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들어 면벽참선 보다는. 부처님의 수행법을 실천해야 하는데…

이법철 | 입력 : 2019/06/21 [09:18]

 

 

▲     ©이법철

불교의 수도승들과 신도들은 부처님이 몸소 실천한 수행법을 통해 정각을 얻은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부처님의 수행법은 무엇인가? 부처님이 출가 수행자가 된 후 6년간 정각을 얻기 위해 수행하신 방법은 한국 불교의 선문(禪門)처럼 면벽참선(面壁參禪)을 한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산하대지(山河大地), 두두물물(頭頭物物)과 인생사와 지구와 우주를 통찰하는 수행을 하였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룰 때의 광경을 깊이 고찰해보자. 부처님은 니련선하(尼連禪河)의 강가 보리수 나무 밑 바위에 정좌하여 밤새 우주의 별을 우러러 통찰하시다가 새벽에 명성(明星)을 보시고 마침내 우주의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이루었다고 경전에 전해온다.

따라서 불교를 믿고 따르는 제자와 신도들은 부처님의 수행법을 따라하여야 우주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는 언제부터인가, 사대주의(事大主義)로 중국 사상이면 무조건 맹종하였다. 중국 황제가 맹종하도록 칙사(勅使)를 통해 한반도 국왕과 신민에 강요해온 것이다. 첫째, 과거 응시를 하기 위해서는 성리학(性理學)을 하도록 강권하였다. 둘째, 중국 승려들이 창안한 조사선(祖師禪)으로 면벽하여 화두를 참구하는 공부법을 강요하였다. 상상해보라. 한반도의 선비들은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허구헌날 공자왈, 맹자왈 등을 암송해야 했다.

또한 한반도의 승려들은 부처님의 경전은 불립문자(不立文字))로 배우지 않고, 오직 중국의 선사들의 이름을 외워야 했고, 그들의 선어록(禪語錄)만 배우고 암기해야 했다. 중국 선불교는 한반도의 남녀 불제자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불경을 읽지 못하게 하고 화두만 들어 면벽참선하다 죽게 한 것이다. 중국은 백만의 군대로 한반도를 굴복시키는 것보다 자신들의 주장이 담긴 문자로 굴복을 시켰고, 특히 한국불교는 중국불교 선불교의 음모를 아직까지 깨닫고 벗어나지를 못히고 있다. 한국인들은 오래전에 성리학에서 해탈하였는데 말이다.

한반도에 불교가 중국을 통해 전래된 지 1700여 년인데, 아직도 한국불교는 중국불교의 음모에서 해탈하지를 못하고 화두공부인 조사선에 속박되어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근거의 대표적인 예로 한국불교의 대표적 사찰인 불보사찰)佛寶寺刹)인 통도사, 법보사찰(法寶寺刹)인 해인사, 승보사찰(僧寶寺刹)인 송광사 등 전국 선원에서는 수많은 승려들이 선원에 몸담아 결제 때 선원에서 합동으로 중국 승려들이 창안한 조사선을 따라하여 면벽참선의 화두공부를 불교의 전통처럼 해오고 있다.

부처님처럼 우주를 담아야 할 머릿속은 오직 농담(弄談)같은 화두를 담아 그 화두가 부처님같이 정각을 이룬다는 확신을 가지고, 인간은 생노병사(生老病死)하는 것이 불변의 법칙인데 아까운 세월을 낭비하다가 허무하게 죽고 마는 것이다. 중국 선사의 어느 화두를 예로 들어보자. 누가 선사에게 “불교가 무엇입니까?” 진진하게 질문했을 때, 중국 선사는 이렇게 답해주었다.“똥 친 막대기니라” 중국 승려들이 창안안 화두들은 응구첩대의 재치문답일 뿐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제자라면 부처님같이 우주를 통찰하여 우주의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나는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과거 20대 초반 때에 오늘의 해인대학을 11회로 오전 11시경에 졸업장을 받고, 오공(午供)을 마침 후 오후 1시경에 해인선원에 방부를 드렸다. 당시 선원 수행자들은 박수를 쳐 대환영을 해주었다.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고, 해인강원에서 찰중, 입승을 지낸 머리좋은 자가 졸업장을 받자마자 해인선원에 들어오니 대환영을 해준 것이었다. 당시 해인사 방장은 성철(性徹)스님이었다. 그도 성불의 길은 조사선이라고 강변한 것을 상기도 나는 기억한다. 그는 법문할 때는 불경보다는 임제, 마조, 황벽, 조주 등이 지껄인 어록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스스로 평가하는 법문 뿐이었다. 전국 선원의 방장스님, 조실스님이 다 그랬다.

나는 성철스님에게서 참구할 화두를 받았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고?”였다. 나는 시키는대로 면벽참선하면서 “이것이 무엇인고?”를 3게월의 결제기간을 보내고 해인사를 떠났지만 아무 깨달음이 없었다. 하늘에는 여전히 태양은 빛나고 있었다. 겨울결제는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지내면서 역시 “이 무엇인고?”의 화두를 들었다. 나는 세 번째 결제를 선원에서 보낼 때, 우연히 기연(奇緣)을 만났다.

선원에서 제외된 병들어 죽어가는 어느 노선사를 만났다. 노선사는 나에게 경책을 주었다. “면벽참선은 불교가 아니네. 중국 놈들이 성리학(性理學)으로 한반도 남자들의 머릿속을 마음대로 장악하더니 이제 중국은 조사선으로 한국 승려들의 머릿속을 장악하여 결국은 바보천치로 만드는 거야. 나는 70평생을 화두로 면벽참선을 해봤지만, 깨달음은 없고 죽을 때가 된거야. 부디 자네는 나같이 기만당하지 말게. 오직 불경만 읽고, 부처님같이 우주를 통찰하는 마음공부를 하기 바라네.” 나는 죽어가는 노선사의 법문에 감동되어 큰 절을 삼배 올리고, 그 후부터 부처님의 수행방법으로 지구와 인간의 생노병사와 우주를 관찰하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깨닫고 보니 우주의 본체 법신불(法身佛)이 인간들에게 주야로 무진법문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다.

불교신도들이 불공을 지성껏 올려야 하는 대상은 법신불의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의 하나인 석가모니불 보다는 우선이 우주의 본체인 법신불이었다.

여러분이 한국 산사를 방문하면, 큰 법당 정문 위에 넉자의 편액이 결린것을 알 수 있다. 대적광전, 대웅보전 등 이러한 법당에는 가운데 주불(主佛)이 남무청정법신비로자나불(南無淸淨法身毗盧遮那불)이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법신불이 자비로 우리에게 보낸 화신불(化身佛)이다. 따라서 불제자들은 화신불인 석가모니불에 감사해야 하지만, 그 분을 보낸 법신불에 더욱 감사와 구원과 정각을 얻고져 하는 기도와 원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모든 사찰은 법당에 주불로 법신불을 모시고 그분의 전지전능한 법력으로 피화구복(避廻求福)과 정각을 얻는 공부와 대자댜비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석가모나불은 우주본체의 법신불을 가르키는 직지(直指)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나는 “아미타불에 인도하는 삼계도사(三界導師)”라고 하셨다.

결론과 제언

과거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고유 개발품같은 성리학(性理學)으로 1천년이 넘는 세월에 관리를 선출하는 시험공부로 한반도의 왕조에 “선유장(選儒場)”을 삼도록 강요하였다. 또 중국은 한반도 불교에 중국 조사선의 면벽참선을 해야 하는 “선불장(選佛場)”을 삼도옥 강요하였다. 한반도 승려들은 사대주의로 불교 보다는 중국의 조사선으로 부처가 되겠다고 죽기 살기로 화두로 면벽참선하다가 결국은 시간만 낭비하고 죽어갔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한국의 불제자들은 중국인의 음모에서 벗어나 이미 성리학을 버렸듯이, 면벽참선의 화두공부는 시궁창에 버리고, 첫째, 불경을 읽고, 둘째, 지구와 우주를 통찰하고, 우주의 본체인 법신불과 아미타불(無量壽佛)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확철대오하기 바란다. 부처님은 평생 무소유속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두 번이나 인도에서 미얀마로 걸어 왕복하셨다. 부처님은 하늘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신분제 폐지를 외치신 분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로워야 한다“고 외치고, 이 세상 누구던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믿어야 하고, 인연취(因緣取) 인연산(因緣散)을 가르쳤다. 부처님은 모든 인간은 물론 뭇 생명에 자비를 베플어야 하고, 생노병사를 피할 수 없는 음양계인 고해를 벗어나 모두 우주에 분명 존재하는 아미타불이 상주설법하시는 극락세계로 왕생해야 한다고 인류에게 희망의 법문을 주셨다. 거듭 주장하거니와 한국불교는 중국불교의 음모인 면벽참선하는 화두공부에서 시급히 벗어나 지구와 우주를 통찰하는 부처님의 수행법으로 수행하고 정각을 얻어 포교해야 할 것이다. ◇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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