은 홀로 외롭게 수행하고 포교하는 것 보다 아름다운 부인과 합심하여 서로 의지하며 수행하고 포교할 수 있다는 박박의 주장에 동의하기로 했다. 두 친구는 서둘러 결혼을 했다. 대처승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은 대처승이 되어 신도들에게 시주를 받지 않고,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사회에 봉사했다.

수년 후, 박박이 부득에게 은밀히 만나기를 청했다. 단 둘만의 시간이 되자 박박이 소태씹은 얼굴이 되어 말했다.
“자네 결혼생활은 어떠한가? 수행과 포교는 잘할 수 있어?”
“무슨 뜻이야?”
박박은 주위를 살피더니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부처님이 수행자는 비구여야 한다는 말씀의 뜻을 나는 이제사 깨달았어.”
“….”
“부부의 음양화합속에 수행하고 포교한다는 것은 잡을 수 없는 무지개와 같았어. 결혼을 하고보니 부인은 눈만 뜨면 나에게 돈을 벌어 오라고 성화야. 안빈낙도 하자고 하니까, 밥상을 엎어 버리며 성깔을 부리더군. 돈, 돈, 오직 돈을 벌어오라는 게야. 이상적인 수행자의 아내가 아니야.”
“그래서?”
“자나깨나 돈 타령인데, 무슨 수행이 되겠나? 자네 같으면 화두가 들리겠어?”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라네.”
부득이 결론적으로 말했다.
“우리의 근면노력으로 의식을 얻어서 즐기는 것도 좋다. 하지만, 기한(飢寒)을 모르도록 저절로 포난(飽暖)함만 같지 못하다. 인간의 처자 애정도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연지화장(蓮池華藏)에서 신선들과 함께 한가롭게 소요함만 같지 못하다. 우리가 정진성불(精進成佛)하려면, 역시 가정의 속된 생활을 버려야 할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대처승으로서 가정의 단란을 누리면서도 그것이 승려의 본도가 못된다는 고민을 느끼고 가족들 몰래 한탄하여 마지 않았다. 그들은 완전한 출가를 위해서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똑같은 꿈을 꾸었다.
백월산 서쪽 하늘에 눈부신 백호광(白毫光)이 비추이더니 그 빛속에서 금빛 관음보살이 오른손에든 나타나 버드나무로 가지로 왼손에 든 감로수병의 감로수를 묻혀 두 사람의 이마를 어루만지듯 하며 위로했다.
“선재,선재라, 나는 너희같은 착한 제자를 두어서 기쁘도다. 너희들이 속세와 추잡한 인연을 끊고, 불도에 전심하면, 반드시 성불할 것이로다.”
두 사람은 똑같은 꿈을 꾼 것을 확인하고 완전한 출가를 할 것을 부처님께 맹서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처자와 작별하고 출가입산을 단행하였다.

그들은 백월산 무등곡(無等谷)으로 들어가서 박박은 북령(北領) 사자암에 여덟자 사방의 조그만 토굴방 한칸을 꾸미고, 몸을 의지하며 수도했다. 부득은 동령(東嶺)의 뇌석(磊石)밑의 샘물가에 역시 단칸 암방(巖房)을 짓고 거처했다. 두 사람은 금욕청정(禁慾淸淨)한 마음과 몸으로 간절히 염불근구(念佛勤求)했다. 두 사람의 수행방법은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었다. 눈을 떠도 나무아미타불, 눈을 감아도 나무아미타불이었다. 간절한 나무아미타불 염불속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꿈결같이 흘러 3년이 훌쩍 지났다.

신라 성덕왕(聖德王) 경룡(景龍) 3년 4월 팔일 박박과 부득은 각기 자신의 토굴에서 저녘예불을 드렸다.
산에는 해가 지고, 황혼이 내렸는데, 어디서 왔는지 박박의 토굴앞에 천하절색의 젊은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토굴 앞에서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듯 맑은 음성으로 주인읋 찾았다. 그동안 단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는 토굴이기에 박박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토굴문을  열고 나왔다.미인은 곱게 미소지으면서 맑은 음성으로 노래하듯이 시를 읊어 자신의 뜻을 전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행지일락천산모(行遲日落千山暮)
가는 길에 해 저물어 첩첩산중 어두워서
로격성요사린(路隔城遙四隣無 )
읍내와 마을이 어디인지 인가도 없사오매
금일욕투암하숙(今日欲投庵下宿)
암자의 처마끝을 빌려서 이 밤을 지내올까 하오니
자비화상막생진(慈悲和尙莫生瞋)
자비하신 스님께서 화내지 마시고 부디 허락하소서.



박박은 시를 읊는 여인을 보며 마음이 설레이었다.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를 토굴방에 안내하여 주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여인이 수행에 큰 마장이 된다는 것을 과거 결혼생활에 뼈저리게 느낀 사람이어서 완강하게 거절해야겠다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는 싸늘하게 내뱉듯이 말했다.
“이 승방은 단칸 방이어서 여인이 묵을 수 없습니다.”
“스님, 중생을 구제해주시는 분이 길잃은 밤중의 행인을 거절하시면 산짐승의 밥이 되어도 모르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여인은 항변하듯이 재차 간절히 청했다.박박은 냉정하게 말할 뿐이었다.
“자비고 뭐고, 여자라면 신물이 납니다. 저 달이 지기 전에 빨리 인가를 찾아가시오. 나는 청정한 몸과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자, 안녕히 가시오.”
박박은 토굴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궈 버렸다. 여인은 앙칼지게 토굴안을 향해 소리쳤다.
“어찌 이리 무자비할 수 있습니까? 제발, 문을 열어주세요.”
박박은 그녀의 자비를 구하는 애절한 목소리는 외면하고 목탁을 치면서 소리높여 염불을 외울 뿐이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제발, 자비를 베플어 주세요….”
“나무아미타불….”
“제발,….”
“나무아미타불.”

여인은 박박의 무자비에 슬퍼하면서 하늘의 달을 우러렀다. 달이 기울고 있었다. 음산한 부엉이 소리와 함께 산속에서는 무서운 산짐승들이 포효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여인은 부득의 토굴앞에 서서 주인을 불렀다. 부득이 나왔다. 부득은 합장하여 반기었다. 부득은 여인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자비롭게 미소하며 말했다.
“이 밤중에 어디를 가시겠습니까? 단 칸방의 토굴이지만, 이곳에서 편히 쉬십시요. 저는 토굴 밖, 처마 끝에서 공부를 하렵니다.”
“스님은 자비로우시군요.”
“승려가 당연히 할 일을 실천할 뿐이지요.”
부득은 여인을 방안으로 안내하였다. 토굴 방안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었고, 등잔불이 희미하게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부득은 나물밥상을 차리어 따뜻이 대접했다. 밥상을 치운 후, 부득은 여인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토굴 밖으로 나오려 하자 여인이 부르며 물었다.
“스님께서는 무슨 공부를 하시는지요?”
“성불하기 위한 난행고행은 팔만사천의 길이 있지만, 저는 나무아미타불의 명호정근기도를 하고 있지요.”
“인간의 생사, 우비고뇌가 없는 서방정토에 가시려구요?”
“때가 되면 왕생극락이 원입니다.”
“그러나, 스님 같은 분은 왕생극락을 해서는 안됩니다.”
“예?”
여인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스님 같은 분이 고해에 계셔서 고해중생을 구원해 주셔야 하는데, 정토로 가시면 고해중생은 누구에게 구원받겠어요?”
부득이 파안미소했다. 여인도 활짝 웃었다. 그 때, 그녀는 부득에게 미소하며 말했다.
“제가 스님께 시 한수를 읊어도 폐가 되지 않을까요?”
부득은 환영한다는 뜻으로 미소속에 점두했다. 그녀는 맑은 음성으로 이렇게 시를 읊었다.



일모천산로(日暮千山路)
해 저문 깊은 산길에
행행절사린(行行絶四隣)
가도 가도 인가는 없고
죽송음전수(竹松蔭轉邃)
대밭솔밭의 그림자 어두워서
계동향유신(溪洞響猶新)
산골의 물소리만 높아집니다.
걸숙비미로(乞宿非迷路)
길 잃은 하룻밤 청하는데
존사욕지율(尊師欲指律)
스님은 길을 가르키려 하지만
원유종아청(願惟從我請)
제 청을 부디 들어 주시고
단막문하인(旦莫問何人)
어디서 온 누구냐곤 묻지 마소서.



부득은 여인의 시를 듣고 파안미소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비구승 혼자 있는 단칸 토굴에 여인을 재우는 것은 불법에는 금법이지요. 그러나 부인의 사정이 딱한데 자비를 행하는 승려로써 어찌하겠오? 저는 오늘 밤 토굴 처마 밑에서 아미타불 염불기도로 밤을 새울터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쉬십시요.”

부득은 처마 끝에 정좌하여 이슬을 피하면서 나직이 아미타불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박박은 자신의 토굴에서 누워서 잠을 청하려는데, 괜한 상상이 자꾸 들었다. 여인이 부득의 토굴을 찾는 모습, 부득은 자신처럼 모질지 못하여 여인을 방안에 불러 들이고 급기야 여인이 유혹하여 부득과 여인은 운우지정을 나누는 모습이 자꾸 환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박박은 환상을 빚는 자신에 대해 자책을 하고 부처님께 참회의 기도를 해보지만 환상은 여름날의 뭉개구름처럼 무럭무럭 피워 오르는 것이었다. 그는 도반이 걱정스러웠다. 파계는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 참회진언을 외우며 자책해 마지 않았다. 그에게 의심암귀(疑心暗鬼)가 집요하게 괴롭히었다.

어둠속에 정좌하여 두 눈을 감고 아미타불을 마음속으로 부르는 부득의 귀에 순간 여인의 비명이 들려왔다. 귀를 기울이니 여인이 비명속에 소리쳐 부득을 부르고 있었다.
“아이구, 배야… 스님, 스니임! 나좀 살려주세요!”
부득은 굳게 닫힌 토굴 방문 앞에 서서 귀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방안에서 문을 통해 여인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님, 저의 추태를 용서해주세요. 갑자기 산기가 보이네요. 죄송하오나 해산할 준비를 해주세요.”
“제가 어찌해야 합니까?”
“우선 가마솥에 물을 끓이세요. 아이와 제가 목욕을 할 수 있도록 큰 함지박에 물을 가득 부어 놓으세요.”
부득은 졸지에 산파가 아닌 산야(産爺), 아니 산승(産僧)이 되어 여인이 시키는대로 부지런히 뛰었다.

그 시간, 박박은 옷을 정제하고 토굴을 나섰다. 환상은 곧 게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요망한 여인에게 파계를 하여 부득이 염불기도를 망치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부득의 토굴을 향해 황급히 걸으면서 부득이 자신처럼 냉정하게 그 여인을 내쫓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 시각, 여인은 방문 밖을 향해 애처롭게 소리쳤다.
“스니임, 아이를 낳았어요. 우선 제가 목욕을 해야 하니 함지박에 데운 물을 가지고 어서 방안에 들어오세요.”
“예,예….”
부득은 여인이 시키는대로 함지박에 물을 담아 낑낑 거리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여인은 비틀비틀 일어나며 말했다.
“기운이 없어 일어나지 못하겠어요. 저를 부축하여 함지박에 넣어주세요.”
부득은 피묻은 여인의 알몸을 보고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마음속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여인을 부축하여 함지박에 들어가게 했다. 부득이 두눈을 감은 채 엉거주춤 서 서 속으로 염불을 하는데, 소리로 보아 여인이 함지막속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 것 같았다. 목욕을 하던 여인이 언제 비명을 질렀느냐는 듯이 낭랑한 음성으로 부득에게 말했다.
“저는 목욕을 마쳤어요. 이제 아이를 목욕시켜야 하겠어요. 이리 가까이 오세요. 그런데 왜 두눈을 질끈 감고 있지요?”
“아, 예…. 목욕시킬 아이는 어디 있나요? 아이가 소리를 내지 않는군요. 아이가 어디 있지요?”
“가까이 와 보세요.”
부득은 여전히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더듬거리며 함지박 근처에 다가갔다. 그 때 함지박속의 여인이 두 손을 뻗쳐 부득의 옷을 잡아 힘껏 잡아 당겼다. 여인의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힘이었다.부득은 속수무책으로 함지박 속의 물속으로 빠져 버렸다. 부득은 속으로 자신이 빠진 함지박의 물은 아이낳은 여인의 목욕한 핏불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눈을 감은 채 비명을 내질렀다.
“보살님, 왜 이러십니까!”
여인은 깔깔깔 웃음을 터뜨리었다. 그녀는 웃음을 마치고 정색을 하고 엄숙히 말했다.
“목욕시킬 내 아이는 그대이니라.”
그녀는 어느 틈에 함지박밖에 서서 바가지로 자신이 목욕한 물을 가득 떠 부득에게 끼엊었다. 부득이 비명을 지르려니 순간 코에서 이 세상에서 맡아보지 못한 향기가 진동하였다. 여인이 여거퍼 바가지로 물을 퍼서 부득에게 끼엊었다.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목욕을 하지 않으려는 개구쟁이를 억지로 목욕을 시키는 것 같았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부득에게 여인은 엄숙히 말했다.
“부득이여, 어서 눈을 떠라!”
부득이 이상한 생각에 눈을 떴을 때, 방안에는 향기와 서기가 가득하였고, 그 속에 금빛 관음보살이 버드나무 가지와 감로수병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관음보살은 자애롭게 부득에게 말했다.
“선재,선재라, 너의 믿음을 시험하여 보았도다. 너는 이제 감로수에 목욕을 하였으니 부처님의 화신으로 새로 태어났도다. 부디, 백월산에서 고해중생을 위해 깨달음과 자비를 베플라.”
부득이 황급히 오체투지하여 관음보살에게 예를 갖추었을 때, 관음보살은 서기방광속에 홀연히 사라졌다.

잠시 후, 박박이 헐떡이며 들이닥쳤다. 추잡한 상상으로 들아닥친 그는 방안의 부득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부득의 몸이 금빛으로 변해 광채를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득은 환상에 빠진 박박을 깨우쳐 주었다. 박박은 방바닥에 두 다리를 뻗고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면서 자책해 마지 않았다.
“아아, 성인을 친견하고도 알아보지 못하였으니…”
부득은 자책하여 울고 있는 박박의 손을 잡아 함지박 속의 물속에 들어가게 했다. 기적은 또 일어났다. 박박의 몸도 금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물의 수량이 적어 부득처럼 몸 전체가 금색광명을 발하지는 못했다. 다시말해 박박의 얼굴은 금빛이었지만, 몸의 이곳 저곳에서는 땜질 하듯 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백월산의 두 스님이 오랫동안 아미타불 기도를 하더니 몸에 금색광명을 발하는 부처님의 화신인 생불이 되시었다.”
향기가 퍼지듯, 부득과 박박의 소문이 퍼져나갔다. 백월산을 둘러싼 인근마을에서 사람들이 두 생불을 친견하기 위해 몰려 들더니 급기야는 각처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사람들의 입에서는 이러한 소문이 돌았다.
“친견만 해도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지고, 불치의 병이 낫는다는 게야. 그런데 그 생불께서 마정수기를 주시며 ‘나무아미타불’하실 때 따라서 ‘나무아미타불’한 번만 해도 정업의 재앙이 멸하고 무량대복을 받는다는 게야.”

부득과 박박 두 성사의 원력으로 백월산은 아미타 신앙의 꽃을 활짝 피운 성지가 되었다. 두 성사의 인도에 따라 아미타 부처님의 화신들이 무수히 출현할 수 있었다. 두 성사는 중생교화의 소임을 마치고 열반에 들게 되었을 때, 아미타 부처님의 세계에서 영접하는 연화대(蓮花臺)가 나타났다. 두 성사의 영혼은 연화대에 올라 왕생극락하였다. 영혼이 떠난 육신의 다비식에서 오색사리가 무수히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백월산백월산의 두 생불 소문을 접한 신라의 경덕왕은 두 가지 목적을 갖고 단안을 내려야 했다.
첫째, 자신도 아미타 신앙인이라는 것 때문에,
둘째, 민심이 두 생불을 존경하니 정치적 목적으로 어전회의에서 교지를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덕왕은 두 생불이 살고 있는 곳에 대찰을 창건했다. 사찰의 이름은 백월산남사(白月山南寺)라고 사액을 하사하였다.민심이 경덕왕의 공덕을 침이 마르도록 칭송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당황제도 사신으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이렇게 말했다 한다.
“내 일찍이 신라의 명산에는 신선이나 고승이 계신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더냐.”
당황제의 엄명으로 중국에서 사신이 신라를 방문하면, 반드시 사신이 황제를 대리해서 백월산남사에 공양을 올리고 참배를 하였다는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일연스님이 저술한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일연스님은 승려이기에 삼국유사를 불교적으로 많이 집필했다. 오늘의 필자 역시 일연스님의 심정으로 이 글을 쓰는 바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때문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쓰는 바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래나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 생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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