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가에 애교 점이 있는 여자

이법철 | 입력 : 2016/02/14 [14:51]

여성 가운데는 입가에 작고 둥근 검은 점이 있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세상 사람들른 그 점은 남성을 홀리는 애교점이라는 말이 전해왔다. 호화 룸살롱 등에서 일하는 여성 가운데는 천연의 점이 아닌 가짜 점을 만들기도 한다. 나는 80년도 후반에 천연적으로 입가에 작고 둥근 점이 있는 여성을 우연히 산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입가에 점이 있는 여성은 노모(老母)와 함께 내가 머울고 있는 산사에 찾아왔다. 그녀는 30대 후반으로 미인형이었고, 피아노 연주의 ‘러브스토리’ 음악을 아주 좋아한다고 은은히 웃었다.

그녀의 이름은 가명(假名)으로 박정미(朴貞美)로 하고 추억을 더듬어보자.

내 글을 읽는 어느 독자는 “스님이 신랄히 비판하는 한국 정치 이야기의 글에 신물이 난다.”고 불만을 토로하기에 오늘의 나의 얘기는 한국 정치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무척이나 러브스토리를 좋아하다가 사라진 여성의 실화를 통해 교훈을 얻자는 것이 이 글의 주제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산사에서 박정미를 우연히 만난 첫 대면에 대하여 묘사해보자.

방안에서 경전을 읽고 있는 나에게 누가 주지스님을 찾는다,는 전갈을 듣고 방문을 나서니 마당에 BMW 자가용이 서 있었고, 차안에서 러브스토리 피아노곡이 은은히 들려왔고, 모녀가 내게 다가와 합장하여 인사를 했다. 입가에 점이 있는 박정미는 후리후리한 키에 계란형의 얼굴인 미인이었다. “제 어머니세요.” 박정미는 함께 온 노모를 소개했다. 그녀들른 지나가다가 가까운 산사가 있다고 해서 부처님께 소원을 기원하는 참배도 하고, 주지스님에 법문을 듣고 싶다고 청해왔다.

나는 나의 방안에서 따뜻한 작설차를 권하면서 원각경에서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전해주었다. “이 세상은 일체가 영원할 수 없는 환(幻)이라는 것, 환을 환이라고 깨달은즉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지환즉각(知幻卽覺)” 이라는 경구절의 해설과 “일체가 제행무상하니 승속이 수행하고 정진해야 한다”는 것으로 법문을 해주었다. 법문 도중에 나는 박정미의 눈을 보았다.

큰 눈이 예쁘고 고혹적이며 어머니를 닮아 선량해 보였지만, 치기(痴氣)가 보통이 아니었다. 나는 박정미의 치기가 만만치 않은 눈과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입가에 천연적인 애교점을 매우 근심스럽게 보고서는 이번에는 그녀들이 나를 찾아온 얘기를 듣기로 했다.

돌연 박정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이 때, 어머니가 딸을 대변하듯 “제 딸이 바람둥이 신랑을 만나 딸 셋을 낳았는데, 일주일전에 합의 이혼을 하고 말았지요. 제 딸은 오직 남편만을 위해 헌신했는데, 요놈이 하도 바람을 피워서 그만 이혼했지요. 여고 시절부터 미스 코리아에 나가야 한다고 주위에서 칭찬을 들어온 딸인데…예쁘고 정숙한 딸인 데… 중국 여배우 왕조현(王祖賢) 같다는 칭찬까지 들었는 데… 괴롭고 울적한 나머지 이곳까지 왔네요”


박정미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서는 이렇게 말했다. “애들 아빠가 중소기업 회장인데 이혼 위자료로 35억과 강남에 집한채를 주며 딸 셋과 살라더군요. 앞으로 애들과 함께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 지 난감하네요. 제가 어떻게 살면 좋겠어요?” 나는 박정미를 근심스럽게 보면서 이렇게 답해주었다. “고급 자가용차도 국산으로 바꾸고, 35억의 위자료를 받았다는 것을 이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됩니다. 피냄새를 맡은 상어같은 인간들이 돈냄새를 맡고 어떤 수작과 사기극으로 돈을 빼앗으려 할 지 모르니까요. 작은 건물을 사서 딸 셋을 휼륭히 키우는데 헌신 하시오. 내 말을 귓등으로 들으면 훗날 원통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자동차가 출발전에 어머니가 내게 다가와 딸이 모르게 탄식하듯 이렇게 말했다. “ 제게 아들이 하나 있지요. 제 딸의 동생인데, 구멍 가게라도 하겠으니 3억만 도와주면 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것같다고 누나에게 간청을 해도 도대체 돈 한 푼도 안주네요. 어떻게 해야 딸이 돈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나로서는 남매가 서로 돕고 살면 좋은데… 어떻게 스님이 제 딸에게 ‘동생을 도와라!’ 말씀을 해줄 수 없을까요?” 나는 웃고는 답하지 않았다. 박정미는 애써 사양하는 나에게 5만원을 내놓고 러브스트리 음악속에 사라져갔다.

수 개월 후 박정미는 혼자 나를 찾아왔다. 얼굴이 구타당해 여기 저기 시퍼렇게 멍든 얼굴로 나타나 아이처럼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치악산 쪽에 귀신을 본다는 스님이 있어 찾아갔는데, 저보고 5성급 호텔 회장님이 오셨다고 환대하더군요. 장차 오래지 않아 호텔 회장이 되고, 그것도 호텔을 두곳이나 소유할 수 있는 왕운(旺運)이 있다는 예언을 하셨어요. 하지만 호텔 회장이 되려면, 비명횡사로 죽은 조상 귀신을 천도해주어야 호텔회장이 될 수 있다고 해서 7천만원을 헌금했지요. 며칠 전 헌금한 사찰에서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오라는 전화를 받고 혼자 차를 운전하고 가는 데 사찰로 가는 산 밑에서 복면을 한 남자 셋이 제 차를 세우고 저를 폭행하고, 돈과 패물 등 1억5천 정도를 강탈하고 무슨 원한인지 저에게 성폭행을 하려는데, 때마침 지나는 차가 있어 간신히 살았어요. 왜 저는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 무서운 시련과 고통을 받아야 할까요?”

나는 무표정하게 “두 군데 호텔 회장이 되기 위해서 새벽에 치악산을 찾는 것을 사전에 아는 사람이 누구누구이지요? ” 그녀는 대답했다. “어머니와 귀신을 보고, 제게 호텔 회장이 된다고 예언하신 큰스님 밖에 또 없는 것같은데요.” 나는 또다시 그녀의 치기(痴氣)를 속으로 탄식했다.

나는 침통하게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수중에 35억이 있다고 홍보하고 다니는데, 돈을 위해서는 살인도 마다할 잡귀(雜鬼)같은 인간들이 돈을 빼앗기 위해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고, 전략을 세우고, 작전에 들어간 것이요. 여기 저기 현혹되지 말고, 작은 건물을 사서 딸들을 위해 헌신하시오. 그 수밖에 없어요. 돌아다니지 말아요” 나의 충고에 박정미는 매우 실망한 눈치였다. 수중에 현금이 없다면서 이번에는 사양하는 내게 3만원을 내주고 사라졌다.

어느 날 제주도에 아는 여류시인에게서 정화가 왔다. “박정미를 아세요?”의 질문이었다. 안다고 했더니 놀라운 얘기를 했다. 제주도의 돈 잘버는 의사에게 박정미가 좋은 씨앗을 잉태하고 싶다고 유혹하다 의사의 부인에 발각되어 망신만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후는 대구시에 방직회사 모 사장을 유혹하여 사랑하다가 사장이 복상사(腹上死)를 해버렸다는 설이 귀에 들려왔다. 호텔 두 곳의 회장이 되기 위해 돈이 있다는 남자들을 찾아 러브스토리 음악을 들으며 천부적인 미인으로 진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것같았다.

세월이 무심힌 강물처럼 흘렀다. 내가 마지막으로 박정미의 소식을 들려준 사람은 박정미의 노모였다. 학박눈이 펄펄 내리는 날이었다. 노모가 찾아와 울음을 터뜨렸다. 딸이 러시아로 돈을 받으러 가서 실종 되었다는 것이었다. 딸이 수천억의 돈이 있는 재력가를 우연히 만났다고 주장하더니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 남자는 박정미에게 자신은 수천억 재력가로서 자신과 결혼하면 수천억을 내주어 호텔 회장 노릇을 해주겠다고 기만했다. 감격한 박정미는 장차 수천억을 얻는 환상에 빠져 몸을 바치고, 자신의 돈 일체를 길면 한 달, 짧으면 일주일만 차용한다는 현금보관증을 받고는 그 남자에게 몽땅 빌려주었다. 그 남자는 러시아 은행에 있는 수천억 원을 찾아와 한국에서 박정미에게 호텔을 지어주겠다는 푸짐한 말을 남기고 러시아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 후, 박정미는 돈을 받기 위해 러시아로 떠났는데, 수년이 지나도 어머니에게 전화 한 통이 없이 실종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울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 내 딸은 살았을까요. 죽었을까요?”

러시아 마피아는 5백만 원만 주면 무고한 남녀를 납치하고 살해하여 물속이나 땅속에 암매장 해버리는 저렴한 킬러노릇으로 국제사회에 명성을 떨치는 데, 돈만 준다면 러시아 땅에서 박정미를 실종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었을 것이다. 박정미의 어머니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딸은 법철스님은 귀신을 보는 능력이 없는 것같다고 헌금을 하지 않는다는 멍청한 말을 하더군요. 법철스님의 말을 들었으면 살았을 텐데... 나는 병이 깊어 곧 죽습니다. 정미의 어린 딸 셋을 내게 맡겨놓고, 사라져 버리고, 내가 죽고 나면 어찌해야 할 지 큰 걱정입니다. 돈 없어 학교도 못다니고 불쌍하게 되겠지요.”

나는 탄식하며 “귀신을 본다는 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귀신 팔아먹을 뿐입니다. 사람이 진짜 귀신을 본다면 저승사자가 왔을 때랍니다. ”라고 혼잣 말을 했을 뿐이었다.

나는 작별하기 전 궁금한 것을 박정미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따님은 정말 중소기업 화장의 부인이었고, 이혼 했습니까?”

노보살은 탄식하며 말했다. “통찰력이 크신 스님에게 거짓을 말해서 무엇합니까? 재력가 영감의 첩실 노릇을 하다 헤어지면서 아이를 키우는 조건으로 돈을 받았었지요.”

여고 때 미스 코리아 감으로, 또는 중국의 절세미인인 왕조현 같다고 상찬을 들었지만, 반야(般若)즉 지혜가 없으면 돈도 육신의 생명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결론이다.

일주일 전에 나는 서울 나들이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종로 삼일공원 앞에 서서 도로에 오가는 차량의 행렬을 우두커니 보고 있는데, 돌연 귀에 익은 음악이 들려왔다. 찾아보니 고급 승용차의 문이 열리고 웬 여성이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내리는 데, 차안에서 박정미가 그토록 좋아하던 피아노 음악의 러브스토리 음악이 울려 나오고 있었다. 일순 나는 박정미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나는가 착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나이가 젊은 미인이었고,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입가에 애교의 점은 똑같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외쳤다. “젊은이,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야 하네.” 그녀는 귀담아 듣지 않고 피식 웃었다. 그녀는 러브스토리 음악속에 자동차의 굉음을 울리며 차량의 행렬에 끼어 광화문 쪽으로 사라져갔다. ◇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