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각황전의 전설

法徹 | 입력 : 2004/05/14 [21:44]

지리산 화엄사 覺皇殿의 전설



백제 성왕 22년(서기 544) 음력 3월 어느 봄 날, 지금의 화엄사 밑인 지리산 기슭에서 농사를 짓는 박노인은 이상한 승려를 발견했다. 두 눈이 크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승려였다. 그는 장차 화엄사를 창건할 인도에서 건너온 연기존자(緣起尊者)였다.

그는 동토에 불교를 펴려고 비구니인 어머니와 함께 수륙만리를 걸어서 지리산에 당도해 있었다.
그 때 그는 지금의 화엄사가 있는 터에서 움막을 치고 장차 부처님을 봉안할 법당을 마련하기 위해 서원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연기존자는 박노인에게 우리말을 배웠다. 연기존자는 천부적인 지혜총명으로 오래지 않아 우리말을 습득했다. 연기존자는 우리말로 박노인에게 불교를 전해주었다. 박노인은 연기존자에게 귀의하였다. 그는 손자인 선재를 연기존자의 시자로 출가시키기도 하였다. 나날히 귀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사부대중이 형성되었다. 마침내 사부대중은 원력을 세워 움막을 해체하고 최초로 요사이며, 설법전인 해회당(海會堂)을 창건했다. 그 다음해에 법당인 대웅상적광전(大雄常寂光殿)을창건했다.

법당이 준공되는 날, 박노인은 신도들을 대표해서 사찰의 이름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을 연기존자에게 말했다.
“사찰의 이름을 연기존자님의 명호를 감안하여 연기사(緣起寺)라고 하였으면 하는 것이 저희 신도들의 뜻인데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연기존자는 잠시 침묵하여 골똘히 생각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빈도는 본국에서 대방광불화엄경을 수지독송 해왔고, 현재도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수행을 하고 있지요. 빈도가 이곳에 온 목적은 부처님의 화엄법문을 선양하기 위함이니 화엄사(華嚴寺)라고 하였으면 합니다.”
신도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저희들은 존경하는 연기존자님의 가르침에 오직 따르겠습니다.”
연기존자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이어서 말했다.
“빈도가 처음 이 산에 들어와 삼매에 들어보니 이 산은 백두산의 정기가 산맥을 타고 내려와 한군데로 응집된 천하의 영산이었습니다. 또 이 산은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舍利菩薩)이 상주설법 하는 도량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산의 이름은 지금까지 전해오는 두류산보다는 앞서의 문수보살을 의미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고 명명하였으면 합니다. 따라서 사찰의 이름은 ‘지리산화엄사(智異山華嚴寺)’라고 하였으면 합니다.”
마침내 연기존자와 그를 따르는 사부대중에 의해 지리산 화엄사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무상한 세월에 의해 연기존자와 박노인, 그리고 당시의 사부대중이 세연이 다한 그 후,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사리 73과를 화엄사에 모셔왔다. 자장율사는 화엄사에 네 사자(四獅子) 삼층석탑을 세우고, 그 안에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여 중생의 복전을 조성하였다.

그 후, 의상대사가 화엄사를 찾아왔다. 그는 화엄사에 주석하면서 문무왕 10년(서기 670)에 화엄사의 핵심인 장육전(丈六殿)을 창건하였다. 그 후, 라말여초(羅末麗初)에 화엄사에 주석한 도선국사가 화엄사를 총림으로 키우니 그 때가 화엄사 개창이래 최대규모를 가진 대총림이 되었다. 전국에서 3천명이 넘는 승려들이 화엄사에 운집하여 화엄학을 공부하며, 수행정진하였다. 그 후, 조선 세종6년(1462)에세종대왕은 어명으로 화엄사를 선종대본산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신앙을 시험하는 것인가. 화엄사에 무서운 시련이 들이닥쳤다. 임진왜란 때, 조총과 화포로 무장한 대군의 왜군이 화엄사에 쳐들어 온 것이다. 그것은 빼앗기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선 화엄사의 승군과의 전투에 의해서였다. 당파싸움에 국론을 분열시키든 일부 조정대신과 임금은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피신하려고 할 때, 당시 조선의 전국사찰의 승려들은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불살생(不殺生)의 계율을 어기면서까지 승군으로서 최전선에 나섰다. 특히 화엄사에 배속된 승군은 여수, 순천, 광양의 바닷가에서 왜군과 사생의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당시 막강한 왜군의 화력을 승군들이 당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승려들이 불호를 부르면서 전선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승군들은 점점 왜군에 밀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리산을 마지막 후퇴의 선으로 정하고 사력을 다해 전투에 나섰다. 승군은 지리산에서 왜군을 상대하여 게릴라전을 벌였다.
왜군들은 전국의 곳곳에서 접전한 승군 가운데 지리산을 근거로 게릴라전을 펼치는 지리산 승군이 가장 어렵고 두려웠다고 한다. 불시에 공격하고, 방대한 지리산 골짜기로 은신해버리는 지리산 승군이었든 것이다. 분노한 왜군은 지리산 승군의 총사령부인 화엄사를 공격하기 위해 노도처럼 화엄사로 몰려들었다. 그 때, 왜군의 방화로 인해 화엄사의 웅장한 8가람, 81암자의 모든 당우는 일시에 화마(火魔)에 휩싸여 사라지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때 오늘 이야기의 장육전도 불길에 의해 사라져버렸다.

장육전(丈六殿)은 부처님의 몸(16자)를 뜻하고, 그것을 황금장육불상(金色丈六佛像)이라고 불렀다.
장육전에는 2층4면7칸의 그 가운데 부처님을 모셨고, 부처님을 위요하듯 사방벽에 옥돌로 화엄경을 새기었다. 그 옥돌에다 새긴 화엄경은 불교의 최고경전으로서 팔십화엄(八十華嚴)으로 일컫고, 총 10조9만5천48자로 되어 있다. 사부대중은 그 장육전의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고, 서원을 세우고 성취해왔다. 그 장육전이 왜군의 방화에 의해 불타 사라져버린 것이다.

화엄사 승려들은 왜란의 전쟁이 끝나고, 전국적으로 의병장과 의병들의 활약상이 비석에 새겨지고 충렬사에 봉안되어 만대의 충신으로 조정에서 공훈을 추서할 때, 승병들은 그것을 사양하고, 오히려 부처님께 불살생의 계율을 파한 것을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고, 오직 불타버린 화엄사를 중창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일 뿐이었다.

그 후, 효종원년(1649)에 화엄사가 다시 선종대가람으로 승격된 직후, 당시 화엄사주지이며 화엄사 승군의 최고지휘자인 총섭(總攝)의 직책을 겸하고 있는 계파선사(桂波禪師)에 의해 소실된 장육전 중건의 서원하는 간절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계파선사는 깊은 수행과 덕망과 자비를 실천하는 승려였다.
어느 날 밤, 계파선사는 부처님 전에 향피우고 무릎꿇고 합장하여 장육전 중건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는 그 날도 날이 새도록 기도를 하는 중에 비몽사몽간에 금빛 광명 속에 문수보살이 나타났다. 감격하여 우러르는 계파선사에게 문수보살은 계파선사에게 말했다.
“계파선사여, 큰 불사를 성취하려면, 그 불사와 인연 있는 진실한 화주승(化主僧)을 선발해서 그 화주승이 복 있는 시주(施主)를 만나야 하느니라.”
“진실한 화주승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사옵니까.”
“찾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물을 담은 항아리와 밀가루를 담은 항아리를 준비하고, 먼저 물 항아리에 손을 담근 다음에 밀가루를 담은 항아리에 손을 넣어서 밀가루가 손에 묻지 않은 승려가 장육전 중건의 인연있는 진실한 승려이니라.”
계파선사는 대중스님에게 꿈속에서 문수보살의 계시를 전하였다. 대중스님은 그대로 시험해보기로 했다. 화엄사 산내 스님들 천여명이 모두 응시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공양간에서 공양을 짓는 공양주스님이 한 명 남았다. 그는 가난한 집의 아들로서 출가하여 수계한 이후, 오직 10년동안 대중스님의 공양만을 짓겠다고 원력을 세운 30대 중반의 승려였다. 그가 원력을 세운 10년 공양주의 기한도 끝나가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시험에 응했다. 대중스님들은 이미 희망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공양주스님의 손에 밀가루가 묻어 나오지 않았다. 계파선사는 대중에게 사실을 알리고, 대중과 함께 가사장삼을 입고서 공양주스님을 향해 삼배의 절을 올렸다. 대중들은 이구동성으로 장육전 중건의 화주승의 중책을 맡기었다. 계파선사는 공양주스님에게 말했다.
“그대가 10년을 공양주로 일을 했기 때문에 그 어떤 대중스님보다 복력(福力)이 수승하기에 오늘의 시험에 이적을 나타낸 것이다. 그대는 문수보살이 선택한 화주승이다. 부디, 진력하여 장육전을 중건해주기 바란다.”

공양주스님은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수행방법의 하나로 오직 공양간에서 대중공양만 지었을 뿐, 화주에는 전혀 아는 것이 없어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그는 문수보살과 대중의 뜻에 의해 장육전 중건을 책임진 화주승이 되었다. 그는 연신 한숨을 내쉬면서 백일간 문수보살기도에 들어갔다. 그는 법당에 들어가 문수보살님의 명호정근을 하며 울면서 발원했다.
“대지혜의 문수보살님이시여, 저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어찌하여야 온대중의 소원인 장육전을 중건할 수 있겠사옵니까. 부디, 하루속히 대지혜를 주소서.”

화엄사에서 구례 쪽에 섬진강이 있었다. 섬진강이 환히 보이는 산 밑에 움막 같은 외딴집이 한 채 있었다. 그곳에는 팔순이 이 넘은 백발노파가 홀로 살고 있었다. 그녀는 돌보아줄 남편이나 형제자매, 그리고 자식도 없이 홀로 사는 가난하고 외로운 노파였다. 그녀는 그곳출신이 아닌 먼 타지방에서 30대 중반에 유랑민처럼 흘러 들어온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을 뿐, 그녀에 출신고향에 대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젊을 때는 자색이 출중했다. 후리후리한 키에 계란형의 얼굴, 오똑한 코, 작으면서 굳게 닫힌 붉은 입술, 그녀의 오른 쪽 이마에는 팥알 만한 검은 점이 하나 있었다. 그녀에게 욕심을 내는 남자들도 있었다. 욕심을 내어 유혹하는 남자가 있으면 그녀는 자신이 무섭고 몹쓸 전염병이 들어서 시댁에서 내쫓긴 몸이라고 둘러대어 남자를 물리쳤다. 또, 그녀는 일부러 얼굴에 세면을 하지 않고 숯검정까지 묻혀서 추하게 보이게 하여서 여자를 탐하는 남자로부터 관심 밖의 인물이 되었다.

그녀는 가끔씩 화엄사에서 법회가 있을 때는 등에 걸망을 메고 터벅터벅 걸어 찾아가서 맨 뒤에서 송구스러운 얼굴로 법문을 듣고, 법회가 끝나면 부엌의 반찬을 만드는 채공(菜供)보살을 돕고, 궂은 일을 해주고, 댓가로 남은 식은 밥과 누릉지 등을 얻어서 걸망에 담아 자신의 움막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화엄사에서 얻어온 식은 밥과 누릉지로 끼니를 때우면서 움막의 자신의 방에 정좌하여 염주를 한 알, 한 알 돌리면서 ‘나무 대지문수사리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기도를 했다. 그녀의 기도방법은 첫째, 천수경을 낭송하고, 둘째, 문수기도를 하고, 세째, 생사윤회를 하지 않겠다고 서원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방안 벽에는 원효대사의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莫生兮其死也苦 莫死兮其生也苦
세상 태어나지 말아라, 죽기가 괴롭다
죽지도 말아라, 태어나는 것도 괴롭다.



그녀는 눈비가 오지 않는 따뜻한 날은 움막에서 가까운 섬진강 강가의 바위에 정좌하여 밤이 깊도록 염주를 돌리면서 기도를 했다. 깊은 밤이면 밤하늘의 항하사 모래수와 같은 성군(星群)을 우러르며 뜨거운 눈물로 양볼을 적시면서 기도를 했다. 그녀는 어느 때는 달 밝은 밤, 강가의 바위에 앉아 달이 지고 해가 뜨는 줄도 모르게 기도삼매에 몰입하기도 했다. 그녀가 기도하는 강가의 바위 밑에는 섬진강에서는 가장 수심이 깊은 곳이어서 검푸른 강물이 소리 죽여 흐르는 곳이었다.

독자는 상상해보시라. 기구한 사연을 알 수 없는 30대 중반을 넘은 여인이 일부러 빼어난 자색에 화장이 아닌 추하게 만들고, 남루한 옷을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서 삼라만상이 잠든 밤에 홀로 깨어서 문수보살을 부르는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30대 중반의 그녀는, 기도 속에 세월은 섬진강의 무심한 강물처럼 흘러서 이제 검은머리는 백발이 되어 버렸다. 이제 그녀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오히려 마주치면 피하는 쭈굴 쭈굴한 피부와 등에 남루한 걸망을 메고 대지팡이를 들고서 비틀거리며 걷는 백발의 거지노파가 되어 있었다.

장육전 중건의 서원을 세운 백일문수기도가 끝나는 전 날 밤, 화주승의 꿈속에 금빛 광명의 문수보살이 나타났다. 문수보살은 자비로운 얼굴로 화주승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육전의 불사를 하려면 시주자가 전생에 복을 많이 진 사람이어야 하느니라. 그러나, 그대는 너무 걱정하지 말지어다. 내일 이른 아침이면 새로운 장육전을 시주할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니라.”
화주승은 놀랍고 감격하여 합장하여 우러르며 말했다.
“제가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나 뵈워야 하는 것이옵니까? 하교하여 주소서.”

“내일 아침 공양 전에 시주자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서라. 그대가 만나야 할 시주는 그대가 산을 내려가면서 제일 처음 만나는 사람이니라. 그대는 처음 만나는 그 사람에게 꼭 장육전 시주의 약속을 꼭 받아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예. 하교대로 그 분께 반드시 장육전 시주를 약속 받겠사옵니다.”

화주승은 꿈에서 깨어나 문수보살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난 후 이른 새벽 설레는 가슴을 안고 산문을 나서 하산하기 시작했다. 화엄사 쪽은 이른 아침이면 안개가 많이 깔린다. 그는 안개 속을 터벅터벅 걸으면서 생각했다.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은 누구일까? 고관대작일까? 아니면 천석군일까? 만석군일까? 장육전을 중건하려면 큰 자금이 들어가기에 보통사람은 아닐 것이었다. 화주승은 속으로 문수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안개가 무성한 시야를 살피면서 길을 걸었다. 그 때, 그의 시야의 안개 속에 사람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인 것이다. 그 사람은 안개 속에 화엄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오오, 문수보살님이 정녕 허튼 분이 아니시구나. 그는 설레이는 가슴으로 그 자리에 서서 합장한 채 다가오는 사람을 기다렸다.

드디어 안개속에 나타난 사람의 모습을 식별했을 때, 공양주스님은 깜짝 놀랐다. 뜻밖에도 다가오는 사람은 그가 잘 아는 앞서의 거지노파였다. 화주승은 10년간 공양주로 일할 때 공양간을 찾아온 그녀에게 누릉지를 모와 보시했기 때문에 그녀를 너무 잘알고 있었든 것이다. 사람들이 그녀의 성과 이름을 물을라 치면 그녀는 미소하면서 손가락으로 그녀의 오른 쪽 이마의 점을 가리키며 점박이 노파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녀는 화엄사에 자주 올라와서 잔심부름을 해주고, 대중스님이 먹고 남은 음식과 누릉지 등을 얻어가서 끼니를 때우며 목숨을 연명했지만, 이제 늙어서 화엄사를 찾아오는 횟수도 줄어 있었다.


화주승은 순간 절망했다. 아아, 저 거지노파가 어떻게 장육전 중건자금을 시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절망, 낙담했다. 문수보살이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절망에 빠진 공양주스님의 가슴속에는 문수보살의 계시가 소리쳤다.
"그대는 처음 만나는 그 사람에게 꼭 장육전 시주의 약속을 꼭 받아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화주승은 절망에 빠져 있었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문수보살의 계시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거지노파 앞의 맨 땅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었다. 때마침 거지노파는 끼니거리를 얻기 위해 이른 아침 화엄사를 찾는 길이었다. 거지노파는 길에서 맨땅에 업드려 절하고 있는 승려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스님, 무슨 짓입니까. 왜 저 같은 노파에게 맨 땅에서 큰절을 하십니까? 어서 일어나세요. 이래서는 안됩니다.”
화주승은 업드린 채 목이 메인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대보살님, 부디 장육전을 지어주십시오!”
거지노파는 땅위에 엎드려 있는 화주승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딱한 얼굴로 슬프게 말했다.
“스님, 천지에 의지할 데 없는 거지노파가 어떻게 장육전을 지을 자금을 시주할 수 있겠어요. 저를 놀리지 마시고, 부자를 찾아보세요.”
“저는 어젯밤 꿈에 문수보살님의 계시를 봉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발, 장육전 중건에 시주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예? 문수보살님이 꿈속에서 계시 하셨다고요?”
“거짓이 아닙니다. 분명 문수보살님이 계시하시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어쩌나, 가난하지만 저도 일생을 통해 문수보살님을 향한 기도를 해왔는데, 큰일났네요. 수중에 한푼의 돈이 없으니….”
“제발, 장육전을 시주하시겠다고 약속의 말이라도 해주십시오.”
엎드려 애원하는 화주승을 측은하게 내려다보는 거지노파의 양 볼에는 뜨거운 눈물이 타고 내렸다. 그녀는 슬픈 음성으로 대답했다.
“문수보살님의 뜻이라면 약속하지요. 장육전 중건 시주금을 드리겠다고 약속하겠어요. 하지만, 금생에는 제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 불사금을 드리겠어요? 몸을 바꾸어야 오늘의 약속을 지킬 수 있지 않겠어요?”
“대보살님, 그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좋은 스님, 나의 기도처로 가서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터이니 따라 오세요.”

거지노파는 돌아서 문수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앞장 서 걸었고, 화주승은 기운 빠진 몰골로 뒤를 따랐다. 그녀의 움막에 다다르자 그녀는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녀는 화주승을 평소 자신이 기도하든 섬진강의 바위 위로 데려갔다. 그녀는 화주승과 바위위에 앉아 입을 슬픈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본래 경주의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서 명문가로 시집을 가서 아들 딸 남매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시아버지가 고위 관직에 있으면서 무고를 받아 역모죄의 누명을 쓰게 되었지요. 하루아침에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었어요."
".......!"
"온가족이 처참하게 죽고, 저와 두 아이는 관노의 운명에 처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두 남매를 데리고 탈주하려 했지만, 두 남매는 뒤쫓는 병사들의 화살에 모두 죽고 나홀로 이곳에 와서 성명을 숨기고 움막에서 숨어 살아왔답니다. 멸문지화를 당하고 난 후, 나는 속세가 싫어졌습니다. 움막에서 나홀로 기도하면서 소원이 다시는 인간으로 환생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
"그런데, 스님께 장육전 중건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어찌 합니까. 또 한 번 환생의 슬픔을 겪어야 하겠군요."화주승은 깜작 놀라면서 물었다.
"다시 환생하신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요?"
거지노파는 슬프게 웃었다.
"곧 아시게 되겠지요. 훗날, 저와 해후하시게 되면 두 가지의 징표를 스님께 반드시 보이겠으니 꼭 기억해주세요.”
그녀는 왼 손 바닥에 ‘장육전’이라고 그녀가 붓글씨로 작게 적어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오른 쪽 이마의 검은 점을 가리키었다. 그녀는 슬프게 웃으면서 화주승을 작별했다.
“스님, 내생에 또 봅시다. 어서, 화엄사로 돌아가세요.”
화주승은 거지노파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발길을 돌이키는데, 거지노파는 항상 기도하던 섬진강 강가의 바위에 정좌하여 두 눈을 감고 합장하고서 문수보살의 명호를 애타게 부르며 기도에 들어갔다.

그녀는 울먹이는 음색으로 "나무 대지문수사리보살님, 나무 대지문수사리보살님" 기도에 들어가고 있었다. 화주승이 고개를 저으면서 터벅터벅 걷다가 멀리서 돌아보니 그녀는 슬픈 음색으로 마치 한서린 창(唱)을 하듯 문수보살을 부르면서 비틀비틀 깊어 검푸른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화주승은 그녀가 자살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만류하기 위해 소리를 치며 뛰어왔다.
“노보살님, 안돼요!”
"나무대지문수사리보살님" 거지노파의 슬픈 목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그녀의 치마가 강물에 잠기는 듯 싶자 곧이어 하얀 백발도 물 속에 사라져 버렸다.

섬진강은 불쌍한 노파의 한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가냘픈 육신의 생명을 거두고 무심히 흐르고만 있었다. 그녀의 한서린 창(唱)같은 염불소리가 강물 위에서 살아 메아리치는 듯 했다. 그녀가 기도하든 섬진강의 그 바위 위에서 화주승은 강물을 향해 애통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화엄사의 사하촌과 나아가 구례읍에서까지 사람들의 입에서는 화엄사 화주승이 불쌍한 거지노파에게 장육전 시주를 요구하였고, 거지노파는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섬진강 물속에 투신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그 소문의 진원지는 노파의 주검을 슬퍼하는 공양주스님의 고백에서 나왔다고도 했다. 저자의 주막집에서 술잔을 나누는 사람들, 저자의 여인네들 등 사람들은 울분 섞인 입방아를 찧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거지노파를 동정했다. 화주승을 매도하고, 화엄사 승려들을 매도 했다.
“처 죽일 놈들, 돌봐주는 이 없는 불쌍한 노파에게 거액의 시주를 요구하여 죽게 하다니…. 관아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그 화주승과 배후를 철저히 조사를 해서 살인죄의 형벌을 내려야 해!”
화엄사의 승려들도 낙심천만이었다. 장육전 시주인으로 거지노파가 선택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또 그 노파가 섬진강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낙심천만이었다. 오직 계파선사만은 묵언속에 오직 기도만 할 뿐이었다. 화주승은 자신의 시주약속에 거지노파가 자살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했다. 어느 날, 괴로움속에 주막집에 내려간 화주승에게 못생긴 주모는 화주승에게 이렇게 제안하기도 했다.
  “스님. 내가 스님을 좋아하는 거 아시지요? 곧 관아에서 포박하여 잡아가려고 온대요. 중노릇 때려치우고 나하고 멀리 떠나가 부부가 되어 백년해로 하는 게 어떻겠어요? 중노릇해도 죽고, 남녀간에 살비비고 살아도 죽는 것은 똑같지 않나요? 안 그런가요?”

드디어 관아에서는 빗발치는 여론을 받아들여 소문의 진상조사를 철저히 하겠다고 나섰다. 화주승을 포박하기 위해서 날센 포졸들을 화엄사에 파견했다. 화엄사의 장육전 중건불사는 물거품이 되는 듯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문수보살은 다시 화엄사 승려들의 꿈에 나타나 게시하지 않았다.

관아에서 포졸들이 들이닥쳤을 때, 화주승은 계파선사에 명에 의해 몸을 피했다. 화주승은 지리산을 벗어나면서 문수보살을 원망하였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정처 없이 속죄의 길을 떠났다. 아아, 내가 그날 노파에게 시주약속을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걸음걸음마다 그 점박이 노파에게 참회를 했고, 천도의 기도를 드렸다. 그는 두만강을 건너 청국에 까지 들어가 정처 없이 걸으며 천도의 기도를 드렸다. 무상한 산색이 여섯번이나 바뀌었다.



그 무렵, 청나라 강희제(康熙帝(1661∼1722)는 50이 넘어서 공주를 얻게 되었다. 공주는 예쁘고 귀여웠다.
늦게 얻은 공주에 대한 황제의 총애는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찌된 연유인지 공주는 태어나면서 왼 손을 감아 쥔 손이 펴지지 않았고, 웃지를 않고 항상 슬피 울었다. 황제가 달래면 울음을 그쳤다가 혼자가 되면 슬피 울었다. 황제는 억지로 쥔 손을 펴려고 하면 비명을 지르면서 싫어하는 것이었다. 귀여운 딸에 대해 황제는 크게 걱정했다. 이러한 공주의 병은 소리소문 없이 궁궐 밖으로 퍼져 나갔다.

어느 화창한 봄 날, 황후와 후궁들은 여섯살 난 울보공주를 달래기 위해 궁궐 밖 대로변에 있는 누각에 올라서 대로변에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시키고 있었다. 이상한 공주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다투워 누각 밑에 모여서 공주를 보려고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군중들은 예의를 갖추면서 공주에게 손을 흔들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공주는 기뻐하지 않고 울면서 군중들을 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때, 뜻밖에 일이 벌어졌다. 울기만 하든 공주가 울음을 딱 그치고 활짝 웃으며 손으로 군중 속을 가리키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저기, 우리 스님이 있어요.”
황후가 놀라서 공주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이국의 승려 한 사람이 초라하게 서 있었다. 그는 청나라에 온 화주승이었다. 그도 이상한 공주의 소문을 듣고 구경을 나와 있었든 것이다. 그는 돌연 누각 위의 황후와 시녀들과 함께 군중들의 시선마저 자신에게 모이자 깜짝 놀랐다. 관원에 붙잡히면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황급히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고 했다. 공주는 도망치려는 승려를 손으로 가리키며 또 울음을 터뜨리었다. 황후가 공주에게 말했다.
“저 스님을 데려올까?”
공주는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황후는 어전 시위를 시켜서 승려를 데려오게 했다. 승려는 황후 앞에 부복하여 자신은 조선에서 왔으며 죽을죄를 지었다는 것을 고백했다. 그 때, 공주가 달려와 승려의 옷을 잡으며 웃고는 ‘우리 스님’이라고 좋아하는 것이었다. 공주는 승려의 눈앞에 꼬옥 쥔 손을 활짝 펴 보였다. 손바닥에는 ‘장육전’이라고 씌여 있었다. 그리고 공주는 웃으며 손으로 오른 쪽 이마를 가리키었다. 그곳에는 팥알 만한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화주승은 그제서야 눈앞에 안개가 걷힌 듯 깨달음이 왔다. 지난 날, 거지노파가 말할 광경이 여름날의 뭉개구름처럼 피워 올랐다. 손바닥에 쓴 붓글씨, 이마의 검은 점…. 화주승은 공주가 장육전의 중건약속을 한 점박이 노파의 환생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이한 인연의 이야기를 보고 받은 황제와 황후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비로소 인간의 육신은 멸해도, 그 영혼은 인연따라 윤회전생 한다는 것을 확연히 깨닫고 확신하였다. 황제는 조선에서 온 승려를 특별히 접견하여 치하했다. 황제는 공주의 전생의 약속을 지켜주었다. 황제는 그리고 인과응보사상을 선양하며 생명존중 사상 속에서 정치를 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전국에서 옥고를 치르는 수형자들에게 대사면을 내렸다.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가는 화주승에게 장육전을 중건할 수 있는 불사금을 시주했다. 그는 마침내 전생의 시주약속을 공주로부터 받은 것이다.


아름답고, 애달프며, 신비한 환생의 이야기 속에 마침내 장육전이 중건된다는 보고를 접한 조선의 숙종도 깊은 깨달음이 왔다. 영혼은 불멸한 가운데 스스로 지은 인과에 따라 윤회전생 한다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숙종은 자신도 장육전 중건에 시주에 동참을 하는 시주금을 하사했다. 그리고 그는 큰 붓으로 중건되는 장육전의 이름을 ‘황제를 깨닫게 한 전당’이라는 뜻에서 각황전(覺皇殿)이라고 써서 시주하였다. 그 때가 청나라 강희제 38년이요, 숙종 25년이 되는 기묘년(1699)이었다.

각황전은 두 명의 황제를 깨닫게 한 영험한 법당인 것이다.
지금도 화엄사 각황전을 찾으면 오랜 세월 풍우에 씻긴 숙종의 정성어린 글씨를 볼 수 있다.

고색이 창연한 각황전에 서서 필자는 이렇게 시를 읊는다.

무상을 깨달은 여인이 부질없는 속세의 인연 끊으려고
섬진강 강가에서 문수보살 기도만 하고 살았네.
문수보살이 각황전을 고해에 남기시려고 방편을 쓰니,
여인은 생사를 자재하여 제왕가에 태어나 시주약속을 지켰네.

이 이야기는 전남 구례 화엄사 각황전에 전해오는 전설이다. 각황전은 두 가지의 뜻이 있다. 첫째는 부처님을 일컬어 ‘깨달음의 황제’라는 뜻이고, 두 번째는 ‘황제를 깨닫게 해준 전당’이라는 뜻이다. 숙종이 사액한 각황전은 두 가지의 의미가 다 포함되었다.
또한 이 전설은 삼생(과거, 현재, 미래)이 전지전능한 신의 무조건적인 배려가 아닌 모두 자기 스스로 짓는 인과응보에 따라 이루어지며, 환생은 분명히 있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다.




(2003년12월10일, 오후,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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