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가에서 무(無)와 공(空)을 절감한다

이법철 | 입력 : 2016/08/23 [07:00]

부처님은 자신이 열반에 들어야 하는 시간이 도래하자 수많은 제자들이 울며 부처님이 열반에 들지 말고 이 세상에 좀 더 살아 설법해 주시기를 이구동성으로 소원했다. 이 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 이 세상의 형상이 있는 생명체는 영원할 수가 없다. 제행무상으로 모든 상(相)은 무(無)요 공(空)으로 변할 뿐이다”는 법문을 해주었다. 나는 남한강 강변에서 또하나의 무와 공을 절감하는 애기가 있어 세상에 전한다.

나는 혼자 한달이 지나서 자주 찾는 남한강 강변을 찾아나섰다.

물병에 물을 가득담고 슈퍼에서 작은 도마토 과일을 조금사고 일천원 짜리 멸치를 사서 걸망에 담고 강변쪽을 혼자 걸었다. 강변 쪽에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어 나는 강변을 찾아나서면 언제나 그들을 찾는다. 내가 우정 친구라고 다정하게 호칭하는 대상은 인간이 아닌 말 못하는 짐승들이다.

강변 쪽 마을의 집에서 키우는 돼지 어미와 새끼들, 강둑에 쇠말둑에 코뚜레에 묶인 어미 소와 귀염둥이 송아지, 역시 강둑에 묶여진 염소, 강쪽 마을의 돼지들, 그리고 남한강 강 속과 강 속의 바위에서 질서있게 노닐고 있는 왜가리, 물오리 등을 나는 관찰하기도 한다.

나는 한 달 전에 강변을 찾았을 때는 어린 송아지가 달리기를 어미소에게 보여주듯 힘차게 앞으로 달렸다가 어미소에게 다시 달려오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어미소는 달리는 송아지를 보고 무엇이 그리 기쁜지 바라보더니 같이 뛰고 싶어하는 몸짓을 하는데, 코뚜레에 묶인 줄이 쇠말둑에 걸려 있어 어미소는 송아지와 함께 강변을 뛸 수가 없었다. 나는 어미소에게 다가가 “함께 뛰고 싶어?”하고 물었다. 어미소는 뛰노는 새끼만 보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살피고 어미소의 쇠말둑을 함껏 뽑아 주었다. 어미소는 송아지와 함께 강변을 뛰고 또 돌아오고 또 뛰었다.

소주인에게 혼날 일을 하는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염소는 염소 특유의 웃는건지 경고하는 건지 소리를 질러대었다. 나는 염소를 만날 때면 천원짜리 멸치를 사서 손바닥에 내주면 멸치를 잘 먹었다. 염소는 자신의 형편이 멸치를 구해 먹을 수가 없어 풀을 뜯어 저작을 하고 있는 것이지 염소가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는 멸치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멸치를 다 주고 강변에 앉아 있으니 염소가 나의 등에 박치기 하듯 살짝 부딪치고 소리를 지른다. 나에게는 “소가 도주하면 큰 사고다. 다시 묶어야 한다” 들렸다. 나는 어미 자식이 자유를 누리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줄을 잡았고, 쇠말둑을 원위치에 박았다.

나는 염소와 소에게 “내생에는 인간의 몸을 받아 수행하여 윤회전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라.”는 축도(祝禱)를 해주고 떠나오면서 마을의 돼지 축사를 찾았다.

어미 돼지는 쿨쿨 잠자고 있는 새끼들을 주둥이로 깨워서 새끼 모두에게 젖을 물렸다. 내 귀에는 어미돼지는 꿀꿀 거리는 소리였지만, “애들아 고만 자고 젖 먹을 때이다.” 하는 것같았다. 나는 걸망에서 방울 도마토를 꺼내 돼지 엄마의 입근처에 던져 주었다. 엄마 돼지는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면서 도마토를 순식간에 먹어치워버렸다. 역시 나는 작별할 때, 다음생에는 인간의 몸 받아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기를 축도하고 떠나왔었다.

한 달 후에 찾으니 놀라운 제행무상이 있었다. 나는 돼지 축사를 찾으니 어미 돼지는 없고 새끼들만 있었다. 어미 돼지는 돈에 팔려 도축장에서 인간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황천길로 떠난 것같았다.

어미없는 돼지 형제들은 식탐으로 안면몰수 짓을 하고 있었다. 돼지 새끼들이 밥그릇과 같은 먹이통의 음식물을 두고 인정사정 없이 투쟁하고 있었다. 힘센 돼지가 다른 형제는 밥그릇에 범접하지 못하도록 성질을 내어 쫓아 버리고 혼자 먹어치우고 제배가 부르니 돼지 밥그릇 위에 들어 누워 버렸다.

형제고 뭐고 밥그릇은 혼자 차지하겠다는 근성을 보였다. 힘 약한 형제들은 어찌해볼 재간이 없었다. 나는 기다란 막대기로 밥그릇위에 누워 있는 돼지의 배와 다리 사이를 살살 긁어 주었다. 힘센 돼지새끼는 벌떡 일어나 본격적으로 긁어 달라는 듯 바닥에 들어누웠다. 내가 막대기로 힘센 돼지새끼를 긁어 줄 때 그 기회를 타고 힘없는 형제 돼지들이 재빨리 밥그릇에 주둥이를 대고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나는 돼지새끼들을 보면서 연상되는 것은 한국에 모 재벌회장이 이권 때문에 힘없는 형을 죽을 때까지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돈에 탐착을 하더니 그 역시 저승사자가 포박하여 연행 당하기 직전의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나는 중얼중얼 새끼 돼지들을 위해 축도를 해주고 강변에 서서 살피니 어미 소는 사라졌고, 송아지만 묶여 하늘에 애소하듯 “음매” 아니 “엄마”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소주인이 돈을 받고 어미 소를 팔아 버린 것같았다. 멸치를 좋아하던 염소마저 사라져 버렸다. 무심한 남한강 강물만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강가에 앉아 개탄을 토했다.

때마침 강속의 바위에서는 정해진 시간인듯 강 속의 바위에 물오리들과 왜가리 등이 임무교대가 보였다. 오전에는 왜가리 등이 바위를 독차지하여 쉼터로 삼고 정오가 되면 왜가리 등은 일제히 철수하고, 물오리 가족들이 바위에 앉아 쉬는 것이다. 나는 물오리들에게 외쳤다. “너희들이 현자야, 돼지 어멈도, 송아지 어멈도 염소도 인간의 손에 의해 저승으로 떠난 것같아”

나는 슬픈 마음속에 그들이 끌려간 도축장을 떠올렸다. 나는 예전에 도축장을 찾아 극락왕생을 바라는 독경을 한 적이 있다. 도축장에 끌려온 소와 돼지는 죽음을 예감하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소는 우공(牛公)이라는 존칭처럼 저항하지 않고 말없이 눈물속에 죽어갔지만, 돼지 대부분은 경박하게 소리쳐 비명을 내지르고 몸부림을 치다가 도살되었다.

일부 돼지 수컷은 도살장 입구에서 암컷 등에 올라타고 섹스를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서인가, 최후까지 종족번식에 진력하겠다는 것인가? 종족을 번식해야 인간의 먹거리 대상인데 말이다.

나는 강가에 바위에 정좌하여 “왜 천지는 모든 생명을 살게 하면서 약육강식(弱肉强食)하게 하는가?” 라는 화두를 들고 앉았다. 나는 죽음으로 떠난 남한강변의 친구들의 영혼이 다시는 인간의 먹거리가 되는 축생으로 환생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나는 밤하늘에 항하사 모래수와 같은 별들을 우러르며 광대무변한 우주를 명상했다. “집에 가서 잠이나 자쇼”하듯 밤이 깊어가는 남한강 쪽에는 이상한 밤새들이 소리를 내며 명상하는 내곁을 지나며 돌아가라고 독촉하듯 했지만 나는 밤하늘의 우주를 관찰하던 싯다르타같이 밤하늘을 우러렀다.

싯다르타는 니련선하(泥蓮禪河)의 강가 보리수 나무아래 바위에 앉아 고행하다가 새벽에 떠오르는 명성(明星)을 보고 우주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불경은 전해 오지만, 나는 남한강 강변에서 새벽까지 밤하늘의 별들을 관찰하고 광대무변한 우주를 명상했지만 전생의 업장이 두터운지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새벽이 되어서야 내가 확실히 깨달은 것은 지구라는 윤회열차는 승객같은 많은 생명들을 살게 하고, 대기권으로 우주에서 날아오는 바위조각들로부터 어머니가 자식 보호하듯 보호해주지만, 약육강식의 고통을 묵인하고 모든 생명체가 갈구하고 있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주지 않고, 결론은 무(無)요, 공(空)으로 돌아가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끝으로, 모든 종교의 이상세계인 천당과 극락은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흐르는 지구에는 기대할 수 없고, 우주의 어느 곳인지 항성(恒星)에 가능하다는 나의 생각이지만 육신으로는 갈 수 없는 항성이라고 생각할 때, 고달픈 인생들의 위안이요 희망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천당과 극락은 지구에 가능하도록 인간들이 진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현이나 범부도 모두 결국 무(無)요 공(空)으로 귀결 지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개인적인 지나친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나 해원상생(解寃相生)하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천상천하에 내가 제일이다(唯我獨尊)이라고 호언하는 인간도 광대무변한 우주에 비하면 찰나같은 수명이요, 먼지 같은 인생이 아니던가. ◇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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