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전생의 그 사람일세”

이법철 | 입력 : 2016/05/14 [12:19]

이 세상에는 우연은 없다. 통찰해 보면 모두 전생에 인연의 인과(因果)인 필연(必然)이다. 인간이 살면서 만나는 선연(善緣)과 악연(惡緣) 그리고 무해무득((無害無得)한 안연은 모두 전생의 인과(因果)이다. 특히 사랑하는 남녀는 전생에 재견(再見)을 외치는 사랑을 약속한 지중한 선연(善緣)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불교에는 옷깃 한 번 스쳐 지나는 것도 모두 전생의 인연법이라 했다. 따라서 부부의 인연은 하루아침에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백생의 인연에 의해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는 것을 가슴깊이 각오하고, 진심으로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러나 지중한 인연법도 한 생각 독랄(毒剌)하게 마음 먹으면 악연으로 돌변한다. 불경에는 사파세계의 인연은 있으면 모이고, 인연이 다하면 흩어진다(因緣聚, 因緣散)라고 정의했다. 불경은 전지전능한 신이 있어 중생을 선연(善緣)으로 인도하기 를 바라는 것보다 인간 스스로 대지혜 즉 마하반야(摩訶般若)로 인생에 졿은 인연을 만들고 악연을 멀리하고, 업고(業苦)를 벗어나라고 가르친다.

비유를 든다면, 호랑이가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 오는데, 인간이 무릎꿇고 하늘에 “전지전능한 신이여 구원해 주소서”의 기도를 할 것이 아니라 주변을 살펴 큰나무가 있으면 재빨리 나무로 피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구할 것을 가르키는 것이 불교의 핵심인 반야사상(般若思想)이다.

나는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전생의 인연으로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한 사례의 전해오는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자 한다. 어떤 이유던 나는 그동안 좌우의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 부처님 오신 날 까지도 정치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독자 여러분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는 생각에 범어사의 전설을 소개하는 것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묘향산(妙香山)에 수행하며 부처님의 법을 전하던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조선 팔도의 사찰에 승려들의 궐기를 맹촉하는 격문을 보냈다. 그 내용의 핵심은 “나라가 있고서야 불교가 있다.(護國護法)”, 백성이 왜구의 총칼로 도륙당하듯 살해당하고 있다. 우리 승병들이 나서 왜구의 총칼 앞에 서서 싸우면서 백성을 보호하자!“는 의승병 궐기의 격문이었다. 서산대사의 격문에 이어 사명대사, 뇌묵대사 등 조선팔도의 승려들이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단결되었다. 승병들은 부처님의 지엄한 계율인 불살생계(不殺生戒)를 파하면서 까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최전선으로 자진 뛰어들어 목숨을 바쳤다.

전국 승병들이 나라와 백성을 위한 호국호법(護國護法)으로 피흘려 죽어가고, 그 후 사명대사는 일본국에 사신으로 가서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최고 실권자가 된 도꾸가와 이에야쓰를 상대로 전쟁이 없는 강화조약을 맺고, 왜군에 끌려간 포로 3400여 명을 데리고 돌아오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외교의 성공을 하였다.

그러나 이조(李朝)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우선하는 왕과 조정과 유생들은 인진왜란이 끝나자 불교계를 또 괴롭혔다.

조정에서는 임진왜란 때 호국을 위한 승병활동을 전례로 들면서, 국가를 위한다는 호국의 대의명분아래 전국의 수도승들을 무차별 징발하여 노임없이 강제노역을 시켰다. 성(城)을 쌓고, 길을 닦으며 종이를 만들어 바치라는 등 무려 270여 가지의 노역을 강제로 시켰다. 호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승려들에게 후한 포상과 위로는 못할지언정 조정과 유생들은 혹독한 고통을 주었다.서울이 아닌 지방관아에서는 그 혹독한 횡포는 살인적이었다. 그 때 부산 동래(東萊) 범어사(梵魚寺)에 관한 부산 관아에서의 횡포는 기장 잔혹했다.

지방관아의 강제노역으로 고통을 받던 범어사 승려들은 죽어가면서 조정에 대한 깊은 회의속에 차라리 환속하여 속세에서 불교수행을 하는 것이 낫디는 생각에 승려들이 밤이면 눈물로써 범어사 부처님께 작별의 예배를 하고, 속세로 하산해 떠나갔다.

이 무렵 범어사에 불심이 깊고 수행을 잘하는 젊은 승려 낭백(郎佰)이 있었다. 그는 지방관아의 범어사에 대한 부당한 노역의 횡포에 맞서 폐지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동래부사(東萊府使)와 경상감사를 찾아가 진정서와 청원서를 접수시키고, 탄원도 해보았지만 관아에서는 공무를 시비 한다고 오히려 부당히 낭백에게 곤장(棍杖)을 때려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낭백은 어느 날 지방관아에서 할당해주는 노역을 하던 중 지방관아의 수령에게 아무리 진정서, 청원서, 등을 제출하고 애원을 해도 범어사 승려들에 대한 노역은 중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인간의 환생(還生)이 있다는 불경을 믿고, “내가 죽어 다음생에 경상도 감사, 순찰사가 되어 온다면….”적어도 범어사만은 승려들이 강제노역을에서 벗어나 수행자로서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낭백은 범어사 승려들의 강제 노역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감사, 순찰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단한 원력과 복(福)을 지어야 한다고 각오했다.

낭백은 하산하여 큰 길가에 움막을 짓고 수박과 참외를 많이 심어 과일이 크자 오가는 행인들에게 무료로 보시하고 행인의 건강과 복을 축원해주었다. 또 손에 피가 나도록 짚신을 많이 만들어 행인에게 무료로 보시했다. 그 밖에 선행이라면 무엇이던 닥치는대로 하루종일 무료로 해주었다. 밤이 이슥해지면 낭백은 옷깃을 정제하고 움막에 모신 작은 부처님의 상앞에 향을 사루고 이렇게 간절히 소원했다.

“부처님, 저로 하여금 다음 생에는 경상감사나 순찰사 같은 고관이 되어서 범어사의 모든 승려들이 부당한 강제노역에서 벗어나도록 하게 하소서.”

낭백의 눈물어린 기원과 보시정신은 다음 생의 감사나 순찰사를 인연으로 연결하기 위한 인연작복(因緣作福)이었던 것이다. 낭백은 그러한 기도와 보시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쉬지 않고 십여 년이나 계속했다. 낭백은 스스로 지은 인연의 힘이 성숙했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되었다. 그는 어느 날, 범어사에 돌아가 대중에게 유언처럼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나는 이제 대중을 위하여 사신(捨身)하렵니다. 내가 죽은 지 30년 후에 감사나 순찰사가 와서 범어사 승려들의 강제노역을 없애 주거든 그가 바로 나의 환생인 것을 알아 주십시오. 그 때의 믿음을 표시하기 위하여 오늘 나의 오른 쪽 이마의 팥알만한 검은 점은 그때도 똑같이 하고 오겠습니다.”

낭백은 대중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 길로 금정산(金井山) 깊이 들어가 홀로 장작을 쌓아 놓고 그 위에 정좌하여 스스로 불을 질러 합장하여 부처님께 기도하는 불호(佛號)를 외우면서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죽어갔다. “부처님, 제가 소원대로 다시오게 하소서.”

무상한 세월은 그 후 30년이 넘게 흘렀다. 어느 날 낮 기품이 있어 보이는 젊은 선비가 종자들을 여럿 데리고 범어사 일주문에 이르렀다.


선비는 자기가 걷는 길, 범어사의 풍경이 웬지 낮설어 보이지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옛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찰 경내를 여기저기 살펴보며 무단히 슬픈 마음이 되었다. 그는 수도승을 불러 자신을 소개했다. 새로 부임한 경상도 순찰사 조엄(趙嚴)이었다. 그는 범어사 수도승들에게 사찰의 제반사정을 물어 청취하고, 관아가 주는 사찰의 폐해를 말하라고 했다. 조엄은 범어사 승려들이 받는 강제노역 등 270여 가지의 잡역을 전부 면제 해주었다. 조엄의 오른 쪽 이마에는 팥알만한 검은 점이 있다는 것을 범어사 노승들은 보고 경악했다.

범어사의 노승들은 조엄 순찰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낭백스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조엄은 가슴이 철렁하고 귀가 번쩍 뜨이는 것같은 느낌에 날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다. (아아, 그래서 범어사 풍경이 고향에 온 것같았는가….)조엄은 어머니가 들려주던 태몽(胎夢)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불심깊은 어머니는 태몽꿈에 웬 수도승이 찾아와 엎드려 큰 절을 하였다는 꿈 애기를 훗날 조엄에게 해준 것이었다. 조엄 순찰서는, 범어사 노승들의 날백스님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의 태몽꿈과 환생의 표시로 오른 쪽 이마에 팥알만한 감은 점에 대한 이야기를 범어사 노승들로부터 들으면서 자신이 전생에 낭백스님의 환생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조엄은 옷깃을 정제하고 낭백스님이 기거하던 방을 찾아보고, 아직도 남아있는 낭백스님의 낡은 승복을 어루만지며 소리죽여 울었다. 조엄은 범어사 부처님전에 향을 사루며 윤회전쟁으로 다시 온 것을 말씀드리면서 소리죽여 울었다. 그 후, 조엄은 범어사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 유생들이 불교에 대한 부당한 핍박과 강제노역 등을 막아주는 데 앞장 서오다가 인연이 다해 세상을 떠났다는 벙어사의 전설이 있다.

아아, 이 세상에 환생에 대한 이야기가 어찌 낭백스님과 조엄에 대한 이야기 뿐이겠는가?

깨닫고 보면 환생은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예컨대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산다는 것은 분명히 우연이 아니다. 깨닫고 보면 모두 전생에에서 사랑의 약속인 재견(再見)을 말한 그 사람들이 금생에 또 만나 부부가 된 지중한 인연인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생각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는 없다. 이 모두 전생에 내가 복(福)지은 것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회전생하는 환생의 주체인 마음만은 변치 말아야 한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는 돈 때문에 소중한 전생의 인연을 악연으로 만들면 절대 안된다고 나는 주장한다.


나는 주장한다. 영겁의 시간을 두고 지구는 태양를 마치 총알처럼 돌고 돈다. 지구라는 행성(行星)은 윤회열차와 같다. 윤회열차의 승객이 된 사랑하는 남녀는 언제 어느 때도 “목숨 바쳐 사랑한다”고 서로에게 따뜻하고 신뢰의 말을 해주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너무도 빠르게 시간이 흐르는 윤회의 지구열차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의 나라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교화하는 서방정토인 항성(恒星)으로 같이 떠날 때까지 불변의 사랑을 하기를 나는 간절히 기도한다. 이 글을 마치는 데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아득히 들려온다. “그대가 지금 만나 사랑하는 사람이, 전생에 ”재견!(再見)“을 외치며, 사랑의 약속을 한 그 사람이라네.” ◇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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