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과선사(鳥窠禪師)와 白樂天

법철 | 입력 : 2008/09/10 [13:26]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 백락천(白樂天:772-846)은 뛰어난 경륜을 지닌 정치가이며 불심깊은 불제자였다. 그는 권학문(勸學文)을 지어 후학들을 일깨우는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거이(居易), 벼슬은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이르렀다. 그는 불교를 믿어 불경 읽기를 좋아했고, 사찰을 찾아 참배하여, 고승들의 법문듣기를 좋아했다.

백락천이 항주태수(杭州太守)로 부임했을 때이다. 어느 날 관청이 쉬는 날, 고승을 찾아 법문을 듣고자 관원들에게 항주의 고승을 물었다.
“이 고장에 득도한 고승은 있는가?”
“소인은 그분의 득도여부는 잘 모르겠으나 수많은 사부대중들이 존경하여 가르침을 구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어느 사찰에 계시는 스님인가?”
“그분은 과원사의 도림선사(道林禪師)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조과선사(鳥窠禪師)로 더 잘알려져 있습니다.”
“왜 그런가?”


▲조과선사에게 문법하는 항주 태수 백락천을 의미하는 벽화.


“그 분은 다른 스님들의 수행법과는 달리 높은 나무 위에 정좌하여 참선을 하고 있는데, 새의 보금자리 같다고 해서 별명이 생겼다고 합니다.”
백락천은 수많은 고승들을 친견했지만, 높은 나무 위에 정좌하여 참선한다는 고승은 처음이었다. 그는 기이한 고승을 만난다는 설레임을 갖고 수행원을 거느리고 조과선사를 찾아 나섰다.

도림선사(道林禪師: 741-824)는 특이한 수행방법으로 참선을 했다. 선방에서 대중과 함께 면벽의 참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청명한 날이면 경내에 있는 고목의 소나무 높은 가지 위에 앉아 좌선을 했다. 그것은 참선공부를 하다가 졸다 추락하면 즉사(卽死)할 수 있는 위험한 공부 방법이었다. 추락하여 죽지 않으려면 정신을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가운데 참선공부를 해야만 하는 도림선사 특유의 수행방법이었다. 당시 도림선사의 공부하는 모습을 본 사부대중의 누군가의 입에서 조과선사(鳥窠禪師)라는 별호가 붙은 것이다.

백락천이 절에 가서 도림선사를 찾으니 과연 소문대로 높은 소나무 가지위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선정에 들어 있었다. 백락천은 놀라서 도림선사를 올려보며 소리쳐 외쳤다.
위태합니다, 위태해.
메아리가 울려오듯이, 도림선사의 우렁찬 대답이 들려왔다.
“위태합니다, 위태해.
백락천은 다시 소리쳐 말했다.
“위태한 것은 선사이십니다. 왜 제가 위태합니까?”
“땅위에 서 있는 상공이 더 위태합니다. 나무 위의 나는 상공보다 안전합니다.”
“제가 위태하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인심(人心) 조석변(朝夕變 )의 속세에서 명리와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더 위태하다는 말입니다.”
백락천은 그제서야 도림선사의 위태하다는 말씀을 알아들었다. 어제 황제의 신임을 받아 위명을 떨치다가 하룻밤 사이 황제의 변심에 가산적몰(家産籍沒)과 참수(斬首)를 당하고 귀양을 가는 허망한 부귀영화가 위태하다는 법문에 백락천은 합장하여 정중히 감사의 예를 드렸다.

도림선사는 나무에서 내려와 수인사, 통성명(通姓名)후 백락천을 방장실로 안내하여 차를 대접하며 물었다.
“상공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평소에 좌우명을 삼을 만한 법문 한 귀절을 듣고져 찾아왔습니다”
도림선사는 미소를 지으며 붓을 들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써주었다.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제불통계(諸佛通戒)였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착한일을 행하라
自淨其意 是諸佛敎
스스로 마음을 청정히 하면/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백락천은 도림선사가 적어 준 게송을 받아 읽은 후 불만에 차서 말했다.
선사님! 그것은 3살난 어린이도 아는 말입니다.
도림선사는 엄숙히 대답했다.
3살난 어린이도 아는 말이지요. 그러나 80난 노인도 실천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백락천은 도림선사로부터 어렵고 난해한 오의(奧義)가 가득 담긴 교시(敎示가 있을 줄 알았다가 인간의 선(善)을 실천하는 평상의 진리, 평상심(平常心)을 깨우치는 말씀의 소식에 크게 깨닫고 도림선사를 향해 무수히 감사의 배례를 드렸다. 팔만대장경을 옳게 외우고, 거꾸로도 외우는 능력이 있다 해도, 모든 악(惡)인연 맺기를 좋아하고, 모든 선(善)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수행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백락천은 그 후 만나는 사람마다 도림선사와의 일화와 도림선사가 준 활구법문(活句法門)을 세상에 전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백락천은 권학문에서 후학들을 이렇게 깨우치고 있다.

白樂天 勸學文

有田不耕倉늠虛 有書不敎子孫愚
밭이 있어도 갈지 않으면 곳간은 비리라/책이 있어도 가르치지 않으면 자손은 우매하리라
倉늠虛兮歲月乏 子孫愚兮禮義踈
곳간이 비면 세월을 지내기가 구차하고/자손이 우매하면 예의에서 성기리라
若有不耕與不敎 是乃父兄之過歟
오직 갈지 않고 가르치지 않음은/이 곧 부형의 허물인저.

백낙천의 시 작품에는 자유를 희구하는 정신을 드러내면서 불교의 정토세계와 노장사상이 담겨 있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는 생노병사의 윤회의 고통이 있는 유한의 세계가 아닌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있는 서방정토·무량수불·아미타불의 세계였다. 그는 148명의 가까운 사람들과 ‘상생회(上生會)’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부처님같은 자세로 좌선하고 내세에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였다.

백낙천은 말년에 벼슬자리를 내놓고 18년 동안 향산(香山)에 머물며 스스로 법명을 향산거사(香山居士)라 칭했다. 그는 여만선사(如滿禪師)를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향산사(香山寺)를 중수한 뒤, 여만선사(如滿禪師)가 향산사 주지가 되도록 도왔다. 그 후 백락천은 여만선사 등과 함께 승속(僧俗)의 9명이 구노사(九老社)를 결사하고, 향산사에 모여 참선을 하고, 서로 음영임천(吟詠林泉)의 시를 지어 보이는 친교를 다졌다.

수년 후 여만선사가 먼저 열반에 들었다. 백락천을 위시한 구노사 도반들은 향산에 여만선사의 묘탑(廟塔)을 세웠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백락천도 임종에 이르렀다. 그는 임종시에 자신을 여만선사 묘탑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유언에 따라 846년, 그는 여만선사 옆에 묻혔다. 무상한 세월과 무상한 인심에 의해 현재 여만선사의 묘탑은 사라졌다. 그곳에는 당대(唐代)의 천재시인 백락천의 묘만 존재하여 관광객이 찾아와 백락천을 추모할 뿐이다. 그 묘를 白園이라고 칭한다.

백락천이나 작금의 한국에도 산사를 찾아 고승에게 좌우명을 구하는 사람들은 있다. 조계종의 이성철 대종사가 통영 안정사 토굴에서 용맹정진 할 때이다. 당시 통영 군수가 찾아와 간절히 좌우명으로 삼을 법문을 청해왔다. 이성철스님은 선뜻 법문을 해주지 않았다. 군수는 애타게 졸랐다. 마침내 이성철스님은 입을 열었다.
“꼭 좌우명이 필요합니까?”
“예, 관직생활을 하면서 꼭 필요한 법문을 주시면….”
이성철스님은 형형한 눈으로 군수를 건네보며 힘주어 말했다.
“도적질 하지 마시오. 아셨습니까?”
군수에게 관직에 있으면서 도적질하지 말라,는 법문을 준 이성철스님은 작별을 고했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교훈의 붓글씨를 얻을 요량의 군수는 별 수 없이 하산할 수 밖에 없었다. 군수에게는 어찌보면 화나고, 허망한 소식이지만, 진짜 활구법문(活句法門)이 아닐까?

초심자에게는 성인이 말씀하신 경(經)을 지상최고 진리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동서고금의 남녀들은 불경, 성경, 코란경, 등… 종이 위에 적힌 문자를 최고의 경전으로 여기고 집착하여 신명을 바치기도 한다. 그러나 득도의 경지에 오르면 경에 잡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자경전(有字經典)에 집착하지 않고 유자경전을 초월하여 무자경전(無字經典)을 읽고 깨달을 줄 알아야 한다. 눈을 들어 광대무변한 우주와 삼라만상을 관찰하라. 귀로써 일체의 소리를 관찰하라. 자연의 법문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온 우주가 비로자나 법신불(法身佛)이라고 본다. 그 법신이 중생을 위해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법신불이 상주설법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중생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봄이 오면 꽃피우고, 가을이면 별리(別離)의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린다. 제행무상의 법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법신불의 상주설법을 들을 수 있다면 깨달음에 진입한 사람이다.

그러나 백년탐물(百年貪物)은 하루 아침 티끌(一朝塵)이라는 초심장(初心章)과 경전과 중국 선사들의 선어록(禪語錄)을 앵무새 처럼 복창하고 흉내내면서 내심은 속물 뺨치는 탐욕을 부리는 자들에게 스승의 예를 갖추고, 진리를 얻고져 한다면 그는 나무위에서 고기를 구하는(緣木求魚) 것일 뿐이다. 심오하고 난해한 팔만대장경과 천칠백공안(千七百公案)은 무식해서 모르더라도 백락천과 도림선사가 나눈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을 실천하는 사람이 참 수행자요, 참 스승이라는 것을 확언(確言)하는 바이다.◇



이법철(bubch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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