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한바탕 연극이다”고 갈파한 경봉(鏡峰)스님

이법철 | 입력 : 2019/12/31 [12:49]

 

▲     © 이법철

경봉 정석(鏡峰靖錫 1892-1982) 스님은 양신 통도사 출신 승려이다. 그는 일찍이 불경과 중국 선불교의 학문을 배우고 익혀 타에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경지에 오른 대학승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슨 인연법인지, 그의 학문능력과 대중설법과 서예와 위풍이 당당한 용모로는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감이었으나, 그는 평생 통도사 산내암자인 극락암에서 중국 선불교에 대한 설법으로 인생을 살다 열반하였다.

전국 사부대중은 경봉스님의 선불교에 대한 법문을 듣고자 운집하듯 하고, 멀리서 소문만 듣고 맹종하듯 앙모(仰慕)하고, 그를 닮고자 진력하는 사부대중도 부지기수였다. 그는 평소에 찾어온 사부대중에게 설법을 할 때 무슨 화두를 주려는 것인지, “인생은 한바탕 연극이다. 나는 연극 배우로서 중 역할을 잘하고 간다.”고 했다. 면벽 화두감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경봉스님 생전에 세 번 정도 만나 대화하는 기회를 가졌었다. 한번은 극락암에서 친견하여 정중히 인사를 하였고, 한번은 서울 조계사에서 열리는 “전국 승려대회”에서 상경한 경봉스님을 만나 인사를 하였고, 나머지는 전국 고승들이 모이는 어느 곳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는 당시 고승들과 어울려 대화를 하지 않고 혼자 외롭게 서 있을 때가 많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는 국외자(局外者)로서 외로운 고승이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당대의 고승들과 친교로서 어울리지 못하는 경봉스님을 보고 나에게는 의혹의 화두였다. 의혹은 훗날 1970년대 초반 내가 조계종 총무원 사회국장직에서 일할 때 나의 직속인 나이 지긋한 모(某) 사회과장으로부터 의혹의 연유를 들을 수 있어 비로서 국외자의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 모 사회과장은 경봉스님이 조계종단에 종정이 되지 못하고, 또 총무원장이 되지 못한 이유는 처자가 있기 때문이라는 놀라운 증언을 하는 것이었다.

30대 초 경봉스님은 통도사에서 불경의 학자 노릇을 하던 어느 해 겨울날 밤, 사하촌의 주막집에 혼자 가서 탁주일배(濁酒一杯)를 하러 눈길을 헤쳐 나갔는 데, 주막집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허드렛 일을 하는 처녀를 보고, 남녀의 이층(二層) 인연을 맺었다는 것이다.

탁주에 취흥이 도도하니 허드렛 일을 하는 가여운 처녀가 절세가인으로 보였거나, 아니면 가난한 처녀라는 동정심에서 자비의 손을 내밀었는 지도 모른다. 사회과장 증언에 의하면 경봉스님은 주막집 처녀에게 4남매를 얻었고, 그 중 아들 하나는 사회과장의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 나는 사회과장 증언을 토대로 사실여부를 부산불교의 노승들에 자세하게 알아보았는데 거짓 중언이 아니었다.

따라서 전생에 숙연(宿緣)인지는 알 수 없으나 4남매를 둔 경봉스님으로서는 아무리 불경과 중국 선불교의 대학자라고 칭송을 받는 입장이라 해도 출가한 승려는 독신이 원칙인 비구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단에 최고 어른인 종정직에 오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통도사의 배려로 산내 암자인 극락암에서 조실이라는 이름으로 경봉스님은 찾아온 사부대중에 선불교를 강론하고, 출중한 붓글씨로 많은 글자를 써 주었을 뿐이다. 다행히 제자 가운데 문장력이 뛰어난 제자 하나가 경봉스님을 출세시키는 저술을 남겼다. 남녀중생들은 경봉스님을 활불(活佛)로 모시고, 매월 법문이 있는 날은 극락암 오르는 산길은 과장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어 극락암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전한다.

경봉스님이 생사리(生舍利)같이 남긴 4남매 가운데는 비곡(悲曲)이 있었다. 아들 하나가 정신박약아 같이 부족하였다 한다. 그는 통도사에서 극락암으로 오르는 길목에 지계를 받히고 기다렸다가 여신도들이 경봉스님에 갖다 바치는 공양물을 수고비를 받고 운반하는 업(業)을 삼았다 남녀신도들은 무거운 공양물을 지고 극락암에 오르는 정신이 부족한 지겟꾼이 경봉대선사의 아들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비는 극락암에서 중생에게 고준한 설법을 하고, 수고비조로 보시금을 받고, 아들은 중생의 무거운 짐을 지게로 극락암에 옮겨주고 수고비를 받는 것은 어찌보면 비곡이라 생각한다. 지게꾼 아들은 극락암에 오르면 으레 조실스님께 문안 인사를 하면, 조실은 근엄한 표정으로 황급히 부족한 아들을 아무도 없는 후원의 호젓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약긴의 용돈을 쥐어주며 간절히 부탁하는 말은, “신도에게 내가 아버지라고 절대 말해서는 안돼!” 다짐하듯 하면 “알았어요, 저도 눈치는 있으니께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국 불교 여신도들의 일부는 수상하고 이상하다. 자신에게 불교를 전해주는 고승들이 부인과 이층(二層)을 이루며 살고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서 부처님을 팔아 보시금을 받아내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극혐이다. 아무리 명성이 자자하고, 인물이 좋은 고승이라도 처자를 거느린 고승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여신도는 금방 인색이 확 바뀌고 공손한 예를 갖추지 않고, 문법(問法)은 커녕 보시도 하지 않는다. 두리번 거리며 혼자 사는 청정비구를 찾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불교의 대처승, 은처승들은 특히 여신도들에게는 자신은 처자가 없는 청정비구(淸淨比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불교의 여신도 가운데는 왜 청정비구를 유독 고집하여 좋아하는 지 모른다. 자신이 산딸기 따먹듯 혼자 따먹어 보자는 것인가? 계행이 청정하기를 바라서인가?

따라서 한국불교 수많은 처자있는 승려들은 “조계종(曹溪宗) 자(字)가 들어간 종단을 20여개나 만들어 등록하고 명함에는 ”조계종‘ 간판을 내걸어 유혹한다. 대처승, 은처승을 좋아하지 않는 여성불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호구지책(糊口之策)의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이 자구는 달리 표현하면 음양계(陰陽界)이다. 예수님의 아버지가 절대 아닌 조물주가 지구를 만들 때, 지구의 생명체는 번식을 위해 남녀 각각 성기에 성의 쾌락을 DNA로 심어놓았다. 남녀 인간에서 말못하는 짐승들, 심지어 미세한 세균까지 지구에 태어나 번식기가 되면 성의 쾌락을 미치도록 추구하게 만들었다. 조물주의 무서운 음모기 아닐 수 없다. 보통남녀는 우주의 진리를 통찰하지 못하고 조물주가 심어논 성의 쾌랙속에 진력하다가 기진맥진하여 죽고만다.

결론과 제언

지구의 수많은 수컷은 성의 쾌락을 위해 암컷을 찾고 암컷은 쾌락을 주고나면 반드시 화대(花代)를 요구하듯 숫컷에게 돈을 바치던지, 돈을 벌어오라고 일종의 성노예를 만든다. 보통 남자는 여자에게 성의 쾌락을 맛보면서 일평생 돈을 벌어 여자에게 바치는 사업을 하다가 죄를 짓기도 하고 결국 사망한다. 부처님은 남녀가 즐기는 성의 쾌락에 대해 이렇게 설파했다. “나에게 여자와 같은 장애물이 하나만 더 있었다면, 나는 성불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봉스님은 당시 불교의 대학자요, 중국 선불교의 대학자인 것은 나는 인정하고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인연있는 여자와 유자녀하여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무진고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마지막에 양심적인 말을 세상에 남겼다. “인생은 한바탕 연극이다. 나는 연극 배우로 중 역할을 잘하고 떠난다” 한국불교의 고승들 가운데 경봉스님처럼 양심적인 발언이 없고, 오직 호구지책으로 부처님을 팔고, 성불을 팔고, 청정비구를 팔아먹는 승려는 부지기수이다. 나는 속인 부자 뺨치는 재벌급의 승려가 대처승이면서 남녀 신도들에게 무소유를 주장하는 것은 진짜 세상을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대도(大盜)라고 생각한다. ◇




李法徹(이법철의 논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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