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도 죽음의 징조는 보여준다

| 입력 : 2015/09/27 [12:48]

▲지구의 영혼은 우주의 낙원을 향해 떠나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죽음이 소리없이 닥치기 전 “당신은 곧 죽는다”라는 징조(徵兆)를 꿈속에서 보여준다. 그 징조를 보여주는 것은 자신을 수호하는 수호신(守護神)이 미리 예고하고, 죽음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는 예시이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 아닌 욕망의 허욕으로 사는 남녀들은 자신에 닥치는 징조를 깨닫지 못하고 졸지에 닥치는 죽음에 속수무책으로 죽고 만다. 이미 죽어버린 육신을 보며 영혼은 통곡하여 후회 하지만, 영혼은 생전 집착한 업연(業緣)에 의해 또 태양을 중심으로 윤회하는 지구열차의 승객으로 반복하여 윤회전생(輪廻轉生)을 하게 될 뿐이다. 다람쥐 체바퀴 돌듯 말이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 징조를 본 여성을 나는 1997년 늦가을 서울 인사동에 있는 ‘영산강(榮山江)이라는 식당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 나는 그녀를 박양자씨로 가명 호칭한다. 박씨는 40대 중반의 미인이었고, 영산강 식당의 주인이었다.

그해 늦가을, 나는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강남 터미널에서 좌석버스로 안국동에 내려 공중전화로 여기 저기 만나고 싶은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다. 나의 전회를 받고 반가워 하며 퇴근시간에 인사동 수도약국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은 세 명이었다. 이교수, 작은 언론사 김사장, 동양화가 나선생이 정해진 시간에 나타났고,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이교수가 제안을 했다.

“뒷골목에 내가 잘 다니는 영산강이라는 음식점이 있는데 오늘은 스님을 그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김사장이 장난기 있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스님을 임금님처럼 모시겠습니다.”

나선생이 소리내어 웃음을 터뜨리었다. 나는 반색하면서도 불안한 얼굴이 되어 반문했다.

“시끄러운 곳이 아니요? 나를 푸줏간 같은 곳이나 기생집이 아니겠지요?”


그때 이교수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영산강에는 두부전골이 아주 좋습니다. 두부김치도 좋고…. 그곳 여주인이 빼어난 미인이고, 친절하지요. 오늘의 우리 법회는 영산강에서 하지요. 스님은 법문 준비는 하셨지요? 자, 따라 오십시요. 여기서 지척이니까요.”

영산강은 수도약국의 뒷골목에 자리한 오래된 한옥으로서 방과 대중이 음식을 들고 있는 큰 홀로 나뉘어져 있었다. 입구 카운터 쪽에서 양장을 한 젊은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하든 그녀는 나를 보자 얼굴을 뚫어져라 건네 보았다. 그녀는 보통 키에 둥근 얼굴에 두 눈이 큰 미인이었다. 나는 그녀의 눈길을 보고 혹시 내 얼굴에 무엇이 있나 싶어 미소하면서 물었다.

“내 얼굴에 밥알이라도 묻었습니까?”

그녀는 정신을 차리듯 고개를 흔들고는 미소하며 대답했다.

“아뇨.”

이교수가 큰소리로 말했다.

“조용한 방을 하나 주쇼. 있지요? 그런데 주인여사께서 스님을 보더니 혼백이 빠진 것 같아요. 스님이 맘에 드시오? 맘에 들어도 소용없어요. 스님은 비구승이니까.”


김사장과 나선생이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었다. 우리는 구석의 조용한 방에 자리를 잡았다. 이교수가 두부전골, 두부김치를 안주로 장수 막걸리를 시켰다. 우리가 상호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막걸리를 마시고 호쾌하게 웃을 때, 영산강의 주인여자는 입구의 계산대에 앉았고, 내가 얼핏 보니 이마의 색이 흑운(黑雲)이 잔뜩 끼어 있었다.

젊은 여종업원 두 명이 부지런히 주문 받고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두 번째 건배를 외치던 김사장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횡성 저수지 둑 밑 집에서는 혼자서 공부하시는가요?”

“늙은 숫캐 한 마리와 함께 있었는데, 그 개가 늙어 세상을 떠서 이제 혼자 있지요.”

“나도 스님처럼 혼자서 자유롭게 공부를 해야 하는데….”

나선생이 부럽다는 투로 나에게 말했다. 동양화를 그리려면 고요 속에 혼자 공부를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낭만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혼자서 매일 밥 끓여 먹고 철저히 혼자 지내는 것은 고생이 되니까요.”

우리는 막걸리를 부은 잔을 들어 건배를 몇 번 외쳐대고서는 모두 술이 얼근해졌다. 나도 막걸리 석 잔에 통 큰 마음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몇 번이고 우의를 다지는 말을 강조했다.


막걸리병이 바닥이 날 때 쯤 여종업원이 동동주 한 단지를 들고 와서 말했다.

“저, 여기 여사장님이 동동주 한 단지를 바치고, 스님과 대화를 하고 싶으시다는데 괞찮으시겠어요.?”

이교수가 취기 도는 실눈을 뜨고서 놀라운 얼굴로 말했다.

“허, 내가 알기로는 주인여자는 절대 손님방에 안 들어오는데 오늘은 이상한데? 술단지를 바치고 들어오다니?”


김사장은 종업원에게 응낙을 하고서 나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입구에서부터 주인여자가 스님을 뚫어져라 보더니…. 진짜, 스님이 맘에 드는가 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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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게 이야기하고 싶은 무슨 사연이 있을 거요. 너무 세속적인 상상은 하지 맙시다.”

잠시 후, 주인여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예의있게 우리에게 목례를 하며 ‘실례하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그녀는 다시 나를 뚫어져라 보았다. 나는 그녀의 눈을 똑똑히 보았다. 이상하게도 짙은 화장 속의 두 눈은 공포가 어려 있었다. 그녀는 내게 물었다.
“저는 박양자라고 합니다. 스님은 어디 계시나요?”

“횡성의 작은 토굴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 내일이라도 스님 계신 곳을 찾아갔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곳은 나혼자 공부하는 토굴이어서 젊은보살이 찾아오면 안됩니다.”
“내게 할 이야기가 있으면, 지금 이곳에서 하시지요?”
“조용한 곳에서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그녀는 무엇이 급한지 애타는 눈빛이 되었다. 잠시 침묵 속에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사장이 나섰다.

“스님, 이 집 여사장이 화급한 사연이 있는 것 같으니 이야기를 들어주시지요. 여사장님, 빈 방 있으면 스님 모시고 가서 빨리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시요. 우리도 스님을 오랜만에 만났으니 우리도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요,”
내가 주인여자의 안내로 빈방에 들어서 자리에 앉자 주인여자는 한 층 더 공포의 눈빛이 되어 고백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저는 금년 44세이고, 일년 전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답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밤이면 자주 무서운 꿈을 꾸어요. 꿈꾸게 되면 꼭 죽은 남편이 나타납니다.

박양자의 꿈속에 사랑하는 남편이 나타났다. 서로가 사랑했기에 박양자는 남편이 나타나자 생시의 그때처럼 반갑고 기뻤다. 남편은 깨끗한 양복을 입었고, 외모도 깨끗해 보였다. 박양자는 놀랍고 기쁜 마음에 저 만치 서서 슬픈 미소를 짓고 있는 남편에게 달려가 남편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그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여보, 당신이 오셨군요.”

남편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아내를 위로하듯 다정하게 대답했다.

“당신,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이 많지?”

“내 책임인 걸요.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오셨어요?”

“나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소. 아주 행복하오.”

그런데 남편의 옆에는 검은색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박양자는 자동차를 보면서 남편에게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저 차는 무슨 차예요?”

남편은 남편은 어색한 얼굴이 되어 더듬거리며 말했다.

“실은 당신 혼자 고생하는 것이 안되어서 내가 살고 있는 행복하고 좋은 곳으로 데려 가려고 하는데, 당신 어서, 저 차를 타고 나하고 떠납시다.”

“저 차를 타고 함께 떠나자구요?”

순간, 박양자는 그 차를 타면 안된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그녀는 공포가 가득한 눈이 되어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제가 저 차를 타고, 당신과 함께 떠나자는 것은 저 세상으로 가자는 것 아니에요?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되지요? 안돼요. 그럴 수는 없어요.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아이들을 버리고 떠날 수 없어요. 절대 안돼요. 나를 데리러 오려거든 이제 저를 찾아오지 마세요! 저는 아이들을 훌륭히 키워야 하니까요!”


남편은 갑자기 무서운 얼굴이 되어 버럭 소리쳤다.

“당신은 나와 함께 가야 해, 당신도 때가 되었단 말이야!”

“무슨 때요? 저는 아이들을 돌봐야 해요, 절대 안돼요!”

남편은 성이 나서 아내의 팔을 잡고 강제로 승용차에 태우려 들었고, 아내는 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면서 ‘으악!’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꿈에서 깨어났다.


박양자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내게 말했다.

“스님, 무서워 죽겠어요. 저도 노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어요. 저승으로 떠난 사람이 꿈속에 나타나 동행을 요구하고, 동행을 하게 되면 저승으로 떠나게 된다는 것을…. 그 무서운 꿈은 계속되고 있어요. 공포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저는 스님을 처음 본 순간, 스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님, 집에 있으면 저에게 불행이 닥칠 것 같아요.. 만약에 제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어린 아들 둘은 어찌 되겠어요…. 스님, 제발 저를 데려가 주세요. 일주일이라도 스님이 계신 곳으로 피신하고 싶어요”

그러나, 나는 그녀의 딱한 사정을 알지만, 단간방과 같은 토굴에서 함께 있을 수는 없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 명호를 반복해 부르는 관음기도를 권장했다. 그녀는 겁에 질려 큰 두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나는 그 날, 영산강에서 회합을 마치고 나설 때, 그녀의 사주를 적어 호주머니에 넣고 돌아왔다. 토굴에 돌아와 그녀의 운명을 살펴보니 안타깝게도 수명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닥치는 죽음의 징조는 죽은 남편이 태우려는 자동차였다. 따라서 박양자씨의 꿈은 자동차에 의해 박양자씨가 죽는다는 예시를 한 것이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불행을 예측하고 나를 따라 나서 불행을 피하려는 속셈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요지는 촌음을 아끼어 지극지성으로 관음기도를 하라는 권고와 한동안 자동치를 운전하지 말고 열심히 기도하라는 권고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간절한 기도는 전생의 정업을 뛰어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후, 반년이 조금 지나서 서울에 또 올 일이 있어서 낮에 혼자 영산강을 찾았다. 마음속으로는 그녀가 수행을 잘해서 단명의 수명이 장수로 바뀌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나, 수도약국을 지나 골목에 들어섰을 때 나의 시야에는 영산강의 상호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다른 상호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그곳의 주인을 찾았다. 처음보는 50대 초반의 쾌활한 여자가 나타났다. 나는 그녀에게 영산강의 주인을 물었다. 뚱뚱한 여자는 돌연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영산강 여사장은 교통사고로 두 달 전에 죽었어요. 혼자 운전하고 가다가 추락사고로 현장에서 숨졌대요. 교통사고 날 자리가 아닌데 사고가 났다는 군요. 현장에서 즉사했대요. 젊고 예뻤었는데…. 학교 갈 애들이 큰일이예요.”

나는 산으로 돌아오면서 후회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녀의 소원대로 그녀가 나를 따라왔다면 살 수 있었을까? 나의 귀에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 했다.

“스님, 무서워 죽겠어요. 무서워죽겠어요! 스님, 제발 저를 데려가 주세요. 네? 일주일 만이라도 집을 떠나있고 싶어요. 스님, 제발, 도와주세요….”

나는 가슴이 메어지듯 아파 왔다. 교통사고로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연히 보이는 듯 했다. 자동차의 급브레이크 밟는 금속성 소리와 여자의 으악!- 외마디 비명소리가 귓청이 떨어져라 들리듯 했다. 저승사자가 아이들을 부르며 울부짖는 그녀를 인정사정 없이 끌고 가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박양자씨에게는 불원간 닥치는 죽음의 예고편인 징조를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이 꿈속에 나타나 자신이 타고 온 자동차에 박양자씨를 태워 저승으로 가는 것을 의미해 보여주었다.

진짜 사랑하고 아이를 둘 이나 낳은 아내 박양자씨를 저승으로 데려 가기 위해 남편이 꿈속에 나타난것일까?

아니다. 꿈속의 남편은 진짜 남편이 아니다. 죽음의 저승사자가 무서운 얼굴로 꿈속에 나타나 박양자씨를 붙잡아 가는 것이 아닌 친화력이 있는 남편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공포감의 저항없이 죽음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저승사자의 용의주도한 배려였을 뿐이다.

박양자씨에게 남편이 보여준 죽음의 징조는 “자동차”였다. 현명한 박양자씨는 죽은 남편이 자신이 타고 온 자동차에 태우려는 꿈이 끝나는 한동안에 자신은 자동차를 운전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동차로 자신이 죽는다는 징조를 깨달았다면, 자동차 운전은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박양자씨는 자신의 꿈속에서 닥치는 죽음의 징조를 받았지만, 본인이 절실히 깨닫지 못했기에 자동차에 의해 죽음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에게도, 저승사자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꿈속에 예고하는 징조를 보이고, 찾아올 것이다. 그대의 눈에 저승사자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인정사정 없는 무서운 저승사자일까?

아니면, 저승사자가 친화력이 강한 누구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나타날까?

저승으로 떠난 어머니의 모습일까?

할아버지일까?

할머니일까?

아버지일까?

형님일까?

동생일까?

누이일까?

사랑하는 여자일까?

사랑하는 남자일까?

또?...


저승사자는 인정사정이 없다. 남녀 노소(老少)를 가리지 않고, 불시에 그대의 영혼을 데려가 버린다. 그대는 언제 어느 때 불시에 잘 달리는 자동차에 엔진이 정지하듯이, 심장마비가 닥칠지도 모른다. 또 뜻하지 않은 타인으로부터 비명횡사로 죽음을 당할 수 있다. 낮이나 밤이나 생사의 공포는 항상 따라 다닌다. 누구던 불시에 닥치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첫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인생을 살라. 둘째, 끝없는 물질에 대한 탐욕보다는 마음속에 행복을 찾는 수행과 기도생활을 하라.

끝으로, 지구는 빠르게 태양을 돌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고,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유한(有限)의 생을 살다 갈 뿐이다. 저승사자가 그대를 찾아와 그대를 황천길로 인도해 가는 그 무섭고 두려운 그 때가 되기 전, 그대는 촌음을 아끼어 공부하고, 수행하며, 세상에 선인(善因)의 공덕을 부지런히 쌓는 인생을 살고, 마음속에 시간이 흐르지 않는 영원한 수명과 행복의 세계인 항성(恒星)인 우주 최고의 국토에 영혼이 갈 수 있도록 발원하고,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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