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험의 나한도량, 설악산 계조암

중앙불교 | 입력 : 2006/06/07 [19:34]




영험의 나한도량, 설악산 계조암



설악산은 우리 민족의 영산중의 영산(靈山)이다. 영산은 중생에게 하늘과 땅의 생명의 기(氣)를 주는 성전(聖殿)같은 곳이다.

영산의 설악산 영봉(靈峰)가운데 단연 제일로 꼽는 곳은 울산봉이요, 또다른 이름인 울산바위이다.
설악산에 가서 울산바위를 보지 않고, 울산 바위를 향해 소원성취의 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설악산행은 허행(虛行)이라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산 바위는 영험하게 중생의 기도에 응답하는 성지이다. 이는 불교가 이땅에 전래된 1600여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다. 그러나 울산바위의 영기(靈氣)가 한 곳에 응집(凝集)된 도량이 있으니 역사에 유명한 계조암(繼祖庵)이다. 계조암의 등뒤에는 장엄한 울산 바위가 마치 계조암을 옹호하는 화엄신장같이 웅장하고 무섭고 신비하며 신령스러운 기(氣)를 뿜어내고 있다.  
영산의 설악산  영봉(靈峰)가운데 단연 제일로 꼽는 곳은 울산봉이요, 또다른 이름인 울산바위이다.
설악산에 가서 울산바위를 보지 않고, 울산 바위를 향해 소원성취의 기도를 하지 않았다면 설악산행은 허행(虛行)이라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산 바위는 영험하게 중생의 기도에 응답하는 성지이다. 이는 불교가 이땅에 전래된 1600여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다.

그러나 울산바위의 영기(靈氣)가 한 곳에 응집(凝集)된 도량이 있으니 역사에 유명한 계조암(繼祖庵)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설악산행을 하시거던 계조암의 흔들바위에 서서 울산봉을 우러러보시라. 울산봉에서 쏟아져 오는 신비한 기운을 감득(感得)할 수 있을 것이다.

울산바위에 신비한 전설이 내려온다. 조물주인 제석천(帝釋天)은 우주에 변만(邊滿)하신 법신불(法身佛)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자비심의 원력을 세웠다. 제석천은 중생을 위하여 천상에 있는 금강산처럼 하계(下界)에 금강산을 만들어 주려는 생각을 내었다. 제석천은 자신이 만든 금강산에서 중생들이 수행하고 기도하여 중생들이 하계에서 스스로  지은 몹쓸 업(業)인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해탈하여 영원한 낙원인 불계(佛界)인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하기 위해 자비심을 발한 것이다.

제석천은 금강산의 봉우리를 일만 이천봉으로 하고 각각의 봉우리는 모두 특색이 있게 조각하고 배열하여 조성하고 싶었다. 제석천의 생각은 중생들이 기호(機好)에 따라 일만이천봉에서 수행하고 기도하여 무루복(無漏福)을 짓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계조암은 부처님의 십대제자들을 위시한 나한의 진신들이 상주하는 나한도량이다. 나한도량은 상벌의 영험이 반드시 있고, 수행과 기도를 하면 반드시 소원을 이루는 도량이다.


제석천은 중생의 복전인 금강산을 만들려고 착수하면서 걱정이 앞섰다.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을 조성할 어마어마한 숫자의 바위가 없었던 것이다.
제석천은 신통력으로 전국각지에 서 있는 기암기석(奇巖奇石)들에게 기일내에 모두 금강산으로 모이도록 칙령(勅令)을 발하였다.
제석천의 영(令)을 받은 각지의 크고 작은 바위들은 일제히 금강산을 향해 긴 여행에 나섰다. 때마침 경북 울산 땅에는 남에게 자부하는 거대한 영암(靈巖)이 있었다.

이 영암에게도 칙령은 도착했다. 영암은 누구에게 뒤질세라 행장을 수습하여 금강산을 향해 길을 떠났다. 이 영암은 원래 덩치가 크고 미련하여 걸음이 느렸다. 그러나 부지런히 둔한 몸을 끌며 있는 힘을 다해 태백산 줄기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기어 올랐다.

해가 거의 서산에 떨어질 무렵에야 영암은 겨우 지금의 설악산에 도착하였다. 영암은 날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한 시 바삐 금강산으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설악산에서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암은  아프고 피로한 다리를 쉬고 잠시 눈을 감자 곧 잠이 몰려왔다. 영암은 정신없이 잠에 골아 떨어졌다. 영암이 눈을 떴을 때는 하룻밤이 지나고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영암은 금강산에  집회해야 할  시간, 즉 제석천의 칙령의 기한이 지났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영암은 주먹으로 땅을 치며 애통속에 소리쳐 자책하고는  화급히 일어서 다시 금강산쪽으로 출발을  하려 했다.
그 때, 제석천의 전령신(傳令神)이 나타나  엄숙히 말했다.
그대는 이제 금강산에 갈 필요가 없게 되었소. 어제 밤 자정을 기해 조물주께서 일만이천봉을 모두 완성하셨다오.
영암은 자책하여 울면서 말했다.
나는 이제 울산 땅으로 되돌아가야 합니까?
전령신은 칙서를 꺼내어 낭낭히 읽었다.
제석천은 말했다.

일체가 인연법이다. 그대는 설악산에 영봉(靈峰)으로 자리잡아 중생들을 가호하라

는 칙령이었다. 그날로부터 울산 바위 즉 영암은 설악산에 머물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중생들을 가호하는 신령한 소임을 맡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 울산바위의 영기(靈氣)가 한 곳에 응집된 곳이 계조암이다.

▲계조암의 뒤는 설악산의  영기(靈氣)를  발산하는 울산바위가 장엄히 서 있다. 계조암은 울산바위의 영기가 응집된 만세에 전하는 수행과 기도의 영험있는 나한도량이다. 누구의 입에선지  지성껏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성취할 수 있다고 전해오기 시작했다.


계조암은 신라 진덕여왕 6년(서기 652년)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계조암에는 비전(秘殿)의 암굴(巖窟)이 있다. 이 암굴은 자장, 동산, 봉정 세 분 조사(祖師)가 수행, 기도하여 득도하였다. 그 후, 원효대사와 의상조사가 득도를 계승하였다 . 조사들이 계속해서 득도한 암자라는 뜻으로  계조암(繼祖庵)이라고 전해온다. 계조암에서 득도한 역대조사들은 하나같이 계조암은 \'나한도량\'이라는 것을 증언하였다.

어찌 승려의 득도뿐인가. 속세에서 중생의 큰 소원인 왕업(王業)을 닦는 수행처요, 기도도량이다. 고려의 태조인 왕건과 이조의 태조인 이성계가 무장(武將)으로서 왕업을 닦기 위해 계조암의 굴법당에서 기도하여 뜻을 이루었다. 여타 중생들이 1600여년의 불교역사를 두고 도를 얻기 위해서, 치병을 위해서, 구복을 위해서, 계조암의  굴법당에서 수행하고, 기도하였다. 그들의  소원성취를 한 사례는 일일히 열거할 수 없을 지경이다. 나한님들이 고해중생에게 기도응답으로 인생에  희망과 용기를 주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계조암의 신령스러운 바위들 가운데 목탁바위밑 굴속에 비전의 법당인 굴법당이 있다.
무상한 세월에 풍우에 씻기우고 이끼낀 바위를 주의깊게 살펴보면, 바위에는 굴법당을 일컬어 \'계조암 극락전\'이라고 음각된 것이 희미하게 보일 것이다. 굴법당은 극락으로 갈 수 있는  열쇠요, 복전이며, 득도로 통하는 길이라고 볼 수 있다.

해풍이 사납게 계조암에 몰아치는 어느 날, 필자는 계조암을 찾았다.
계조암 암주(庵主)스님은 신흥사 총무국장을 겸하고 있는 우송스님(▲상단 사진 인물)이다. 우송스님은 예의와 신심과 신의를 중히 여기는 스님이었다. 우송스님은 계조암에 암주로 부임하고 나서 중생을 위한 각고의 기도를 하였다.  우송스님은  수차례 기도하는 가운데 꿈을 꾸면  나한님들이 떼지어 하늘에서 계조암의 굴법당에 하강하는 모습을  보고 계조암이 나한도량이라는 역대 조사님들의 증언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계조암 신비의 흔들바위. 바위를 어루만지며 \'십육성중(十六聖衆)\'을 부르는 나한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기도하면서 우송스님은 나한님들께 서원을 세웠다. 오랜 풍상에 씻기우고, 비좁은 굴법당을 개조하고 넓히어 중생의 수행처요 기도장으로 만들어 만세에 전하겠다는 원력을 세운 것이다. 아름다운 불사의 서원이 아닐 수 없다. 나한도량의 나한님들이 기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송스님의 기도가 성취된다면, 울산 바위 밑의 계조암은 예전보다 더 크고 휼륭하게 나한님들의 진신(眞身)이 상주하는 도량으로서  역사에 자리 메김될 것이다.
계조암의 불사는 여타 평지에 있는 사찰의 불사와는 비교할 수가 없이 어렵다. 신흥사에서 울산 바위 밑의 계조암 까지는 차량이 없이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도보로 걸어 오르는 바위길이 3km가 넘는다. 기와 한 장이라도 계조암까지의 운반은 어렵다. 불사의 물자를 구곡양장(九曲羊腸)과 같이 험한 굽이굽이 길을 걸어 운반한다는 것은 난사(難事)중의 난사인 것이다.
우송스님은  불사의 원력은 세웠지만,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계조암 굴법당 확장, 개수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우송스님은 자신이 추진하는 불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일적수(一滴水)가 마침내 대해(大海)를 이루듯, 불자 한 분 한 분의 신심이 계조암의 나한도량 중흥불사를 성취하게 할 것입니다. 화엄경에 \'원력이 있는 곳에 불보살의 가호가 있다\'는 경귀를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불보살의 가피가 반드시 있을 것을 믿고, 나는 오직 기도할 것입니다.

우송스님은 또 말했다.

장강(長江)의 뒤 물결은 끊임없이 앞 물결을 밀어냅니다. 인간사는 것도 비슷하겠지요. 인생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밀리는 장강의 앞 물결처럼 나역시 이곳을 떠나게 되겠지요. 그러나 떠나는 그 순간까지는 한국불교 역사에 길이 남을 중생의 수행처요 기도장인 복전(福田)으로 계조암에 굴법당불사를  완성하려고 합니다.

필자는 우송스님의 결연한 표정에서 계조암의 불사는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의 불사는 첫째 수도승이 금강과 같은 불변의 원력을 세워야 성취하는 것이다.
몰아치는 해풍으로 계조암에 오르는 골짜기는 변덕이 무상했다. 금방 흐려 비가 왔다가 눈발이 보이는 듯 하고 날씨가 추워졌다. 필자는 추위에 떨면서 생각했다. 우송스님은 전생에 계조암에 살았을까? 어쩌면 전생에 못다한 굴법당의 불사를 금생에 다시와서 성취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불교는 일체가 인연법인 것이다.

눈을 들어 희미한 시야에 계조암의 바위 바위에 조사들과 나한들이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든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어느 나한님은 흔들바위를 두 손으로 힘껏 밀며 껄껄 웃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그 때 법당에서 기도 목탁소리가 울려퍼졌다. 목탁소리에 경건해진 마음으로 계조암의 뒤 울산 바위를 우러르니 울산바위는 묵묵히 무설설(無說說)로 계조암은 중생의 영원한 귀의처라고 깨우치고  있었다.

불경에 처처(處處)가 부처님의 도량이 아닌곳이 없다고 했다.  하는 일이 모두 불공(事事佛供)이라고 했다. 깨달은 분상에서는 그러하리라. 하지만, 고해중생의 심신을 청량케 하고, 평안하게 하며,  수행과 기도를 성취할 수 있는 도량은 설악산의 기(氣)가 폭포수처럼 쏱아져오는 울산바위요, 계조암의 굴법당이다. 계조암의 굴법당은 한국불교의 적멸보궁중의 보궁이다.
허공의 달이 일천개로 나투어 월인천강수(月印千江水)하듯이, 신통력이 자재한 나한님들은 계조암에  영원히 나투어  응공(應供)하고 고해중생을 구원해주시리라 확신한다.



                                                        
입력 : 2006.05.31. 10:25 17\' / 수정 : 2006.06.07. 14:3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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