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상원사의 전설

法徹 | 입력 : 2004/05/23 [23:32]





은혜
갚은 꿩





강원도 원주 지방에 이생(李生)이라는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나이 스물다섯, 큰 키에 용력과 무예에 뛰어난 실력이 있었다. 특히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잘했다. 사람들은 이생을 두고 이구동성으로 담력과 용맹이 있어 장군감이라는 평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특히 활쏘기를 즐기어 날마다 산 속으로 들어가서 표적을 만들어놓고 활쏘는 연습을 했다.
드디어 이생은 활쏘기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지경의 명궁이 되었다.
그러나 생업은 돌보지 않고 무예에 미친 것 같은 생활만을 하기 때문에 부모와 친척들은
걱정을 했다.

이생은 어느 날, 활쏘기를 마치고 바위 위에 우뚝 서서 아득히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혼자 말했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서 마땅히 나라의 큰일을 하여 이름을 후세의 청사에 길이 전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나 이런 산속의 벽촌에서 썩는다는 것은 억울하다. 나의 무예실력이면 다가오는 무과시험에 응시해도 장원할 자신이 있다. 무예연습을 하면서 천천히, 무과시험이 있는 서울로 가야겠다.
무과에 장원을 한다면 부모님과 친척들도 나를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이생은 무과시험에 있는 서울로 천천히 길을 떠나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집을 떠났다. 그는 등에 활을 메고, 허리에는 장검을 차고 천천히 산속 길을 걸으며 무예를 연습하면서 원주에 있는 적악산(赤岳山)에 이르렀다.
이생은 암반위에 흐르는 계곡이 있는 곳에서 피곤한 다리를 쉬었다. 그가 계곡에 엎드려 손바닥으로 흐르는 물을 떠서 시원스럽게 마시는 그 때였다.
별안간 가까운 산 속에서 꿩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는 직감으로 꿩이 죽어가는 비명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혼자 말했다.
‘꿩이 무슨 짐승에게 잡혀먹는 소리다. 구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생은 꿩의 비명소리를 듣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즉각 활을 들고 꿩의 비명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어갔다. 과연 언덕 아래 큰 소나무 밑에 큰 구렁이 한 마리가 숫꿩의 다리를 입에 물고 삼키려 들고 있었다. 구렁이는 순식간에 꿩의 몸을 칭칭 감았다. 구렁이는 꿩을 한 입에 넣으려는 듯 입을 딱 벌렸다. 무서운 이빨이 나타나고 구렁이의 혓바닥이 기쁜 듯 무시무시하게 날름거렸다.꿩은 구렁이의 아가리에 들어가려는 직전, 머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구원을 바라는 듯 슬프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짐승의 약육강식이지만, 꿩의 비명을 듣는 이생은 의분심이 끓어올랐다. 그는 화급한 생각에 활에 살을 재어 가지고 구렁이의 머리를 겨누어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입을 딱 벌리고 꿩을 심키려는 직전 구렁이의 목에 정통으로 파고들었다. 구렁이는 칭칭 감았든  꿩을 풀고, 땅바닥에 피를 흥건히 적시며 늘어졌다.

이생의 덕택으로 꿩은 죽음 직전에서 간신히 살아났다. 꿩은 정신을 차리고서는 다가오는 이생을 바라보았다.꿩은 날아올랐다.꿩은 하늘로 날아 올라서 생명의 은인에게 인사의 말을 하듯이 무어라 소리를 내지르며 이생의 머리 위를 세 번 빙빙 돌고는 어디로인지 날아갔다.이생은 멀어져 가는 꿩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가족들과 오래오래 살아라.”

<이생이 돌이켜보니 구렁이는 피로 땅을 적시면서 원한에 찬 눈빛으로 이생을 응시하고 있었다. 구렁이는 아직 죽기 직전이었다. 이생은 구렁이에게 다가가서 사죄하듯 말했다.
“너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꿩을 구하기 위해서 급박한 마음에 화살을 쏘았을 뿐이야. 너도 먹고 살려고 한 행동인데…. 정말 미안하게 되었구나. 네가 죽지 않고 살아나야 하는데…. 정말 미안하다….”
이생은 구렁이의 목에서 화살을 뽑았다. 검붉은 피는 더욱 흘러 땅을 적시었다. 이생은 고개숙여 사죄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구렁이는 여전히 꼼짝도 못한채 피를 흘리며 원한에 찬 눈으로 이생을 응시할 뿐이었다. 이생이 떠나고 난 후, 오래지 않아 피흘리며 죽어가는 구렁이 옆에 더 몸집이 큰 구렁이가 나타났다. 죽어 가는 구렁이는 나타난 구렁이에게 하소연하듯 응시하며 혀를 날름거렸다. 나타난 구렁이는 피흘리는 상처에 입맞춤하듯 입을 대기도 하고, 마치 연인이 서로 얼굴을 맞비비듯 하면서 마지막 대화를 나누듯 했다.

두 구렁이는 원한에 찬 눈으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윽고 피흘리는 구렁이는 숨이 졌다. 나타난 구렁이는 죽음을 확인하고,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듯이 고개를 쳐들고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이생이 사라진 숲 속을 향해 원한에 찬 눈으로 무섭게 응시하더니 숲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이생은 산을 넘고 골짜기를 지나면서 길을 걷다가 어느새 해가 서산에 기울더니 산속에 어둠이 깔렸다. 초승달이 걸려 있는 어두운 산 속에서는 음산한 포식자의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부엉이의 소리가 귀신의 저주처럼 들렸고, 늑대울음이 들려왔다. 어디선가, 여우소리도 들려왔다. 그 모든 음산한 소리는 산 속의 밤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서곡이었다. 이생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밤을 지샐 인가를 찾지 못한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두리번 거려도 주막집은커녕 인가조차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음산한 포식자의 저주스러운 소리는 더욱 가까워오고 밤은 점차 깊어갈 뿐이었다.
이생은 배도 고팠다. 그러나 그에게는 배고픈 것보다도 포식자들이 덤벼들지 않는 잠잘 곳이 더 급했다. 마침내 그는 인가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커다란 고목아래에 허물어지듯 주저앉아 체념상태에서 혼자 탄식했다.
“할 수 없구나. 오늘밤은 이 나무 아래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구나. 그나저나 호랑이나 늑대들이 덤비면 어쩌나…. 큰일이야.”

주저앉아 절망에 빠져있던 그의 시야에 언뜻 불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어두운 산 고개쪽에 인가의 불빛 하나가 가물거리고 있었다. 그는 기뻐서 환성을 질렀다.
아, 저기 인가가 있구나.”
이생은 피곤한 다리를 끌고 허둥지둥 그 불빛을 찾아 뛰었다. 마침내 불빛이 반짝이는 그 집 앞에 섰다. 그곳에는 오랜 세월 풍우에 씻긴 낡은 기와집인 고가(古家)가 한 채 숲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대문을 두두렸다. 한 참만에 대문이 삐거덕 열리고, 하얀 상복을 입은 백발의 노파가 나타났다. 노파는 허리가 굽었고,
얼굴은 쭈굴쭈굴할 주름이 깊었다. 그러나 두 눈은 무섭고 차갑게 빛이 났다.
노파는 등불을 들고 서서 등불에 이생을 비춰보면서 음산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
밤중에 누구요?”
이생은 정중하게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공손히 말했다.
“길가는
손입니다.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어 주막은 없고, 댁에서 하룻밤 신세를 질까 해서
문을 두두렸습니다.”
노파는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말했다.
“밤중의
산 속은 위험하기 짝이 없지. 도처에 사나운 맹수와 악귀들이 사람을 해치려 들거든.
그런데 사정은 딱하지만 어쩌나. 이 집은 지금 초상집이어서…. 나의 외아들이 갑자기
죽었다우. 해서 곤란한데….”
“할머니, 제발 부탁합니다. 어디 헛간이라도 하룻밤 재워주세요.”
노파가 난색을 표하는 때에 하얀 소복의 상복을 입은 삼십대의 아름다운 여인이 노파의 등뒤에 나타나 눈물 젖은 눈으로 잠시 이생을 응시하더니 노파에게 공손히 말했다.
“어머니, 이 밤중에 길손이 어디로 갈 수 있겠어요. 사랑채의 빈방에서 하룻밤 유숙하도록 해주세요. 초상집에 찾아온 것도 인연이 아니겠어요?”
“아이구
착한 거. 서방이 비명횡사를 당해서 원통절통 할텐데, 길손 걱정을 해주는 구먼. 며느리의 청이니 들어주어야지. 길손은 나를 따라 오시우.”
청상과부는 상청(喪廳)으로 들어가고, 노파는 이생을 사랑채의 빈방으로 안내했다. 이생은 노파에게 물었다.
“아드님이 비명횡사를 당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변을 당하셨는지요?”
“아무 원한도 없는데, 어떤 미친놈이 죽였다우?”
“천하에 나쁜놈이군요. 그런 놈은 당장….”
“대신
복수라도 해주시려우?”
“저는 언제나 약자를 돕는데 앞장 섭니다. 무고한 아드님을 죽인 나쁜놈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할머니.”
“히히히. 우리도 그놈을 찾는 중이라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할머니.”
노파는 뼈만 앙상한 손으로 젖어오는 눈가를 훔치면서 울먹이며 말했다.
“삼대독자가 후손도 없이 억울하게 죽어 버렸으니 우리 가문도 이제 문을 닫게 되었으니 더더욱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우.”

<호롱불이 밝혀진 방안에 이생이 앉아 있으려니 상청에서 청상과부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이생은 억울하게 죽은 남자를 동정했고, 노파와 청상과부를 진심으로 동정했다. 대신 복수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노파가 밥상을 차려왔다. 밥상에는 진수성찬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배가 고파서 수저를 들고 허겁지겁 먹으려고 했으나 왠지 음식이 비릿내가 진동하여 비위에 맞지 않았다. 이생은 밥맛을 잃어 상을 물리고 말았다. 밥상을 그냥 물리자 노파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젊은이, 한창때인데, 어찌 밥상을 손도 안대고 물리는게요? ”
이생은 비린내가 심하여 먹을 수가 없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말을 돌렸다.
오늘 피를 보아서 밥맛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노파가 궁금한듯 눈을 빛내며 물었다.
“밥맛 잃을 피를 보다니 무슨 말이요?”
“오늘 산길에서 의분심에 피를 보았지요.”
“어디 그 의분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시구려.”
이생은 자기가 얼마나 약자에 대해 의분심이 있고, 약자를 돕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낮에 있었던 꿩과 구렁이에 대한 이야기를 신이나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생은 불쌍한 꿩을 위해 화살로 구렁이의 머리를 관통시킨 활솜씨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생은 노파에게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의분심이 많고 항상 실천하며 살지요. 저는 오늘 의분심으로 불쌍한 꿩을 살려주기 위해 구렁이의 목에 화살을 쏘아 버린 것이지요.하지만, 구렁이도 불쌍했어요. 죽여서는 안되는데...해서 피흘리고 죽어가는 구렁이에게 사죄를 했답니다.”
이생의 말을 들은 노파는 기겁을 할 듯이 놀래는 얼굴을 하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이생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이생은 노파에게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할머니,저,오늘 좋은 일 했지요?”
노파는 소태씹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생에게 물었다.
“젊은이에게 묻겠수.삼대독자 외아들의 원수를 하늘이 도와서 만나게 되었다면, 젊은이는 어찌하겠수? 응?”
이생은 하품을 하면서 시원스럽게 이렇게 대답했다.
“할머니는 당연히 복술 해야지요. 불구대천의 원수이니까요.”
이생은 노파가 방문을 나서자 자리에 들어 피곤한 몸을 눕히었다. 상청에서는 청상과부의 애통히 흐느끼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오고, 이윽고 그는  코를 골며 정신없이 잠에 골아 떨어졌다.

서울에 도착하여 무과에 장원급제하는 꿈을 꾸면서 흐뭇하게 웃으며 잠을 자는 이생이 갑자기 숨이 막힐 듯이 답답해왔다. 이상한 일이었다.코에 비린내가 훅 끼쳐왔다. 이생은 어렵게 눈을 떴다. 잠들기 전 분명히 호롱불을 껐는데, 방안에는 은은한 호롱불이 밝혀져 있었다. 불빛에 보니 거대한 구렁이가 이생의 몸을 둘둘 감아 죄면서 머리를 들어 이생의 눈을 응시하며 금방이라도 한 입에 이생을 삼켜버릴 듯 붉은 혀를 날름거리더니 입을 쫙 벌려 독아(毒牙)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이생은 혼비백산했다. 이생은 악몽이 아닌가 싶었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생은 어찌된 영문인지  거대한 구렁이에 잡아먹히는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에 놓인 것이다. 용맹한 이생이라도 거대한 구렁이에게 감겨있는 상황에서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노파의 미친듯한 웃음소리가 귀를 때렸다. 노파는 미친 듯이 웃기를 마치더니 무서운 눈으로 이생을 응시하며 뼈만 남은 손가락으로 이생을 가르키면서 사납게 말하는 것이었다.

“하늘이 도와준 것 같다. 외아들을 죽인 원수를 못찾는 줄 알았는데, 원수놈이 제발로 들어오고, 제입으로 자복을 하다니 믿어지지가 않는구먼. 히히히히…”
 노파는 이생의 몸을 칭칭 감은 거대한 구렁이에게 말했다.
“며늘 아가야, 저 놈이 무슨 의분심에 바로 네 남편을 죽였다고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드구나.”
거대한 구렁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어머니, 이 원수놈을 어떻게 죽여 복수해야 우리의 원통함을 풀까요?”
노파는 또 미친 듯이 웃고는 말했다.
“너의 서방도 고통스럽게 죽어갔다고 했지? 저놈도 고통스럽게 죽여야 돼! 아가, 더욱 조여라. 저놈의 갈비뼈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싶구나.”
“네, 어머님.”

<이생의 몸을 감은 거대한 구렁이가 힘을 쓰자, 이생은 비명을 내질렀다. 이생은 숨을 몰아쉬면서 간신히 말했다.
“할머니, 왜 제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저를 죽이려 드십니까? 제발 살려 주세요.”
“이 멍청한 놈아, 네가 잘못이 없어? 잘못을 아직도 깨닫지 못해? 네 놈이 나의 금쪽같은 외아들을 화살로 죽여 놓고도 잘못이 없어? 네놈의 터진  입으로 말했지? 불구대천의 원수는 복술해야 한다구?”
이생은 비명을 지르면서 외쳤다.
“저는 할머니 외아들을 화살로 죽인적이 없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노파는 성이 머리끝 까지 오르는지 며느리가 감고 있는 이생의 따귀를 호되게 올려 부치며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네 놈이 꿩을 살려주려고 내아들을 죽였다고 토설을 했잖아? 그래도 네놈이 오리발을 내밀 것이냐? 이 쳐 죽일 놈아!”
이생은 그제서야 상황인식이 왔다. 노파와 청상과부는 인간이 아닌 천년묵은 구렁이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불쌍한 꿩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의로운 화살을 쏘았지만, 자신에게 닥치는 인과응보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생은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에 눈물을 흘리었다.

노파는
절망감에 울고 있는 이생을 향해 이죽거렸다.
“이놈아, 너에게 한 상 차린 밥상은 맛있는 싱싱한 개구리 요리인데 어찌 수저를 대지 않고 물렸느냐? 저승갈 때 사자밥이라도 먹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노파는 이생을 감은 거대한 구렁이에게 말했다.
“며늘아, 어서 그놈한테 네 원한을 풀어라. 우선 힘껏 죄어라.갈비뼈를 비롯해서 양 어깨뼈등을 모두 부러트린 연후에 삼켜버려라. 나도 먹는데 동참했으면 좋겠다만, 늙어 이빨이 없고, 위장이 나빠서 소화를 못하니 네가 다 먹거라. 알겠냐?”
며느리 구렁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생에게 사람처럼 말했다.
“우리 부부는 전생에 지은 업보 때문에 구렁이 몸을 받았지만, 열심히 수행정진해서 함께 용으로 승천하자고 해와 달과 별을 우러르며 맹세를 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굶주려 꿩 한마리를 식사하려다 철없는 네놈의 화살을 맞아 저승길로 떠나버렸으니 우리의 맹세는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렸어. 원통정통할 일이 아니더냐? 아아, 뉘라서 나의 청상의 슬픔을 짐작할 수 있겠느냐? 지아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복수를 하는 것은 아내의 도리이다. 이제 내가 너를 잡아먹는다 해도 너는 나에 대해 원통하거나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며느리 구렁이는 남편의 복수를 위해 이생을 한 입에 삼키겠다고 선언했다.거대한 구렁이는 입을 최대한 벌리었다.이생은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는 절망감에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이생은 간신히 호흡을 몰아쉬며 황급히 말했다.
“두 분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내가 죽을 짓을 한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죽기전에 두 분께 한 말씀만 드리고 죽겠으니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만약 저의 소원을 무시하고 죽인다면 염라대왕께 제소하여 우리의 원한이 세세생생까지 이어지도록 악심을 품고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노파가 성을 내면서 며느리에게 말했다.

<거대한 구렁이는 잠시 이생의 숨통을 열어 주었다.이생은 울먹이며 애소하듯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댁의 외아들이요, 서방님에게 사적인 악감정이 있어서 화살을 날린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저는 부처님을 신앙하기에 죽어 가는 꿩의 비명을 듣고서 자비심으로 꿩을 구해주려다 보니 화살을 쏘게 되었어요. 저는 피흘리며 고통받는 구렁이에게 다가가 사죄하면서 화살을 뽑아 주었어요. 그러나, 두 분의 마음의 고통에는 저의 변명이 통하지는
않겠지요.”

이생은 두 구렁이의 눈치를 살피면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두
분은 부처님을 아십니까?” “복수를 하는 마당에 부처님 이야기는 왜 끄집어 내나? 그 양반 모르는 생명체와 귀신들은 없지. 우리집안은 대대로 부처님을 존경한다네. 부처님의 영혼윤회의 법문과 인과법문은 절대 확신하고 있네. 부처님의 계율을 잘 지키고 수행했으면 우리도 벌써 용으로 승천했을 텐데….먹고 살다보니 부처님의 법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개구리 등을 마구잡아 삼키어 파계를 하게 되고….솔찍이 아직도 우리가 용이 못된 구렁이 신세를 못 면하고 있는 것은 솔직히 탐욕 탓이지.무슨 이야기이인지 욧점을 빨리 말하게. 우리도 바쁘니까.”

이생은 체념어린 말투로 말했다.
“결론적으로 두 분께 묻겠습니다. 저의 죄의 원인은 ‘자비심’때문인데, 저의 행동이 두분이 생각하는 만큼 반드시 죽어야 할 대죄인지 부처님께 심판을 맡기면 어떠하겠습니까?”

<며느리가 성을 벌컥 내면서 말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절에 모셔 논 목불(木佛), 동불(銅佛), 토불(土佛)이 어찌 산사람처럼 심판을 할 수 있다는 말이오?”
“아니지요. 부처님은 우주 곳곳에 무소부재하시어 능력을 보이시는 분입니다. 저의 죄의 유무에 대해 물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노파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이생을 비웃는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묘안이 떠올랐네. 여기서 가까운 곳에 황폐한 사찰이 한군데 있네. 수입이 안 좋아서 인지 승려들은
모두 떠나 버렸어. 텅 빈 절은 칡넝쿨과 쑥대밭이 되어 버렸지. 법당에는 아직도 인연을
기다리며 부처님이 영겁의 미소를 짓고 있으시지. 그곳에 범종이 있는데, 오랜 세월 울리는 사람이 없어 침묵 속에 있다네. 자네가 죽을죄가 아니라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살생을 하지 말라는 뜻에서 새벽예불 시간에 범종을 세 번 울려 주시면 우리는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자네를 죽이지 않겠네. 어떤가 내 묘안이? 지혜는 나이 살이나 먹은 사람이 낫지?”
네, 어머님.오늘 이곳에서 저놈을 잡는 지혜를 내신 것도 어머님이잖아요. 저는 어머님의 지혜를 절대 믿고 따르겠어요.”
이생은 구렁이에게 둘둘 감겨있는 상황에서 마음속으로 부처님께 간절히 구명의 기도를 간절히 드렸다. 마음속으로 ‘나무 석가모니불’의 불호를 부르면서 한켠으로는 근심이 천만이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절의 범종이 어떻게 세 번 울릴 수 있다는 말이냐. 결국 나는 이곳에서 구렁이의 밥이 되고 말겠구나. 부처님을 들먹이면 자비심으로 살려 주리라 기대했는데 다 틀렸구먼.’
그러나 이생은 생각을 다잡아서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서 노파의 제안에 무조건 따르겠다고 말했다.이생은 일심정력으로 부처님님의 명호를 부를 뿐이었다.

<새벽 예불시간이 다 되었어도 범종은 울리지 않았다. 노파는 이생을 비웃으며 말했다.
“범종이 울리지 않는 것을 보니 부처님도 네놈의 죄를 인정하시는 것 같다. 죽을 준비는 되었겠지? 며늘아, 다시 힘껏 감아 죄어 뼈를 부러뜨리고 슬슬 먹어 치워라!”
드디어 운명의 순간이 왔다. 거대한
구렁이가 다시 무섭게 감아 죄기 시작하였다. 이생은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이생이
체념하여 죽음을 받아들이려 할 때, 분명히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뎅―! 뎅―! 뎅―!”

일정한 사이를 두고 빈 절의 범종은 울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노파는 경악의 표정을 짓고 길게 탄식하며 며느리에게 말했다.
“아가, 저건 분명히 종소리지? 맞지?”
“네 어머님. 아무도 살지 않는 절의 범종이 울려오고 있어요.”
노파는 침통한 얼굴로 며느리에게 말했다.
“부처님이 기적을 일으키시는구나. 우리에게 원한을 씻고 살생하지 말라는 뜻을 전하시는게야. 아가, 부처님의 뜻을 존중하여 따르자. 그 젊은이를 놓아주어 갈곳으로 가게 하거라. 그리고 우리는 이제부터 인과를 무섭게 알고 용으로 승천하는 수행이나 열심히 하자. 내 말에 따르겠냐?”
며느리는 울면서 말했다.
“남편이 죽은 것도 따지고 보면 전생에 정해진 정업이겠지요. 남편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면서 어머님과 함께 열심히 수행하겠어요.”
“히히히히….”
노파는 만족한 웃음을 징그럽게 웃고는 방안에서 나갔다.이생을 감은 거대한 구렁이도 스르르 이생을 풀어 주고 방문 밖으로 사라졌다. 죽음직전에서 구원을 받은 이생은 까무라치듯 의식을 잃었다.

<무서운 구렁이의 잇빨같은 것이 이생의 목에 꽉 박혀왔다. 이생은 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화들짝 눈을 떴다.
목에는 고목의 높은 나무 가지에 맺힌 이슬방울이 툭 하고 떨어져 부딪친 것이었고, 그 차가운 물방울 때문에 이생은 정신을 차리었다. 일체중생에게 따뜻한 광명을 주는 대일여래의 화신인 태양이 숲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생은 무서운 백발노파와 청상과부를 떠올리고 공포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주위를 살피었지만 고가도 두 원한맺힌 여인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다만 자신이 우거진 숲속의 고목아래 편편한 바위 위에 누워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이생은 혼자 말했다.
“내가 악몽을 꾼 것일까? 현실이 아닐까? 내가 구렁이를 죽여서 복수를 당하는 꿈을 꾼 것일까?.”
 이생은 한바탕 악몽을 꾼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거대한 구렁이가 몸을 칭칭 감을 때의 고통인 갈비뼈가 욱신욱신 아파왔다. 이생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잠시 쪼구리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겨 가까운 황폐한 절을 찾아보았다. 정말 그러한 절이 있을까? 꿈속의 절이 아니었을까?

숲속을 헤매든 이생의 시야에 놀랍게도 황폐한 절이 나타났다. 역시 황폐한 절에는 인적이 끊긴지 오래되었는지 절도량은 칡넝쿨과 쑥대밭이 무성해 있었다. 거미줄이 겹겹이 쳐 있는 법당안에는 거미줄 속에 부처님이 영원한 미소로 이생을 반기고 있었다.이생은 거미줄을 걷우고 부처님께 삼배의 절을 올리었다.
이생은 범종이 있는 종각(鐘閣)을 찾아보았다. 범종각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범종 옆에는 머리가 깨진 장꿩 한 마리가 눈과 코에 피를 흘리면서 죽어 있었다. 그 장꿩은 이생이 구렁이로부터 살려준 장꿩이었다.
그 장꿩의 옆에는 부인인 듯한 암꿩이 병아리 같은 새끼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슬프게 죽어버린 남편 꿩을 응시하며 슬퍼하고 있었다. 이생은 장꿩의 죽음에 대해서 확연히 깨달았다. 이생은 비로서 구렁이에게 죽을 뻔한 일은 꿈속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장꿩은 자신을 살려준 은인이 생사의 위태로움에 빠지자 보은의 일념으로 머리로 범종을 받아서 범종을 세 번 울리고 죽은 것이다.

이생은 장꿩의 시체를 가슴에 안고, 손으로 어루만지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목에인 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고맙구나. 네가 아니면 내가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너의 왕생극락을 위해 부처님께 기도해주겠다. 또, 인간의 남자로서 환생하면 꼭 나를 찾아오너라.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자.”

이생은 황폐한 사찰의 양지바른 곳에 꿩의 시체를 안장하고 나서 생각을 바꾸었다. 무과시험에 장원해서 세속에서 출세하겠다는 생각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그는 황폐한 절을 중수하고 그곳에서 승려가 되었다. 승려가 된 이생은 사람들에게 꿩의 보은 이야기를 하면서 적악산(赤岳山)의 적(赤)자를 꿩치(雉)자로 바꾸어 치악산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그 날의 황폐한 절은 치악산 상원사(上院寺)로 전해온다. 이 이야기는 치악산 상원사의 전설이다.

그날 죽은 꿩은 환생하여 다시 승려가 된 이생을 만났을까?
우리 모두 화두 삼아 정진해보자.*





(2003년7월17일,
제헌절날, 치악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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