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月出山), 무위사 사천왕상의 봉안 인연기

이법철 | 입력 : 2020/02/04 [10:48]

 

▲     ©이법철

 월출산(月出山)은 전남 영암군과 강진군에 걸쳐 자리한 호남의 금강산(金剛山)이라는 바위산이요, 신령스러운 영산(靈山)이다. 월출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전국에서 바위산에서 산신령을 향해 기도하는 남녀들은 국립공원 사무소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 기도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러나 밤이면 신비한 바위마다 바위아래 은은한 촛불이 밝혀지고 돼지 대가리를 위시하여 산신령에 대한 공양물을 진열해놓고 기도하여 “월출산 산신령의 영험을 얻고자 기도하는 남녀는 부지기수”이다.


월출산 바위산에 올라 기도하는 남녀들 가운데는 첫째, 무병장수 재수대통의 소원성취를 비는 기도객이 있고, 둘째, 신통력을 얻으려는 남녀도 있고, 셋째, 명리학을 책으로 공부를 한 후 자연신의 이보통령(耳報通靈)을 위해 기도하는 역학자도 있다. 진정한 역학의 진수(眞髓)를 깨달으려면 공부하던 역학서적은 종래에는 덮고 산신과 자연신에 통령(通靈)하는 기도의 힘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80년 초에 월출산 남쪽 강진군 성전면 쪽에 자리한 천년 고찰이요, 국보13호의 극락보전 법당과 역시 국보벽화 32점이 있는 무위사(無爲寺) 주지를 8년간 재직한 인연이 있다. 나는 이제 무위사 주지 때 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무위사 뒤쪽에 3km 월출산 쪽으로 올라가면 바위들이 많이 있는 제법 큰 골짜기가 있다.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는 그 골짜기 바위들 사이에는 최씨 성을 가진 무녀가 기도하는 신당(神堂)이 있다. 특히 월출산 산신을 모신 신당은 신비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녀는 서울의 명문대를 중퇴한 키가 170cm가 넘는 미인 형의 50대 초반의 미인형의 여자였지만, 정색하면 강력한 카리스마가 보였다. 그녀는 엄숙하게 내게 자기를 최보살로 호칭하라고 했다.

산신당 앞에는 제법 넓적한 바위가 있어 산신기도를 하는 밤이면 바위에 촛불을 밝히고 돼지 대가리 등 공양물을 놓고 기도를 드렸다.

최보살은 통이 큰 마음씨 좋은 여성이었다. 어쩌다 소 잡고 돼지 잡아 산신께 바치는 날은 기도가 끝난 후 산 밑 월하리(月下里) 마을에 고기를 무료로 보시하였다. 마을은 대잔치가 열렸다.

독자 여러분은 상상해보시라. 미인형의 최보살이 여제자들과 함께 민중적인 마을 사람들에게 고기와 떡 과일, 막걸리를 많이 보시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시라. 일부 마을 사람들은 최보살의 신당에 큰 산신기도가 들어오기를 학수고대하기도 하였다.

최보살은 가끔씩 여제자들을 거느리고 내가 주지로 있는 무위사에 내려와 나를 찾았다. 어느 날 그녀는 신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건네보고 웃으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시주밥 먹고 공부는 제대로 하세요?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는 올바른 수도승이 되셔야죠.” 그리고는 제자들과 함께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녀들은 월출산의 선녀(仙女)들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고정재산이라고는 논 5마지가 전부인 가난한 무위사에 나는 주야로 큰 고민이 있었다. 무위사에는 국보 13호라는 극락보전과 32점이나 되는 국보벽화를 지키기 위해 제대로 코를 골며 깊이 잠을 자지 못하고 주야로 도량에 돌아다니면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했다. 국보 한 점만 절도범에게 잃어 버리면 나는 경찰에 조사를 받고 감옥에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어느 날 무위사에 불행한 사고는 터졌다.

내가 광주에 이틀간 외출한 사이에 국보는 아니지만, 극락보전 안에 있는 문화재 급의 탱화가 감쪽같이 도난 당한 것이다. 당시 무위사에는 공양주 보살, 그리고 젊은 승려들이 두 명이 살고 있었지만, 밤이면 정신없이 코를 골아버리기 때문에 깊은 밤에는 절도범이 마음놓고 탱화를 훔쳐 간 것이다. 그 사건으로 나는 경찰서에 불려가 “주지스님이 절도법과 짜고 훔쳐 팔아먹은 게 아니요?” 하는 억울한 조사를 받아야 했다.

나는 경찰서에 조사를 받고 나온 후로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신도집을 방문하여 강아지들을 값싸게 사왔다. 국보 경비견으로 양성할 요량이었다. 똥개 한 마리, 포인터 잡종, 세퍼드 잡종, 진돗개 잡종 도합 4마리의 강아지를 얻어왔다. 개들은 전부 수컷이었다. 나는 조석으로 개들을 집합하여 이렇게 훈시하였다. “국보 지키는 임무를 잊어선 안된다. 너희들의 사부인 나는 다시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 받고 싶지 않으니까.”

개들은 성견(成犬)이 되었다. 개들 가운데는 세퍼트 잡종이 덩치가 제일 컸다. 나는 세퍼트 잡종 개를 ‘바우’로 호칭하였다.

어느 날 최보살이 화가 잔득 난 얼굴로 여제자 두 명과 무위사에 와서 내게 따졌다. 최근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굿을 하도록 돈을 낸 여신도와 바위에 돼지 대가리를 놓고 산신기도를 하면서 두 손을 마주 부비고 고개숙여 기도를 하는 중에 얼핏 고개를 들어보니 돼지 대가리가 거짓말처럼 어둠속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순간 최보살은 여신도에게 이것은 분명 월출산 산신령의 부하인 호랑이가 물어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따라서 호랑이가 등장하는 그 산신기도는 반드시 소원성취요, 기도응답이 있읋 것이라고 여신도에게 주장하였고, 여신도는 감격하여 돈을 더 내고 울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보살은 내게 찾아와 무위사의 세퍼트 바우를 지목하며 마구 화를 내며 말했다.

“어젯 밤 기도를 하는 데 돼지 대가리가 슬그머니 없어지더군요. 정신 바짝 차리고 내가 보니 무위사에 있는 세퍼트 개가 순식간에 돼지 대가리를 물고 어둠속에 달아났어요. 나는 돈을 내고 기도드리는 여신도에게 외쳤지요. ”산신님이 응감했다“ 소리를 질러 대어 무마했지만, 이 무슨 개수작인가요? 당장 개를 붙잡아 묶으세요! 개는 주인을 닮는다는 데, 왜 개가 신당에 어둠속에 나타나 돼지 대가리를 물어갑니까? ” 그녀들은 불같이 화를 내고 사라졌다.

나는 개들을 찾아보니 대밭속에 모두 모여서 무언가 회식하듯 먹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과연 개들은 훔쳐온 돼지 대가리를 뜯어 먹고 있었다. 내가 고기와 뼈다귀를 주지 않으니 덩치 큰 세퍼트가 빨치산 보급투쟁하듯 신당에 숨어 들어가 돼지 대가리를 절도를 하여 친구 개들과 나누워 먹은 것이다. 나는 절도범들을 모두 붙잡아 개줄로 목을 묶어 놓았다. 개들은 불만으로 아우성이었다.

어느 날, 최보살이 무위사에 내려와 목줄이 묶여있는 버우를 보더니 깔깔 웃었다. 그녀는 나의 얼굴을 빠안히 보고는, “스님은 전생에도 스님이예요. 따라서 현생에도 처자가 없는 승려운명입니다. 이 절에 절도범이 오는 이유는, 사천왕상을 봉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위사에 사천왕상을 봉안해드릴께요.” 당시 무위사에는 사천왕각(四天王閣)이 있었지만, 사찰에 돈이 없어 사천왕상을 봉안하지 못했었다. 과연 최보살이 진짜 사천왕상을 봉안할 수 있을까? 나는 의심했었다.

그 후 한달이 다 되었을 때, 최보살은 사천왕상을 조각하여 무위사에 봉안하였다. 나는 최보살의 공덕비라도 세워주어야 하는 데, 8년 주자의 인연이 끝나고 고창 선운사로 떠나게 되었다. 최보살은 손사레를 치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공덕비는 네겐 의미가 없어요. 스님, 어느 하늘아래 계시던 부처님의 올바른 제자가 되어 부처님이 일생을 중생구제를 위해 헌신했듯이, 스님도 부처님을 닮는 좋은 스님이 되기 바랍니다. 나는 금생에는 무위사 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조만간에 속세를 떠날까 합니다.”

끝으로, 나는 바우와 함께 선운사에 가서 선운사 주지 선거에 낙선한 후, 산 설고 물설은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소재의 외로운 토굴에 들어가 오직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소문에 들으니 최보살은 어느 날 밤 잠자듯이 세연(世緣)을 끊었다는 설이 있었다. 나는 최보살이 생사를 자유자재로 하는 경지에 들었다고 확신한다. 이 글을 읽어주는 인연있는 분들이여, 혹여 월출산 무위사를 찾는 기회가 있으면, 사천왕상 앞에 합장하고 최보살의 공덕을 찬탄해주기 소망한다. 나는 꿈속에서라도 최보살을 다시 만났으면 소원하는 데, 나타나지를 않는다. “올바른 수도승이 돼서야 해요.” 하는 음성도 들을 수가 없다. 도대체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




李法徹(이법철의 논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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