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거제 長興寺 참배기

이법철 | 입력 : 2011/05/23 [14:22]


5월 20일 오후 5시, 거제시 대우조선소 인근에 자리한 천태종 장흥사는 봄을 무르익게 하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찰부지 1만평 가까운 장흥사는 법당이 크고 장엄하여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날 12대 전두환 대통령과 이순자 내외분이 장흥사를 찾은 것은 대우조선소가 가까운 때문이었지만, 불가의 인연법에 의하면 정해진 선연(善緣)이었을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거제시에 나들이를 한 인연의 시발점은 거제시 대우조선소와 삼성조선소에 근무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교 대구공고 후배들이 초청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팔순이 넘은 전두환 대통령이지만, 후배들과 아득한 고교시절을 회상하는 나들이에 못잊을 추억담이 교차할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후배들을 만나는 것을 그날의 고교생같이 기뻐하는 모습이 역역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김일성이 일으킨 ‘6, 25 동난’ 때 대구 공고를 졸업하고, 국군에서 최초로 시행하는 4년제 정규 육사에 입학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군문에 자원 입대한 때는, 당시 북한 공산군이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아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쳐들어와 대구가 가까운 낙동강 전선까지 밀어 닥쳐 대구와 부산이 적의 수중에 함락되기 초 읽기의 위기 상황이었다.

국군과 미군은 낙동강 전선을 마지막 방어의 보루로 삼아 치열하게 피아(彼我) 교전할 때 낙동강은 피아의 선혈로 혈강(血江)으로 전해온다. 대구시 근교까지 공산군의 포탄이 떨어져 폭발할 때 전두환 대통령은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군문에 들어간 것이다. 그 후 전두환 대통령은 역시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월남전에 참전, 연대장으로서 피땀을 흘렸다.

장흥사 주지는 ‘경혜스님’이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 내외분을 큰 법당에 안내하여 참배를 도운 후, 조촐한 다과회를 베플었다. 다과회장에는 화기애애한 담소가 있었다. 그 때 라이트 코리아 대표 봉태홍씨가 “작금에 종북세력이 한국사회를 혼란시키고 있다”며, 전두환 대통령의 치세 시절 “그 시절이 그리웁다”고 말했다.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은 일순 전두환 대통령을 주목했다. 정치논평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은 소이부답(笑以不答)이었다. 자신의 치세가 아니기에 왈가왈부(曰可曰否)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선문(禪門)의 언어라면 개구즉착(開口卽錯), 시비논란이 일기를 바라지 않은 것같다.

전두환 대통령의 치세의 그리운 시절은 무엇인가? 9시 뉴스에 전두환 대통령이 대국민 발표를 할 때, 기억나는 것은 대강 이렇다. “국헌을 문란케 하고, 사회혼란을 일으켜 국민들을 불안케 한다면, 본인은,(이 대목에 전두환 대통령은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고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만부득히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단호한 조치라는 의미를 아는 종북인사들, 사기꾼들, 조직깡패들 등 온갖 사회악의 표상들은 벼룩튀듯 도주 잠적하거나, 개과천선한 모습을 보였다. 그 시절, 경제는 발전하고, 대다수 국민들이 살만한 사회 안정을 가져왔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을 위해 소수의 사회악을 ‘단호한 조치’로 통제한 것이다.

이날 다과회장에는 장흥사 신도들이 어린 아이들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건네주고 기념사진을 찍고자 했을 때, 전두환 대통령은 흔쾌히 어린 아이들을 안고 기념촬영에 응했다. 그 모습은 팔순이 넘은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 손녀를 대하는 인자한 모습, 그대로였다.

전두환 대통령 내외분은 보슬비속에 사부대중의 환송을 받으며 장흥사를 떠나갔다. 이날 참석한 스님들은 경혜스님과 성법스님(전 해인사 주지이며 현 진주 호국사 주지), 필자 외 등이 있었다. 전대통령의 수행원으로는 장세동(전 안기부장), 이상희(전 내무장관), 이학봉(전 국회의원), 고명승(전 육군대장), 서정희 (전 민정 비서관) 등 외 인사들이 있었다.

지난 날 필자에게 전두환 대통령은 자신은 불교신자이면서, 조상숭배사상을 한다고 역설했다. 조상숭배는 무엇인가? 효사상(孝思想)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불심과 효사상속에 젊은 날, 은혜를 주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조국 대한민국을 향한 충의(忠義)가 단심(丹心)인 분이다.

충의지사는 또 있다. 전두환 대통령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변함없이 수행하는 장세동, 이학봉, 고명승 등의 인사들이다. 이해타산에 의해 아침에 만나 손을 잡고 영원한 신의와 충의를 말하다가 이해타산에 의해 저녘에는 배신하는 이합집산(離合集散)이 무상한 속세에 전두환 전 대통령과 수행원들은 남자들의 신의(信義)와 충의(忠義)가 무엇인가를 세상에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불교를 믿는 전직 대통령은 전두환 대통령 한 분 뿐이다. 전두환 대통령 내외분이 건강하시어 더 많은 사찰에 참배하시는 즐거움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전두환 대통령을 위시한 충의지사들이 보슬비를 맞으며 장흥사를 떠날 때 진주시 불자들은 전두환 대통령을 향해 “진주 호국사에도 찾아 주세요” 하고 청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미소 속에 “가지요” 화답했다.

충의지사들이 떠나간 적막의 장흥사가 거제시 불자들의 큰 복전(福田)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필자도 보슬비를 맞으며, 무거운 걸망을 메고 장흥사를 떠나야 했다. ◇


법철(bubchul@hotmail.com)




▲장흥사 법당 앞에서 보슬비 속의 기념촬영.


▲불전에 참배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분.


▲전두환 전 대통령과 진주 호국사 주지 성법스님과 호국사 신도들과 기념촬영


▲전두환 전 대통령과 봉태홍 대표와 필자의 기념촬영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장흥사 주지(왼쪽) 진주 호국사 주지 성법스님과 기념촬영


▲장흥사 방명록에 적는 전두환 전 대통령.


▲어린이를 안고 기뻐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수행원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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