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達磨)대사는 어디로 갔는가?

이법철 | 입력 : 2016/06/12 [13:29]

달마대사는 불교신자 사이에는 부처님 다음으로 마치 2인자같이 숭배하고 좋아하는 수도승이다. 그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이라는 나라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으나 승려가 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첫째, 영원한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해서 스스로 승려가 되었다는 설과 둘째, 왕의 정실이 아닌 후궁의 몸에서 태어났으나 문무가 출중하여 왕위 계승에 피바람을 예고하여 어머니의 권고로 형제간의 싸움을 피해 승려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의 이름은 범어(梵語)로는 보디다르마이며, 보리달마(菩提達磨)로 부르고 약칭으로 달마(達磨)로 부른다.

달마는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禪)에 통달하였다. 그는 중국에 자신이 깨달은 선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520년경 중국에 들어올 때 양자강을 건너는 데 갈대 잎 하나를 강물에 띄워 그 갈대 위에 서서 강을 건넜다는 신비한 전언(傳言) 있어 훗날 달마도의 그림 가운데는 갈대잎을 타고 강을 건너는 모습이 있다. 나는 논평하건대 신비주의를 좋아하는 자들의 술수라고 평가한다. 완전히 죽은 자가 부활했다거나 갈대 잎을 배삼아 타고 큰 강을 건넜다고 신비주의를 퍼뜨리는 자들은 무책임한 허풍장이라고 나는 논평한다.

달마대사는 중국 땅에 와서 관찰해보니 당시 불교는 첫째 가람불교(伽藍佛敎)를 하고 있었다. 대형사찰이나 대형 불상, 대형탑 등을 비싼 돈을 들여 모시어 신앙하는 것을 위주로 우상숭배의 기복불교를 하고, 둘째, 강설불교(講說佛敎)로 사부대중을 몽땅 모와 놓고 무슨 경전 풀이식 설법으로 교화하고 있었다.

이에 달마대사는 팔만대장경은 마음에 진리를 깨달으면 나오는 것이라 가르치고, 진짜 불교는 마음공부를 하는 선불교(禪佛敎)를 통해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달마대사는 중국 불교에 선불교를 펴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당시 황제인 양무제에 면회신청을 하였다. 양무제는 불심이 깊어 주위에 항상 고승들을 두어 불교포교의 자문을 받아오며 실천하는 황제였다.

양무제는 인도에서 온 달마라는 승려가 선불교를 대중에게 주장하고 있다는 정보보고를 받고 내심 만나보고 싶던 차에 달마대사의 면회신청을 흔쾌히 승낙하였다. 양무제는 고문격인 고승들과 함께 달마대사를 영접하고 다과(茶果)를 준비하여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달마를 접견하는 양무제는 먼저 자신이 통치하는 지역에 대가람을 짓고, 대형불상과 대탑을 세우고, 팔만대장경을 유능한 학자스님들로부터 대중에게 강설하게 하는 자금 지원을 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자랑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달마대사에게 물었다. “나의 공덕은 크겠지요?”


양무제의 공덕자랑에 대한 질문을 듣자 달마대사는 갑자기 소태 씹은 얼굴이 되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공덕이 없습니다(所無公德.), 지옥에 직행하지 않으면 다행이요.”

이 말을 들은 양무제는 대경살색(大驚失色)하였고, 내심 노기충천하였다. 주위 고문 고승들도 놀라 얼굴은 낭패한 얼굴이었고, 내심 격분하였다. 불교의 흥성을 위해서 물심양면 아끼지 않는 양무제를 위로와 찬사는 못할망정 어찌 저렇게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인가, 주위 고문격의 고승들은 내심 격분으로 웅성거렸다. “제정신이 아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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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제는 애써 성난 마음을 진정하고 표정을 정색하여 달마대사가 황제를 몰라 보는 것 아닌가 싶었다.

“내가 누군지 아시오?”

달마대사는 또다시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알지 못하겠습니다(不識)

“성인은 있습니까? ”

달마대사는 툴명스럽게 대답하였다.

“성인은 없습니다(廓然無聖)”

또다시 체면이 구겨진 양무제에게 달마대사는 전별사(餞別辭)같이 이렇게 말하였다.

“황제께서는 칭찬을 받기 위해 불사를 많이 하였고, 그 욕망에 집착해 있습니다. 그 집착의 욕망을 내려놓는 방하착(放下着)을 하지 않고서 내가 어찌 황제의 공덕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만사만불만탑(萬寺萬佛萬塔)의 공덕도 소무공덕일 뿐입니다. 황제시여, 마음공부를 하시기 바랍니다.”

달마대사는 정중히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황제를 떠났다. 하지만 황제는 분하여 달마대사를 죽이고 싶어져 이런 말을 무심코 뱉었다. “오냐, 너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주장하는데 어디 죽나 안 죽나 훗날 보자!”

또 주위에서 함께 분노한 고문단의 고승들은 이구동성으로 달마대사의 무례를 꾸짖으며 이렇게 주청하였다. “황제 폐하, 폐하께서 그동안 전국에 사찰을 짓고, 불상을 모시고, 대장경을 중생에게 강설하게 하신 공덕은 하해와 같사옵니다. 참선공부를 조금 했다고 아만심(我慢心)으로 황제를 조롱한 호승(胡僧) 달마는 조정을 위해서나 불교를 위해서나 죽어 마땅한 자이옵니다. 불교를 위해서라도 달마에게 사형을 내려 불교를 발전되게 하소서.”

달마대사는 왜 칭찬에 인색한 것일까? 그는 스스로 양무제를 여러사람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모욕을 주었고, 황제의 비위를 맞추어 시주금을 받아 내려는 고승들에게 모욕을 주는 말을 하였기에 그의 비명횡사는 그의 입으로 마련되었다고 본다. 왜 달마대사는 대접 잘하는 황제에게 인사말이라도 칭찬에 인색하고 오히려 모욕을 주었다는 것인가? 진짜 선종(禪宗)을 선전하려면 황제에게 모욕보다는 칭찬속에 선종에 대한 설명과 협조를 구하는 것이 현명한데 달마대사는 직설(直說)로 모욕을 주고 훈계하고 떠나가 버린 것이다.

달마대사의 죽음에 대한 시나리오를 쓴 사람들은 다름아닌 양무제에 주위에 보비위를 하면서 불사를 빙자하여 시주금을 받아오던 중국 일부 고승들이었다.

중국 일부 고승들은 달마대사가 주장하는 선불교를 포교하지 못하도록 상책은 달마대사를 죽여 입을 막게하는 방법이요, 둘째 중국인들에게 오랑캐인 호승(胡僧)의 요언에 속지 않도록 선전하는 것이었다. 중국 고승들의 공작으로 달마대사는 선불교를 도저히 포교할 수가 없었다. 그는 포교를 포기하고, 마침내 낙양(洛陽) 동쪽의 숭산 (嵩山)에 있는 동굴에서 자신의 법을 계승할 중국인 청년 인재를 기다리며 9년간 면벽참선을 하기 시작하였다.

달마대사의 예측대로 중국인들 사이에는 숭산의 동굴속에 인도에서 온 승려가 정좌하여 묵언으로 참선하고 있다는 입소문이 전국에 퍼져갔다. 왜 동굴속에 앉아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인가? 소리 높여 염불도 않구? 졸지에 동굴은 관광지가 되었다.

드디어 9년째 되는 겨울이었다. 눈이 수북히 쌓인 동굴 앞에 순수하고 총명한 중국 청년이 찾아와 예를 갖추어 불교의 대의(大意)를 질문하였다. 달마대사는 등을 보이고 미동도 하지 않고 참선만 하였다. 청년은 자신의 문법이 장난이 아니라는 신(信)을 보이겠다며 차고 있던 칼을 뽑아 한 팔을 잘라내는 단비(斷臂)를 해보였다. 청년의 피는 동굴 앞에 쌓인 눈을 붉게 적셔갔다. 독자는 상상해보라. 진리를 구하기 위해 팔을 잘라내는 중국 청년 혜가(慧可)가 단비를 하고 동굴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달마대사는 혜가의 단비를 보고 드디어 고대하던 중국인 인재가 왔다는 것을 알고 돌아 앉아 혜가를 보았다. 이때 혜가는 이렇게 문법하였다.

“제가 마음이 불편합니다.”

제 칼로 제 팔을 끊은 혜가가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이때 달마대사는 혜가에게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불편한 마음을 가져와 보라. 마음을 편하게 해주겠노라.”


이어서 달마대사는 이렇게 법을 설해 주었다.

“밖으로는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는 헐떡이는 마음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비로소 도에 든다(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牆壁 加以入道)

이 날로부터 달마대사는 혜가를 제자로 받아들여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전하였다. 혜가는 중국 선종의 초대 달마대사에 이어 2대 조사의 반열에 오른다. 그 후 동굴은 소림굴(小林窟)이라고 명명 되었고, 굴 밑에는 광대한 소림사(小林寺)가 창건 되었고, 중국불교의 성지가 되었다. 작금에는 달마대사는 소림무술의 원조요, 관상학의 원조요, 심지어는 집을 지키는 수문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해타산이 진리하고 믿는 일부 중생은 달마대사를 상품화 한지 오래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달마대사를 시기하고, 선불교를 싫어하여 우상불교와 대가람주의 다탑주의로 황제와 신도들에게 시주금이나 받아 잘라먹는 당시 고승의 일부는 마침내 달마대사의 음식물에 독을 타서 달마대사를 죽게 하였다. 그의 죽음에는 모욕을 받은 황제의 비밀 지령이 있었고, 그 실행자는 황제 옆의 고승들인데 여기서는 달마대사를 죽게 한 고승들의 실명은 명기하지는 않겠다. 달마대사의 유체는 웅이산(熊耳山)에 매장 되었다.

여기서 부터는 형명한 독자가 애써 분석하고 대소(大笑)할 일이다. 달마대사에게도 부활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달마대사가 입적한지 3년이 지나서 위나라 대신 송운(宋雲)이 서역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길에 총령(蔥嶺=파미르고원)의 외길에서 마주 걸어오는 노승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평소 존경하는 달마대사였다. 달마대사는 지팡이에 짚신 한 짝을 걸고 맨발이었다. 송운이 깜짝 놀라 인사를 드리고 서로 안부를 물었다. 송운은 물었다. “대사님 어디로 가십니까?” 달마대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고국으로 가는 길이오.”

송운이 귀국하여 황제에게 보고하니 황제가 놀라 달마대사의 무덤속 관을 여니 달마대사는 없고 신발 한 짝 만 있었다는 이 이야기는 총령척리(蔥嶺隻履)라는 고사성어에 있다. 나는 논평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 죽은 것은 죽은 것인데, 송운은 왜 평지풍파를 만들어 내는가?

달마대사는 어디로 갔을까? 깨닫고 보면 지구는 우리의 태양계에 속한 행성으로 총알같은 속도로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돈다. 지구는 고속 윤회열차와 같다. 지구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는 승객과 같고, 정해진 시간에 태어나면 정해진 시간에 죽게 되어 있다. 인간이 아무리 애원을 하고 기도를 해도 돌고 도는 지구는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영원한 생명을 찾기 위해서 왕궁을 떠난 달마는 어디에 있을까? 그도 결국 지구를 돌게 하는 신(神)이던 부처이던 기획의도대로 왔다가 떠나갔을 뿐이다. 그러나 왕자이던 평민이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녘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정신으로 인생을 살기를 나는 바란다. 일체가 몽환(夢幻)같고 허무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나는 달마대사의 전법게(傳法偈)를 차제에 다시 세상에 전한다. 전법게는 장차 중국에 다 섯명의 선종의 휼륭한 제자가 올 것을 예언하였다.


내가 중국에 온 것은

吾本來玆土

진리를 밝혀 중생을 제도 하려는 것이니

傳法救迷精

한 송이의 꽃이 다섯 잎으로 활짝 피면

一華開五葉

열매는 저절로 맺어지리

結果自然成 ◇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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