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회장과 朴도사의 인연

이법철 | 입력 : 2014/01/27 [10:59]

▲한국 역학계에 명성을 떨친 일명 朴도사, 제산, 박재현 선생.

작금 대한민국의 도처 항간에서 중생들이 친구와 만나 우정의 술이 거나해지면 으레 화제거리는 삼성을 창업한 고(故)N 이병철(李秉喆) 회장의 자손(子孫)들이 지휘하는 삼성과 CJ가 재산분배 문제로 소송을 하는 얘기로 장탄식을 토한다. 가난한 서민들도 예산군(禮山郡)의 ‘의좋은 형제’ 얘기같은 가족의 정을 나누는데, 돈많은 삼성재벌이 형제간에 유산의 돈 때문에 막장인생의 전형을 보이듯 법정소송을 벌이는데 대해 실망과 분노를 표시하며 화해를 촉구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또 항설(巷說)은 삼성재벌의 총수였던 이병철 회장과 명리학(命理學)의 대가 통칭 朴도사와의 비화(秘話)도 항간(巷間)의 인구(人口)에 회자 되어 전설(傳說)처럼 화제가 되어 온다. 항설(巷說)의 정사(正邪)를 분변(分辨) 하면 다음과 같다.



이병철(李秉喆) 회장은 삼성재벌의 창업자이다. 고생 끝에 대소(大小)의 부(富)를 축적한 사람이나, 제왕업(帝王業) 등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이룩한 대업(大業)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기전에 불시에 찾아오는 저승사자를 만나게 된다. 제아무리 돈이 있고, 제왕의 권력이 있다 해도 저승사자는 피할 수가 없는 것이 고해(苦海)의 불변의 법칙이다. 이병철 회장은 자신이 이룩한 재벌을 비유하여 성(城)이라 한다면, 후계자인 수성장(守城將)은 물론 자신보다 더 번영하게 할 수 있는 후계자가 절실했을 것이다. 따라서 당시 부산시에서 명성을 떨치는 명리학자인 박도사를 찾아 후계 구도를 찾았다고 전한다.

朴도사는 누구인가? 제산(霽山) 박재현(朴宰顯·1935∼2000년)은 대한민국에서 명리학을 하는 학자들은 그의 명리학의 감정실력은 “입신(入神) 경지에 이른 분”이라는 찬사를 하고, 그처럼 명성있는 고객들이 찾아오기를 부러워 하고, 사주풀이로 부(富)를 이루고, 금의환향(錦衣還鄕)한 것을 부러워 하며, 그가 남긴 유명인사의 간명집(看命集)을 구해보려고 혈안이듯 한다고 한다. 그는 젊은 시절 해인사 승려였으나, 환속했다는 항설(巷說)도 전해온다.

박도사의 금의환향은 부(富)를 이뤄 생가에 대궐같은 집을 짓고 살았다는 뜻이다. 그는 경남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 439번지에 태어났고, 만년에는 생가 터에 솟을 대문이 있는 기와집을 지었고, 이어 대찰(大刹)같은 덕운정사(德雲精舍)를 지어 그곳에 살다 세상을 떠났다. 1970년대 후반 서민은 20만원, 기업인. 정치인은 2-300만원 받고 1일 적게는 15명씩 많을때는 45명씩 사주풀이를 했다고 전한다. 개점휴업(開店休業)같이 파리만 날리는 다른 명리학자 보다는 재운(財運)이 왕지(旺地)로 진입한 것같다.

그러나 朴도사는 남의 운명을 봐주고, 개운(開運)과 개운(改運)을 해주고 큰돈을 벌었지만, 정작 자신에게 닥치는 운명을 개운(改運)하지는 못했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 근거는 생가 터에 가장 큰 건물인 그의 성(城)같은 덕운정사(德雲精舍) 낙성을 끝으로, 중풍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는 환갑인 壬午대운의 乙亥년에 갑자기 중풍이라는 병이 찾아와 7년을 고생하다가, 2000년(67세, 辛巳, 丁酉월, 壬午日(陰7월29일)에 세상을 떠났다. 본인이 신통력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운(改運)하여 닥치는 저승사자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朴 도사의 행적을 보면, 자신의 선전을 위해 출중했고, 그의 주장의 발언은 신비주의(神秘主義)에 가까웠다. 그 근거는 1967년에서 70년대까지 해인사에서 장발한 청년으로 있었다고 주장하나 1966년에 해인사에 들어가 71년에 해인사 강원에서 11회 종업을 한 필자로서는 그를 본적이 없다.


또, 당시 해인사 장경각 옆 숲속에서 해인사 사하촌(寺下村)인 신부락에 사는 처녀가 대낮에 강간 살해당했다. 처녀는 도토리를 줍다가 범인에게 당한 것이다. 당시 해인사는 성철(性徹)큰스님이 방장(方丈)인데, 대중을 모와 탄식을 토하며 “강간살해범이 해인사 승려라면 산문을 닫아야 한다“며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해인사 승려들은 서로를 의심했고, 신부락은 물론, 가야면에 까지 항설(巷說)은 “승려 짓”이라고 단정하고 분개하는 남녀들이 많았다. 마침내 합천 경찰서 수사관들이 범인을 진범을 체포했다. 하지만 朴도사는 당시 해인사 총무스님이 가사 장삼을 걸치고 3번 큰절하면서 “범인을 잡아달라” 간청하여 자신이 신통력으로 범인을 알려주어 경찰이 범인을 체포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웃기는 아전인수(我田引水)요, 신비주의라 하겠다.

朴도사는 부산군수기지에서 사병으로 근무할 때 기지 사령관 박정희 장군과 호형호제(呼兄呼弟) 하면서 교우했다고 주장했는 데, 군대에 사병으로 복무한 인사들이 납득할 수 있는 주장인가? 필자도 사병으로 군대를 갔다 왔지만 사병이 장군과 호형호제 지낸다는 것은 상상이나 가능할 수 있는 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한 너무 몽상적인 자신의 홍보요, 선전이라 하겠다. “ 내 고객은 포철의 박태준이 헬기타고 오고, 삼성의 이병철이 수시로 온다”고 홍보하는 것은 주장은 유명인을 좋아하고 맹종하는 우부우부(愚夫愚婦)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하는 자기 홍보의 방편책(方便策)일 수 있다.

진원지(震源地)가 박도사라는 항설(巷說)에 의하면, 이병철회장이 주위를 물리치고, 朴도사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한다.

“장차 내 아들 중 누구를 후계자로 정해야 하겠소?”

“회장님은 누구를 후계자로 생각하십니까?”

“나는 맹희를 후계자로 하고 싶소만”

“ 그 아드님은 이회장님이 평생 쌓은 성(城)의 수성장(守城將)이 못됩니다. 수성(守城)은 커녕 얼마 못가고 성은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수성장(守城將)은 물론 번영시틸 수 있는 인물은…”



朴도사의 신통력이 있다는 예언으로 이병철 회장의 후계자 운명은 바뀌어버렸다는 항설이다. 왜, 朴도사는 수성장(守城將) 교체론을 관철시켰을까? 진짜 미래가 손바닥의 구슬(掌上明珠)같이 환히 보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지신의 이익과 부합되는 인물을 택한 것일까? 아니면 사전에 朴도사가 섭외된 것일까? 허무맹랑한 항설(巷說)의 난무(亂舞)일 것이다.

황제나 왕같은 권력자의 옆에는 언제나 책사(策士)가 있다. 수양대군 옆에 책사 한명회가 수양대군을 움직이듯이 말이다. 그러나 책사 보다도 더 무서운 강자는 있다. 제왕이 조언을 구하는 방술사(方術士)들이다. 즉 무당(巫堂)이나, 점술사(占術士)이다. 그들은 주술적(呪術的)으로 이해손득(利害損得)과 흥망성쇠(興亡盛衰)로 신탁(神託)을 가자하여 제왕을 세뇌한다. 따라서 영리한 책사는 제왕이 신임하는 무당이나, 점술사에게 은밀히 금품을 바쳐야 산다. 전 미국 대통령들도 매일매일 운세를 점치는 점술사의 조언을 듣고 움직였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예컨대 고종의 왕비 민비(閔妃) 옆에는 진령군(眞靈君)이라는 군호(君號)를 내려주고 우대하는 무당이 있었다. 책사는 물론, 출세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대소 벼슬아치는 진령군에게 밉보이면 감투를 벗어야 하고, 큰 감투를 쓰려면 은밀히 진령군에게 금품을 바쳐야 가능했다. 진령군은 신광(神光)이 번뜩이는 눈을 하고, 민비(閔妃)의 귀에 신탁(神託)을 속삭였고, 큰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진령군은 민비가 1895년 음력 8월 20일 즉 을미사변(乙未事變)에 궁중을 기습한 일본군, 일본낭인, 해산에 불만을 품은 훈련대 등이 민비를 시해하고 시간(屍姦)당할 액운은 까마득히 몰랐고, 예방도 하지 못했다. 민비가 죽자 재빨리 돈만 챙겨 고향으로 도주해 은신(隱身했지만, 저승사자는 곧바로 닥쳤다.

세상에는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하여, 인간의 길흉사를 관상, 사주등을 통해 손바닥 위의 구슬처럼 보는 달사(達士)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진정한 달사는 돈에 대한 허욕(虛慾)으로 인간을 오도(誤導)하지 않는다. 사람으로서 힘을 다해 일하고, 천명을 기다리는 것(盡人事待天命)으로 희망과 용기를 주어야 진정한 달사라고 본다. 이권을 위해 후계자 바꿔치기를 하는 탐욕을 부리면, 천도(天道)는 반드시 조기 저승사자를 보낸다.

신비주의를 펴는 것같은 朴도사의 주술적 음모(陰謀)에서 후계자가 바뀌었는지, 아니면 영명한 이병철 회장님의 혜안에 의해 후계자가 바뀌었는지는 모르나, 승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이건희 회장이다. 이건희회장의 삼성운영술은 대다수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빌게이츠, 워렛 퍼핏같이 사회를 향해 크게 무조건 보시하지 않는 것은 각성해야 할 일이다.

이건희 회장이 자신의 생전은 물론이요, 사후까지 집안과 국민여론, 나아가 국제적 여론을 감안한다면, 승자의 아량을 보여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작금에 형제간에 소송전을 벌이는 것은 온 국민이 비난하고, 지탄할 일이요, 선대의 이병철 회장님이 계신다면 호령 질타하실 일에 틀림없다. 세상에는 돈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명예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명예가 없는 돈은 자칫 대도(大盜) 돈으로 지탄받을 수 있다.

끝으로, 한국인의 영원한 형제애의 모범은 국어 책에 실린 예산군(禮山郡)의 “의좋은 형제”의 이야기다. 이맹희씨의 불운과 형제와의 불화가 2대에 걸쳐 지속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하루속히 해원상생(解寃相生)하는 차원에서 소송전을 버리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맹희, 이건희 두 분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날히 좌경화 되어가는 대한민국을 보위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해주기를 바란다. 두 분 다 이제 일락서산(日落西山)하는 경지에 이르렀고,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인데 무엇을 고집한다는 것인가. ◇



李法徹(대불총, 상임지도법사




▲ 제산 박재현 선생이 생가에 건립한 덕운정사(德雲精舍) 중심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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