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천면 외로운 토굴”에서 포송령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이법철 | 입력 : 2019/12/10 [14:57]

 

▲     © 이법철

나는 고향은 전북 고창의 모면(某面)의 시골이다. 나의 출가본사는 고창의 명찰 선운사(禪雲寺)이다. 내가 1987년대 말 선운사를 떠나 산 설고 물설은 강원도 횡성군에 처음 오게 된 인연은 선운사 주자 선거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신 직후이다. 수많은 유권자는 나를 선택하겠다고 장담했지만 그것은 선거판에는 난무하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적지 않은 선거비가 탕진된 뒤였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나의 복의 한계였다. 


나는 애건(愛犬)인 늙은 숫캐 바우에게 말했다. “둘이서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살자”고 넋두리 같이 말했다. 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같이 보였다. 나는 고물 짚차에 책과 바우를 싣고 훌쩍 강원도를 찾았다.

내가 강원도 행을 하기 전 나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신비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는 생각지 않은 풍경이 거의 매일 밤 꿈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꿈속에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상상도 못했던 제법 큰 강가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번번히 꿈을 깨고서는 징조(徵兆)를 곰곰 생각해보았다. 큰 강이 흐르는 곳이 전생에 내가 살며 놀던 곳이라는 것인가?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 때 바우는 사하촌(寺下村)에 교제하는 암캐가 있었지만 나의 결정에 순종하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마침내 횡성군 갑천면을 거쳐 남한강 강둑에 서서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보고나서 비로서 내가 꿈속에서 자주 보았던 강이라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다. 내가 강을 보며 “아, 꿈속에 강이로구나!” 외쳤을 때, 바우도 크게 짖어대며 환호하는 것깉았다.

나는 생할정보지 교차로에서 헐값에 나온 외딴집을 찾아내어 구입하였다. 땅은 주인이 따로 있어 매년 지대(地代)를 지불해야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구입한 외딴집은 시골교회로 시용하던 허름한 집이었다. 나는 교회 간판을 떼어 불살랐다. 그 때 시골 아주머니가 다가와 내개 이렇게 물렀다. “새로오신 목사님인가요?”

그 후 나는 혼자 초라한 방안에서 불경과 서책에 집중하고, 바우는 방문 앞에 마치 나를 경호하는 듯 엎드려 지키고 있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다. 바우는 앉아서 얼굴을 들어 보름달을 하염없이 우러르고 있었다. 마치 달의 정기(精氣)를 눈으로 빨아드리는 듯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우려했다. 바우가 호랑이로 둔갑술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

나는 그 때, 서책 가운데 중국 포송령(蒲松齡)이 저술한 요재지이(聊霽志異)와 구우(瞿佑)가 저술한 전등신화(剪燈新話), 진나라 사람이 적은 수신기(搜神記), 당나라 사람이 적은 유괴록(幽怪錄), 베트남의 영남척괴열전(嶺南척怪列傳), 조선의 천재 김시습이 적은 금오신화(金鰲新話) 등을 즐겨 읽었다. 기이한 서책을 많이 읽은 탓인가? 가끔 꿈속에서 백여우가 찾아오기도 했다.

나는 앞서의 서책을 집중하여 읽다가도 서책을 덮고 홀로 어둠속에 있을 때면 포송령이 지은 요재지이 책자에서 나오는 섭소천(攝小倩))이라는 글을 좋아했다. 섭소천의 이야기는 중국 괴기영화에 천녀유혼(倩女幽魂)으로 나왔고, 여주인공은 왕조현(王祖賢)이었다. 어두운 밤에는 섭소천(攝小倩)이 송차(松茶)를 들고 와 인사를 할것같은 환상이 들 때도 있었다. 마치 나의 토굴이 섭소촌이 활약하는 폐사인 낙약사(蘭若寺)같이 생각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송령은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산동지방의 문사였다. 향촌에서는 포송령의 글에는 향내가 나고, 붓끝에는 신기(神氣)가 어린다는 천재적인 문장가라고 포송령을 찬사했었다. 그러나 그는 당시 향시(鄕試) 등에 시험에는 출중한 실력으로 합격을 했지만, 벼슬길에 나가는 최종 시험인 진사시험을 황제가 보는 북경에서 시험을 치면 매번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굶주린 배를 안고 낙향해야 했다. 포송령에 가문의 기대를 거는 부모와 처자들은 매번 실망만 시켰다.

훗날 포송령은 자신이 매번 최종 시험에서 낙방하는 원인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첫째, 돈을 받아 챙기고 시험의 당락을 조작하는 부패한 시험관들의 농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사시험에 은밀히 거액으로 매관매직하는 탓에 자신에게는 최종 사험에 합격할 수 없고, 벼슬길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다. 둘째, 자신이 타고 난 숙명(宿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타고난 사주팔자(四柱八字)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가난한 문사인 포송령은 과거 시험에서 소망했던 벼슬길에 나가는 꿈을 접고, 부모형제가 성공해서 금의환향 하기를 학수고대하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오랜 세월 타향에서 노숙자처럼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걸객처럼 유랑생활을 하던 포송령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큰 지방의 태수 관직을 하던 부자 은퇴자가 포송령의 박학다식하고 출중한 문장력을 인정하여 자신의 정원에 집 한 채를 배정해주고 자신의 자제 등에게 개인 훈장으로 교육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포송령은 생전처음으로 자신만이 연구할 수 있는 서재(書齋)를 갖을 수 있었고, 얼마간의 월급도 받아 저축하여 고향의 집에 송금할 수 있었다.

포송령은 가정교사 같은 훈장 노릇을 하면서 취미삼아 세상에 기이한 이야기를 수집하여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반포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 기이한 이야기 모음이 훗날 중국 괴기영화들의 원전이 된 요재지이(聊霽志異)이다.

포송령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고을이나 좀 떨어진 다른 고을의 장날에 찾아가 장터에 멍석을 깔아놓고, 대나무에 광고판을 내걸었다. 신비한 귀신 이야기나 여자로 둔갑한 여우 이야기 등을 들려주는 사람에게는 “차와 담배를 답례로 주겠다.”는 광고를 했다. 장터에 온 남녀들은 자신이 겪은 신비하고, 괴이한 귀신의 이야기나 여우 이야기 등을 들려주고 차와 담배를 얻어갔다.

포송령은 신비한 이야기를 간단히 적었다가 자신의 서재로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신비한 이야기를 적어 책을 만들었다. 마침내 포송령이 만든 신비한 이야기 즉 요재지이는 많은 독자들을 만들었고,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사실 정치 이야기를 잘못쓰면 3대가 명족하는 시대에 포송령이 쓸 수 있는 글은 귀신이야기와 둔갑하는 여우이야기가 적격이었다.

포송령 원전의 신비하고 괴기한 영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황폐화 된 고사(古寺)에서 미인 귀신을 만나는 어느 가난한 선비의 이야기인 섭소천(攝小倩) 이야기다. 섭소천은 억울하게 비명횡사한 여자 귀신인데, 대만 여배우인 왕조현(王祖賢)이 섭소천 역을 맡아 세계적 인기와 박수를 받았다. 그녀는 절세미인인데 무슨 인연인지 50이 넘었는 데도 아직도 처녀로 늙어간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포송령, 구우, 김시습 등 출중한 문장가들은 하나같이 소원했던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는 불우한 인생에 처해졌지만, 재빨리 생각을 바꾸어 신비, 괴기, 몽중사(夢中事)의 소설로 전업을 해 중국 역사와 조선역사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인생을 살다간 그들에 대해 나는 경의를 표해 마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작품을 읽고 상상하면서 만약 그들이 현존하는 인물이었다면, 광대한 중국 대륙의 어느 곳이던 찾아가 예를 갖추고, 신비한 유음(幽陰)의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포송령 등은 어디로 갔을까? 매미가 껍질을 벗고 탈각하여 본체가 떠나듯 지구에 다시 환생하여 인생을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또다른 태양계의 있다는 지구에 살고 있을까? 아니면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행성의 지구가 아닌 영원히 시간이 흐르지 않는 극락세계같은 항성(恒星)으로 떠난 것인가? 나는 어두워가는 토굴이 어두워지면 홀로 앉아 불우한 생을 살다간 일대 문장가들을 그리워하였다.

원각경의 결론부분에서는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한다.

“진여와 열반도 어젯밤 꿈이다(眞如涅槃, 猶如昨夢)”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천만번 훈계하신 부처님이 원각경의 끝장에서는 “어젯 밤 꿈일 뿐이라고 하는데, 이 무슨 화두인고?

나는 그 때, 혼자 토굴에 앉아 명상에 잠기기를 다반사로 해왔지만, 아직도 천녀유혼의 섭소천같은 미인이 현실에서 찾아오는 적은 없었다. 나는 원한맺힌 여귀(女鬼)나 둔갑하는 여우조차 찾지 않는 신세를 자탄하기도 하며 달을 보고 웃기도 했다. 숫캐 바우는 앉아 계속 달을 우러르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에 내가 살던 토굴을 떠나야 했다. 내가 산 집의 땅주인이 그곳에 “사슴목장을 하고 싶으니 비켜달라고 해서였다, 나는 지금은 원주시 모(面)쪽에 혼자 병들어 누워 있다. 나의 경호원인 바우는 늙어 오래전에 죽고 없다. 나는 아직도 혼자 토굴에서 홀로 앉아 유음(幽陰)의 세계에 명상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바우는 가끔씩 내꿈에 나타난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다. 바우는 달을 남몰래 그토록 우러른 인연으로 달을 찾아 갔을까? 아니면 사람으로 환생했을까? 이제 나도 오래지 않아 육신의 탈을 벗어버리고 광대무변한 우주에 인연 따라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아, 지구에서 사는 것은 일체가 몽환(夢幻)이로다. ◇




法徹(이법철의 논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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